-
-
여우 8
조지 손더스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5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1/0605/pimg_7694311452972123.jpeg)
아마도 이 편지의 독짜는 이런 구절을 들어봣겟죠? 채고의 시간이엇고, 채악의 시간이엇다. (어떤 책에 나온 구절이애요. 언젠가 그 집 엄마가 세끼들에게 이 책을 일거주려고 햇서요. 그런데 이 책은 낫말이 너무 만아 지루햇서요. 그래서 세끼들은 어린 잉간들이 지루할 때 하는 짓을 하기 시작햇죠. 그건, 손가락으로 코를 파며 딩굴딩굴하다 아기 동셍을 꼬집기.) p.40
여우 8은 인간의 말을 할 줄 안다. 물론 쓰기도 글자도 완벽하진 않지만 말이다. 인간에게 관심이 많은 여우 8이 어느 날 낱말을 만드는 인간의 목소리를 엿듣게 된다. 아이에게 사랑을 담아 해주는 이야기가 음악 같다고 느끼면서, 여우 8은 그걸 완전히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렇게 매일 밤마다 인간이 말하는 방식을 배우려고 몰래 훔쳐 보았던 것이다. 여우 8의 친구인 여우 7은 인간의 말을 알고 있는 여우 8에게 깜짝 놀랐고, 그들은 우두머리인 여우 28에게 가서 인간의 말을 들려 준다. 우두머리는 여우 8의 새로운 기술을 무리에 도움이 되도록 사용해달라고 부탁한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1/0605/pimg_7694311452972124.jpeg)
여우 8은 한 간판에 써진 글을 읽고, 곧 '폭스뷰커먼스'라는 쇼핑몰이 들어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곧 트럭들이 몰려와 원시림을 파헤치고, 나무를 뽑고, 옹달샘을 파괴하며 눈에 보이는 모든 곳들을 평평하게 만들어 버린다. 집과 먹을 것을 잃어버린 여우 무리들은 점점 쇠약해지고, 늙은 여우들은 목숨을 잃는다. 여우 8은 여우 7과 함께 먹을 것을 구하러 쇼핑몰에 가서, 몇몇 친절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얻는다. 인간과 여우가 함께 살아가는 미래를 꿈꾸는 것도 잠시, 밖으로 나와 마주하게 되는 것은 끔찍한 세상이었다. 그래서 여우 8이 인간들에게 편지를 쓰게 된 것이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1/0605/pimg_7694311452972125.jpeg)
인생이 멋찔 수 잇다는 걸 알아요. 대게는 멋찌죠. 난 무더운 날에 차고 깨끗탄 물을 마셧고, 사랑하는 이가 부드럽게 짓는 소리를 들었고, 눈이 천천이 네리며 숲피 고요해지는 걸 봣서요. 하지만 이제 그 모든 행복칸 광경과 소리가 사기처럼 느껴저요. 조은 시간은 그저 연기에 불과하고 그개 걷치고 나면 현실이 나타나는 거죠. 그 현실이란 바로, 바위 갓튼 모자, 거더차고 짓밥는 발. 거더차고 짓밥는 발이 업는 순간은 모두 진짜가 아닌 것만 갓타요. 무슨 말인지 알겟서요? p.50~51
이 책은 <12월 10일>, <바르도의 링컨>이라는 작품으로 만났던 조지 손더스의 신작이다. 오랜 시간 단편소설만을 써오다 쓴 첫 장편소설로 맨부커상을 수상했었는데, 그 작품이 일반적인 소설의 형식과 틀을 과감하게 벗어나 소설의 경계를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인간의 말을 배운 여우가 인간들에게 쓴 편지의 형식을 띠고 있는 우화로 우리를 찾아 왔다. 인간에게 숲을 빼앗기고 같은 무리의 여우들을 모두 잃어버린 여우의 목소리를 빌려 인간의 환경 파괴와 지나친 소비주의에 대한 경고를 전하고 있는 이 작품은 짧지만 긴 여운을 남겨 준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1/0605/pimg_7694311452972126.jpeg)
인간의 언어를 독학한 여우가 쓴 글이라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철자가 엉망이라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읽기가 수월하진 않다. 하지만 시작부터 '내가 글짜를 틀리개 쓰더라도 이해하새요. 난 여우라서 그래요!'라고 말하는 이 여우를 어떻게 미워할 수 있겠는가. 맞춤법이 틀린 문장을 읽는 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구나 새삼 깨달으면서, 한 문장 한 문장 천천히 읽어 나갔다. 중간 중간 심플한 드로잉으로 등장하는 여우의 모습 또한 재미를 더해 준다.
아이들과 함께 읽어도 좋은 작품이지만, 어른들이 읽기에도 전혀 무리가 없는 짧은 소설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잘못된 철자로 쓰니 이 글은 아이들이 읽기에 더 수월할 지도 모르겠지만, 담고 있는 메시지 자체는 환경을 파괴하면서 살고 있는 어른들을 향해 있다. “당신들의 얘기가 행복카게 끈나기를 원한다면, 좀 차캐지려고 노력카새요.” 라고 말하는 여우의 문장이 뭉클했다. 숲을 파괴하고, 동물들을 보호할 줄 모르는 인간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잃지 않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