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흡혈귀전 : 흡혈귀 감별사의 탄생 조선 흡혈귀전 1
설흔 지음, 고상미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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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처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둑한 날에는 오싹한 이야기가 제격이다. 내가 이런 류의 이야기를 가장 많이 읽었던 시기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였는데, 용돈만 생기면 동네 서점으로 달려가 책을 한 권씩 사곤 했다. 당시에 귀신이 등장하는 호러 물이나 미스터리로 가득한 추리 소설들을 주로 구매했었는데, 공포 소설은 집에 가져와서는 꼭 표지가 보이지 않게 뒤집어 놓곤 했다. 어린 마음에 그걸 보고 있으면 어쩐지 밤에 뭐라도 나타날 것 같아서 일부러 표지는 안 보려고 했던 건데, 그러면서도 무서운 이야기들은 주구장창 읽어 댔으니 신기할 따름이다. 무서워서 눈을 가리면서도 기어코 무서운 장면을 보고 싶어 하는 인간의 심리는 예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이런 책도 나오는 것일 테고 말이다.

 

 

세종 임금님은 고기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고기를 즐겨 먹었다. 보통 가마솥에 푹 삶은 수육, 소금으로 간을 한 구이, 매콤한 양념을 뿌려 구운 산적, 달짝지근한 맛이 나는 불고기로 마무리를 했는데, 고기반찬을 책임지는 수석 요리사는 이 순서를 '수구산불'로 줄여서 외우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임금님은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문서와 책에 파묻혀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목이 벌레에 물린 것처럼 따끔하더니, 참을 수 없는 배고픔이 느껴진 것이다. 배가 고파서 등이 아프고, 이마에서 땀이 흐르고,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말이다. 새벽이라 고민을 하다 수석 요리사를 부르기 위해 문을 열었는데, 때마침 방문 앞에 붉은 기가 도는 고기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그걸 먹고 난 뒤로 이상한 증상이 시작된다.

 

 

임금의 입맛이 완전히 바뀌어 평소 먹던 '수구산불' 들이 전혀 맛있게 느껴지지 않았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생고기를 탐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생고기를 먹지 않을 때는 무시무시한 배고픔의 증상이 찾아 왔다. 너무 배가 고파서 똑바로 앉기도 힘들 지경에, 이마에서 죽은 피처럼 검붉은 땀이 줄줄 흘렀을 정도로 말이다. 도대체 임금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이 이야기는 세종이라는 역사 속 인물과 흡혈귀 감별사라는 허구적 인물을 등장시켜 색다른 재미를 선하고 있다. 낯설고 기이한 흡혈귀의 정체만큼이나 독특한 '흡혈귀 감별사'라는 캐릭터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열두 살 소녀는 아버지가 대식국 출신이라 얼굴이 검고, 눈은 파랗다. 하지만 어머니가 조선 사람이고, 조선에서 나고 자라 우리말을 무척 잘한다. 게다가 외할아버지로부터 백정 일을 배워 고기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다. 자, 과연 이 소녀가 숨어 있는 흡혈귀를 찾아 내고, 임금을 구할 수 있을까? 

 

 

넷플릭스 <킹덤>에 K-좀비가 있다면, <조선 흡혈귀전>에는 K-흡혈귀가 있다! 이 책은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흡혈귀를 물리치는 열두 살 흡혈귀 감별사 소녀가 등장하는 이야기로, 그 동안 역사 속 인물과 고전을 화소로 삼아 정갈하고도 성찰적인 소설을 써 온 설흔 작가의 역사 판타지 동화이다.

 

생각보다 꽤 오싹하게 만드는 삽화들이 수록되어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어야 할 것이다. 물론 매체의 발달로 좀비니, 흡혈귀니 하는 것들을 많이 접해본 탓에 요즘엔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이런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읽을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스무 고개 탐정 시리즈>의 고상미 작가가 그림을 맡아, 짙고 강렬한 연필 선 위에 피와 욕망을 상징하는 붉은색, 빛을 상징하는 노란색, 강조를 나타내는 파란색 등 절제된 몇 가지 색깔로 흡혈귀가 사는 조선 시대를 그려 내고 있다. 주체적이고 당당한 어린이 주인공, 흡혈귀 감별사의 탄생이 앞으로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지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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