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웃게 하는 것들만 곁에 두고 싶다 - 오늘의 행복을 붙잡는 나만의 기억법
마담롤리나 지음 / 허밍버드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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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이 '나'를 기분 좋게 만드는지 잘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나를 다년간 지켜본 결과, 샤워하기 싫은 날 욕실에 크게 음악을 틀어 두면 흥이 솟아 저절로 씻게 된다거나, 제철에 따라 메뉴가 바뀌는 디저트 카페의 문을 여는 즉시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스스로를 잘 파악할수록 나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도 늘어나기 마련이다. 우울할 때, 실망했을 때, 외로울 때의 나를 위해 각각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기분 전환의 매뉴얼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p.21

 

다음 날 아침에 마실 커피를 자기 전에 미리 내려 텀블러에 담아 두기, 죄책감 없는 탕진을 위해 매일 천 원씩 자동이체 되는 적금을 개설하기, 의욕이 사라질 어떤 날들에 대비해 초콜릿을 하나둘 모아 놓기...등등 누군가에게는 사소하고 별 것 아닌 일들이 힘이 되고, 기쁨이 되어 주는 순간이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것이 나를 기운 나게 해주는지 스스로 알고 있어야 한다는 거다. 산미가 없는 다크한 로스팅의 원두로 갓 내린 커피 한 잔과 깊은 풍미의 그윽한 단맛을 내는 디저트 한 조각이면 세상 만사가 다 잘 될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다. 당장 내일 머리 아픈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걱정거리와 고민거리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이 책은 일러스트레이터 마담롤리나의 첫 번째 에세이이다. 워낙 여기저기서 마담롤리나의 그림들을 자주 보아와서 인지, 이번이 첫 번째 에세이라는 점이 놀라웠다. 사실 언젠가부터 그림 에세이가 유행처럼 출간되었고, 그림이 있다는 이유로 함께 수록된 짧은 글들에는 깊이도, 여운도, 사유도 없음에도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는 책들이 많았다. 주로 일러스트레이터들이 그런 책들의 주인공이었는데, 그림을 잘 그린다고 해서 꼭 글도 잘 쓴다는 보장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책은 계속 나왔다. 그래서 마담롤리나의 그림을 좋아하지만 별다른 기대 없이 이 책을 펼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은 겉멋 없이 솔직하고, 진실하며 담백하고, 소소하지만 따스한 글들을 담고 있었다. 물론 글만큼이나 많이 수록된 그림들은 보너스이고 말이다.

 

 

"너는 그림에 재능이 없어"라는 친구의 말 한마디에 나는 너무나 간단히 무너졌다. 당시 내가 생각했던 재능의 이미지란 갈고닦기보다 타고나야만 하는 무언가였고, 작은 노력만으로도 특출난 결과를 내는 치트키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계속 글을 써 왔던 사람이 뒤늦게라도 작가가 되는 걸 볼 수 있었다. 10년 전, 흑역사라 일컫는 첫 앨범을 냈던 친구는 10년이 지난 지금 나름의 히트곡이 생겼다. 꾸준히 하는 사람이 결국에는 잘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이를 깨닫고 나서야 비로소 '재능'이란 단어에 겁먹지 않게 되었다. 이제 나에게 재능이란 꾸준함이다.      p.230

 

마담롤리나는 좋지 않은 일을 더 잘 기억하는 편인데다, 그런 상황을 반복해서 곱씹어 보는 버릇도 있었고, 울적할 때마다 쇼핑으로 감정을 해소하다 보니 불필요한 카드 빚도 생겨버렸고, 회사도, 아르바이트도 오래 못 다니고 그만두었으며, 그림에 재능이 없다는 폭언과 별로 유명하지 않으니 이런 대접도 참으라는 무례를 견뎌야 했다. 하지만 그 숱한 과정들을 거쳐 가면서 그녀가 깨달았던 것은 '내가 처해 있는 현실을 바꿀 수 없다면, 웃는 순간을 모아 하루를 좋은 날로 바꿔 보자'는 것이었다.

 

 

거창한 목표보다는 만족스럽게 잘 보낸 하루들이 모여 만들어 지는 것이 인생이니 말이다. 그렇게 이 책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자신만의 루틴을 만들고, 스스로를 미소 짓게 만드는 확실한 일상의 행복들을 그려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림만큼이나 섬세한 글들이 담담하게 공감과 위로를 불러오는 책이었다.

 

그녀는 어느 날 그리고 싶었던 그림을 그리다가 식은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 그냥 시간 낭비면 어쩌나, 이 시간에 돈이 될 만한 무언가를 하는 것이 더 낫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일이 생계와는 거리가 먼 사치처럼 여겨질 때가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깨닫는다. 이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꼭 붙드는 일이고, 이런 순간들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거라고. 비록 아무런 수확 없이 끝나더라도 그 시도의 과정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경험과 기대가 나를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현실을 바꾸진 못해도 나의 하루는 바꿀 수 있는 일상의 소소한 다짐들이 이제부터의 나를 웃게 만들어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채색 일상에 색을 입히는 마담롤리나의 일상 속 숨은 행복 찾기를 함께 해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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