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의 바다에 구명보트 띄우는 법 - 우울증을 겪고 있는 이와 그 가족들을 위한 실전 매뉴얼
오렌지나무 지음 / 혜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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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가까이 우울증을 앓는 동안 저는 단 한 번도 우울증에서 벗어나야겠다는 결심을 한 적이 없어요. 제가 이토록 괴로운 이유는 우울증 때문이 아니라 망가진 인생 때문이라고 여겼죠. 현실을 못 바꾸니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고 믿었어요. 이렇게 원인과 결과가 뒤바뀐 채, 우울증 치료보다 '마음에 들지도 않고 그렇다고 바꿀 수도 없는 현실'에만 매달렸죠...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어요. 인생은 망했을지 몰라도 우울증은 나아야겠다고 결심했어요.      p.36

 

우울증 경력 20년, 은둔형 외톨이 경력 7년, 자살 시도 경력 10년, 이번 생은 돌이킬 수 없이 망했다고 생각했던 저자의 이력이다. 우울증이 가져다 주는 고통 속에서 매일같이 발버둥 쳤지만 빠져나올 방법이 없었던 저자에게 유일한 출구는 자살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울증이 사라졌다. 처음에는 우울증과 열 번 싸워 한 번 이기는 정도였다면 지금은 아홉 번 정도는 이길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 이 책은 약이나 외부의 도움 없이 마음의 면역을 만들어 갔던 과정을 담고 있다.

 

 

저자는 심리 상담이나 약물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말한다. 정신과 진료에 대한 거부감 같은 건 없었지만 입원비도 만만치 않았고, 학자금 대출도 쌓여 있었다. 가족들이 적극적으로 병원에 데려가 주고 치료를 지지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은 간절했지만, 가족은 우울증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했고 병원 치료에도 거부감을 갖고 있는 상태였다. 아마 우울증을 앓고 있는 이들 중 상당수가 비슷한 상황에 있지 않을까 싶다.

 

우울증을 폐렴이나 위장병처럼 평범한 질환처럼 여기지 않은 것이 사회적 시선이고, 정신적 질병도 육체적 질병처럼 평등하게 다룰 수 있게 되려면 아직 멀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우울증을 치료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우울증이 진짜 병이 아니라는 편견'때문일 것이다. 우울증을 겪고 있는 당사자도, 그의 가족들도 대부분 이러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이런 사랑을 매일 주는 건 불가능해요. 하루 종일 잠만 자다 저녁 7시쯤 겨우 일어나 세수도 안 하고 게임부터 하면 부처님이 아니고서야 화가 많이 날 거예요. 아무리 참고 또 참아도 결국 터트리게 되는 날이 많을 거예요. 그래도 10번 화냈다면 3번 정도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세요. 병을 줬으니까 약도 챙겨 줘야죠. 우울증에 걸린 사람도 가족들이 왜 화를 내는지 잘 알아요. 얼마나 힘든지도 알고요. 다만 자기 존재가 가족들에게 짐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죽고 싶은 거죠. 가족들이 평온한 상태일 때 해 줬던 말들, 표현해 주었던 사랑들이 이럴 때 큰 힘을 발휘해요.     p.191

 

이 책은 병원의 도움과 약의 처방 없이, 오직 혼자만의 힘으로 우울증을 이겨 낸 저자의 눈물겨운 투쟁의 기록이다. 20년간 우울증과 함께 살아오며 깨닫고 실천한 매뉴얼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는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저자가 우울증을 겪어온 시간과 자살하면 안 되는 이유를 찾아낸 과정을 통해서 공감하고, 위로 받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셀프 심리 상담 방법, 자살을 막기 위한 가족 매뉴얼, 무엇보다 먼저 살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한다는 것부터 일상을 지탱할 최소한의 규칙을 만드는 과정 등 저자를 살린 구체적인 방법이 모두 담겨 있다. 우울증 환자에겐 사람이 구명보트가 된다. 그러니 가능하다면 주위 사람들을 잘 지켜 나가야 한다. <한낮의 우울>에서 앤드류 솔로몬은 '자기를 구해 줄 구명보트를 핀으로 찌르는 짓은 하지 말라'고 말했다. 저자 역시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버텨왔다고 한다. 상처를 주고받더라도 주위에 사람이 있는 게 우울증 치료를 위해서는 더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혹시 지금 우울증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면, 이 책에 실린 작은 실천들이 구명보트가 되어 주기를 바래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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