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와의 정원
오가와 이토 지음, 박우주 옮김 / 달로와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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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잊는다. 엄마 같은 건 처음부터 없던 셈 친다. 엄마가 나를 잊은 것처럼 나도 엄마를 잊는 것이다. 그러면 나와 엄마는 비긴 것이 된다. 물론 그렇게 간단히 엄마를 잊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는 이미 내 마음속에 살고 있다. 내장처럼 내 몸의 일부가 되어 있다. 그래도, 그럼에도 나는 엄마를 잊어야만 한다. 내 마음속에서 엄마를 쫓아내야만 한다. 그것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자 살아가기 위한 방법이었다. 나는 '엄마'를 봉인했다.     p.121

 

눈먼 소녀 토와는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다. 아빠는 일주일에 한 번, 집으로 생필품을 가져다 준다. 매주 수요일마다 필요한 물건들을 가져다 주어 '수요일 아빠'라고 마음속으로 불렀다. 토와와 엄마는 오랫동안 밖으로 나가는 일 없이 둘이서만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토와랑 둘이서 살아가기 위해 일을 하기로 했다며 저녁 외출을 시작한다. 엄마는 나가기 전 토와에게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약을 주었고, 토와가 자고 일어나면 다시 엄마가 돌아와 있는 일상이 시작된다. 두 모녀의 평화롭던 생활은 그 이후 점점 달라지기 시작한다. 피곤해진 엄마는 전처럼 정성들인 음식을 해주지 않았고, 좀처럼 책을 읽어주지도 않았으며, 감정 기복이 심해져 갔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잠에서 깬 토와 곁에 엄마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오로지 엄마가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렸지만 엄마는 오지 않았다. 그 뒤로 얼마 동안은 수요일 아빠가 생필품을 전해주고 갔지만, 그것마저도 사라지고 토와는 점차 언제가 낮이고 언제가 밤인지, 봄인지 가을인지도 모른 채로 시간을 흘려 보낸다. 꽤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토와가 사람들에게 구조되고 나서 알게 된 엄마에 대한 진실은 충격 그 자체였다. 한 순간도 떨어지는 일 없이 매일매일 사랑의 속삭임을 주고받으며 ‘영원한 사랑’을 확인했던 엄마의 모습이란 전부 다 허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데 홀로 버려져 삶을 견뎌내야 했던 토와는 “살아 있다는 건, 굉장한 일이구나.” 라고 느낄 줄 아는 어른으로 성장한다. 그 배경에는 엄마가 나무를 심어준 정원과 엄마가 읽어준 책들 속 이야기가 있었다.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내게 책을 읽어주었던 건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야기는 나를 구해주었다. 글자 그대로 목숨을 구해주었다. 아무리 현실 세계가 괴로워도 이야기가 나에게 도망칠 장소를 마련해주었다. 만일 내 삶에서 이야기마저 빼앗기고 말았더라면 나는 진작에 삶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나한테 이야기는, 생명의 은인이야."       p.220

 

아름다운 손편지로 누군가의 간절한 마음을 대신 전해주는 가슴 뭉클한 기적을 보여줬던 <츠바키 문구점>, 일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소소한 음식들이 풍요로운 힐링을 전해줬던 <양식당 오가와>, 경건하고 순박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동화 같은 소박한 이야기 <마리카의 장갑> 등 오가와 이토의 소설들은 섬세하고 따뜻하다. 평범한 일상들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내는 보통날의 기적을 보여주었던 작가인데다, 표지도 너무 따스한 느낌이라 이번 작품 역시 전작들과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토와와 엄마의 이상한 관계와 이후에 밝혀진 극악무도한 범죄 때문에 사실 좀 당황했다. 어쩐지 내가 알던 오가와 이토의 작품 같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어둡다거나 무거운 느낌이 없다는 것이 신기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소녀 토와는 평범하게 엄마의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지 못했지만, 정원의 나무들과 말을 하고, 꽃 향기로 위로 받는다. 정원에 있는 나무들이 향기라는 마법의 언어로 토와에게 말을 걸어주었기 때문에, 무서운 순간들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다. 정원의 친구들이 잇따라 피고 지며 마치 계절이라는 이어달리기의 바통을 넘겨주듯 향기의 언어로 말을 걸어주어, 비로소 토와는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게 된다. 아무 것도 먹을 것이 없는, 쓰레기로 가득 찬 집에서 눈도 보이지 않는 소녀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기적 같은 일은 바로 '토와의 정원’덕분이었던 것이다. 오가와 이토의 작품은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햇살 가득한 풍경 속에 서 있는 듯한 건강한 느낌이 페이지마다 묻어 있어서 좋다. 이번 작품은 전작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시작하지만, 결국은 특유의 따뜻함으로 끝이 난다. 오가와 이토의 작품을 좋아한다면, 이 작품 역시 놓치지 말길!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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