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버 드림
사만타 슈웨블린 지음, 조혜진 옮김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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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라에게 일어난 일이 나한테도 일어날 수 있을지 궁금해. 나는 항상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거든. 지금 당장은 니나가 느닷없이 수영장으로 달려가 뛰어든다면 내가 차에서 뛰쳐나가 그애한테 이르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계산하는 중이야. 나는 그걸 ‘구조 거리’라고 불러. 딸아이와 나를 갈라놓는 그 가변적인 거리를 그렇게 부르는 거지. 나는 그 거리를 계산하며 반나절을 보내. 그러나 항상 실제로 일어날 법한 상황보다 더 많은 위험을 상상하지.      p.27~28

 

아만다는 어린 소년 다비드와 대화를 하는 중이다. 그녀가 까슬까슬한 시트 위에 누워 있다는 건 느껴지지만 어두워서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 소년은 아만다의 귀게 대고 속삭이듯 말한다. 벌레가 생기는 정확한 순간을 찾아내야 한다고. 아만다는 왜 그래야 하느냐고 묻는다. 다비드는 그것이 우리 모두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말한다. 아만다는 다비드의 질문들을 들으며 기억 속 풍경을 되살려 본다. 그녀는 바쁜 남편을 도시에 두고 먼저 어린 딸 니나와 함께 시골로 휴가를 보내러 온 참이다. 그리고 빌린 별장의 이웃에 사는 여인 카를라를 알게 되었고, 카를라는 바로 다비드의 엄마이다. 아만다는 카를라와 나누 었던 대화, 그날의 풍경들을 세세하게 들려주고, 다비드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끊임없이 질문한다.

 

두 사람의 대화로만 이루어진 작품이라, 이야기를 읽는 내내 우리는 이 작품의 전체 서사를 그려볼 수가 없다. 그저 아만다가 몇시간 뒤면 죽을 거라는 사실, 그녀가 딸과 떨어지게 되었는데 대체 어디에 있는 건지 찾고 있다는 것과 다비드가 사람들을 죽게 만드는 병의 원인을 찾기 위해 벌레가 언제 정확히 생겨났는지를 알아보고 있다는 것만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카를라가 아만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또한 오싹한데, 다비드가 6년 전쯤에 병이 나서 죽어가다 마을의 ‘녹색 집의 여인’에게 어떤 치료를 받았고, 그 뒤로 ‘괴물’이 되었다는 거였다. 그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혼란에 빠진 아만다 만큼이나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들도 인물들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이 모든 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바로 그렇게 실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책장을 넘기는 내내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시종일관 뭔가 기묘하면서도 섬뜩한 느낌에 사로잡히게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 맞아요, 아만다 아주머니. 저는 응급병동 병실에 있는 아주머니 침대 가장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있어요. 우리에겐 시간이 얼마 없어요, 그리고 시간이 다 되기 전에 정확한 순간을 찾아내야 돼요.
"그런데 니나는? 이게 모두 실제 벌어지는 일이라면 니나는 어딨지? 세상에, 니나는 어디 있니?"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p.46

 

이 작품은 2017년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르고 셜리잭슨상 중편 부문을 수상한 아르헨티나 작가 사만타 슈웨블린의 대표작이자 국내 첫 출간작이다. 영화로도 제작되어 올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정말 오싹한 작품이 될 것 같아 기대가 된다. 무엇보다 굉장히 독특한 구조로 이루어진 소설이라 영상화 되었을 때 어떻게 그려질 지도 궁금해진다. 구체적인 장소도, 시간도, 배경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오직 두 사람의 대화로만 진행되는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서스펜스의 힘 또한 화면 상에서 더욱 긴장감을 불러일으킬 것 같아 어떤 배우가 역할을 맡게 될지도 기대가 된다. 사만타 슈웨블린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이지만, 2019년과 2020년 이례적으로 2년 연속해서 인터내셔널 부커상 후보에 오를 만큼 세계적인 젊은 거장으로 인정받고 있는 라틴아메리카 대표 작가라고 한다.

 

이 마을에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아만다 주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니나는 어디에 있는 걸까? 시골 소년 다비드는 왜 아만다와의 대화 속에 이 모든 일의 해답에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마을 사람들을 감염시키고 있는 이 병의 원인은 무엇이며 언제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아만다는 결국 어떻게 되는 걸까.. 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 질문이 끊이지 않는다. 그만큼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대단한 작품이었고, 독특한 독서 체험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작가는 "문학에서는 말해지지 않는 것이 때로는 이야기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라고 말했다. 이 작품은 그렇게 보여지지 않는 것들을 상상하는 과정에서 재미와 공포를 동시에 선사하고 있다. 동시대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최정점에 있는 작품이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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