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관들
조완선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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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정의? 그건 아니었다. 공정한 법 집행? 그것도 아니었다. 인간쓰레기들을 없앤다고 정의가 서지 않는다. 법 집행이 공정하게 이뤄지지도 않는다. 허 선배가 찾아온 지 한 달이 지나서야 그럴 듯한 명분을 찾았다. 수천 만 명 중에, 쓰레기를 전담 처리하는 청소부가 몇 명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사회 정의를 이루지는 못해도 이 사회가 만만치 않다는 걸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그 몇 명 중에 한 명이 되기로 했다. 허 선배의 말대로 분노를 꼭 가슴에 담아둘 필요는 없었다.      p.142

 

역사학 교수인 최주호에게 오랜 만에 고등학교 동창이라는 허동식이 찾아 온다. 낯설고 생소한 이름에, 겨우 그를 기억해 낸 최주호에게 허동식은 요즘 술상머리에서 단연 화제가 되고 있는 정치인에 대한 이야기로 말을 꺼낸다. 그는 최주호가 최근에 신문에 쓴 칼럼은 물론 연구 논문까지 줄줄이 외며 근황에 대해 잘 알고 있었는데, 다짜고짜 부탁이 있다며 노창룡에 대한 자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노창룡은 일제 강점기에 악명을 떨친 고등계 형사를 지낸 인물로 이 땅에 생존해 있는 유일한 친일파로 알려져 있다. 최주호는 작년 봄에 친일 청산의 증표로 반드시 그를 잡아들여 치욕의 역사를 심판해야 한다는 칼럼을 쓴 적이 있었다. 정말 생뚱맞은 요구였지만, 차마 25년 만에 나타난 동창의 부탁을 외면할 수 없어서 최주호는 허동식에게 자료를 만들어 보낸다. 그리고 닷새 뒤, 노창룡이 살해되었다는 기사가 뜨고 인터넷은 난리가 난다. 비밀리에 입국한 노창룡은 수십 년 전 그가 사용하던 고문 방법으로 살해되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살인은 이후로도 계속 이어졌고, 온갖 부정부패와 비리를 일삼으면서도 법의 심판대 앞에서는 합당한 처벌을 받지 않고 피해나가며 호의호식하는 정치인, 기업인, 공직자 들이 그 대상이었다. 친일파, 부패 정치인 등 요즘 댓글에 흔히 쓰이는 인간쓰레기들이었다. 대중들에게 '공공의 적'이라는 것 때문에 그 어디에도 살인범을 비난하는 여론은 없었다. 그렇게 국정과 사법을 농단한 적폐들이 살해될 때마다 온 국민이 환호하고 응원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지만, 어떤 연유에서라도 살인을 정당화할 수는 없는 법이다. 대체 누가, 이들을 처단하고 있는 것일까.

 

 

 

"우린 펜대만 붙잡고 두덜거리는데, 그자들은 실행에 옮기고 있잖아. 우리보다 백 배 천 배는 낫지."
"그래도 살인은 정당화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한 차장이 끼어들었다.
"그야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지... 전쟁 중에 벌이는 살인 행위는 모두 정당하지 않은가?"
"저, 전쟁 중이라니요?"
"그자들은 지금 한창 전쟁 중인 거야......
꼭 총칼을 들어야 전쟁인가?"    p.235

 

첫 장편소설 <외규장각 도서의 비밀>로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을 흥미롭게 재구성했던 조완선 작가의 신작이다. 누구나 분노하지만 행동으로 나서지 못한 악인 처단을 국민의 대리인으로서 집행해 나가는 ‘집행관들’을 등장시켜 대리 만족과 통쾌한 희열을 안겨주는 작품이다. 누구나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 하지만, 현실에서 솜방망이 처벌로 죗값을 면하는 부패 정치인과 악질 기업인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 그들에게 죄에 합당한 엄벌을 내려준다면 어떨까. 문서 조작, 불법 로비, 언론 장악 등 대한민국 사회에 공고한 권력 카르텔의 성을 무너뜨리고 공정한 법 집행이 무엇인지 보여줄 수 있다면 말이다.

 

이야기는 원치 않게 살인 사건에 연루된 역사학자 최주호와 수사팀의 우경준 검사, 그리고 허동식 감독을 비롯한 집행관들의 시점으로 교차 진행되며 긴장감을 만들어 낸다. 법은 모두에게 평등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집행관들은 그렇게 해서라도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시켜주겠다거나, 개인적인 보복을 하겠다는 것이 동기가 아니었다. 세상을 바꾸려는 것도, 불타는 정의감 때문도 아니라고 말하는 그들의 진짜 목적은 무엇일까. 법이 사건 종결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불의를 옹호하기까지 하는 데에 분노해본 적이 있다면, 누구라도 카타르시스를 느끼면서 읽을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세상의 모든 갑들에게, 통쾌한 복수를 보내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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