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
울리히 알렉산더 보슈비츠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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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사람이 별로 없었고 자동차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융페른슈티크에 도착한 그는 알스터 강으로 다가가서 잿빛 강물을 잠시 노려봤다. 어둡게 흘러가는 수면에 반사된 가로등 불빛을 보다가 심호흡을 했다. 차갑고 축축한 바람에 머리가 맑아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질버만은 혼잣말을 했다. 어려움에 처하고, 귀찮은 일을 당하는 건 맞아. 하지만 다시 편안해질 거야. 그냥 이주해도 되고. 사실 그다지 나쁜 상황은 아니야. 살아 있으니까. 그래,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으니까.      p.83

 

기차를 배경으로 한 표지 이미지에 '여행자'라는 제목을 하고 있지만, 이 작품 속에서의 '여행'은 우리가 알고 있던 의미와는 전혀 다르다.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것 외에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다. 낯선 곳에서 어떤 고생을 하더라도, 혹은 어떤 위험을 겪게 되더라도 결국은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이 든든한 보험처럼 우리를 심리적으로 지켜주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돌아갈 곳이 없다면 어떨까. 끝없이 계속 움직여야 한다면 말이다. 이 작품 속 주인공인 질버만은 기차를 타고 베를린에서 함부르크로, 도르트문트로, 아헨으로 독일 전역을 돌아다닌다.

 

이런 식으로 계속할 수 있을 거야. 나는 이제 여행자다.

 

너무도 비현실적인 현실 속에서, 여행이라기보다는 그저 기차를 타고 움직이고 있는 남자. 그는 움직이고 있는 동안에만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낀다. 너무도 피곤하지만, 갔다가 왔다가, 왔다가 갔다가 반복하며 여행하는 동안 자신은 지금 독일에 있는 게 아니라고 믿고 싶은 것이다.

 

 

 

질버만의 시선이 다시 젊은 노동자를 향했다... 노동과 더 높은 임금과 생존을 위해 쉴 새 없이 싸우느라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느끼지 못해. 이 사람들은 청춘이 없어. 열네 살이 되면 이미 싸움이 시작되는데 늘 존재 자체가, 그저 살아남는 게 중요하지. 나도 마찬가지야. 죽음이 바짝 쫓아온 게 보여. 하지만 죽음보다 항상 더 빨리 달리기만 하면 돼. 서 있으면 가라 앉고 부패한다고.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려야 해. 사실 나는 언제나 달렸어. 그런데 왜 하필 지금, 다른 어느 때보다 더 잘 뛰어야 하는 지금 이렇게 힘겨울까.      p.211

 

1938년 11월 독일에서 대규모의 유대인 박해 사건인 일명 ‘수정의 밤’이 벌어졌고, 이 소식을 들은 작가는 사 주 만에 이 사건을 소재로 한 두 번째 소설 《여행자》를 써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수십 년 동안 독일국립도서관 문서실에 잠들어 있다가 2018년에야 저자의 모국어인 독일어로 출간되었고, 《안네의 일기》(1942~1944)보다 앞서 집필된 유대인 당사자가 쓴 최초의 소설인 만큼 기념비적인 고발문학으로 주목받았다. 사건 당시 수많은 유리창이 깨졌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수정의 밤(Kristallnacht)’에 나치 돌격대와 지지자들은 도끼와 쇠망치로 무장하고 수천 개의 유대인 상점을 깨부수고 약탈했으며, 당시 유대인 3만명 이상이 체포되어 강제수용소로 보내졌다.

 

극중 성공한 유대인 사업가였던 질버만은 하루아침에 도망자로 전락한다. 독일에서 나가야 했지만, 사실 갈 데가 없었다. 특히나 질버만은 전형적인 약자나 희생자가 아니라는 점이 인상적인데, 나치의 탄압이 시작되기 전에는 자본가로서 기득권 층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유대인이 아닌 것처럼 살아왔던 그는 도망치는 와중에도 스스로는 다른 유대인들과 엄연히 다르다고 여기고 있다. 유대인이라는 사회적 낙인이 찍히기 전에는 그와 가족에게 유대인이라는 사실이 전혀 중요하지 않았기에, 수정의 밤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이 그에게 더 충격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작가의 자전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쓰인 작품이라 당시의 독일 풍경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었다. 작가 역시 나치를 피해 유럽을 떠돌다 스물 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끝내 죽임을 당했다. 그리하여 원고가 모국어로 출판되기까지 80년이라는 시간이 걸리게 된다. 역사 속에서 사라져 버린 이름 없는 희생자들에게 이름을 부여했다는 것도, 허구의 이야기인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역사적 증언을 하고 있다는 점도 매우 의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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