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드 오브 타임 - 브라이언 그린이 말하는 세상의 시작과 진화, 그리고 끝
브라이언 그린 지음, 박병철 옮김 / 와이즈베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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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미래의 차이는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엔트로피가 아직 최대치에 도달하지 않은 현재에서 시간이 더 흐르면 제2법칙에 의해 엔트로피가 증가할 확률이 엄청나게 높으므로, 과거와 다른 미래가 펼쳐지는 것이다. 최대 엔트로피에 도달하지 않은 배열은 며칠을 굶은 상태에서 음식을 찾는 사람처럼 엔트로피가 최대인 상태를 향해 달려간다. 성급한 물리학자가 과거와 미래의 다른 점을 찾다가 이 사실을 깨달았다면, 드디어 답을 알아냈다며 쾌재를 부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p.64~65

 

이 책은 《엘러건트 유니버스》《우주의 구조》등으로 칼 세이건 이후 최고의 ‘대중 과학 전도사’로 불리는 브라이언 그린이 10여 년 만에 쓴 신간이다. 미국 현지에서는 2020년 출간되어 즉각 아마존 과학 분야 1위를 차지했던 정말 따끈따끈한 신작인데, 카이스트 출신 과학전문 번역가 박병철 박사의 번역으로 국내에서도 빨리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엔드 오브 타임>이라는 제목처럼 이 책은 우주의 시작에서 끝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보여준다. 입자물리학과 우주론을 바탕으로 '시간이 처음 흐르기 시작했던 시점부터 종말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우주가 어떤 길을 걸어 왔고 또 앞으로 어떤 길을 가게 될지' 만날 수 있다. 빅뱅에서 시간의 종말까지 우주의 시공간을 여행하는 가이드는 바로 '엔트로피'이다. 물질의 열역학적 상태를 나타내는 엔트로피는 '열역학 제2법칙'으로 어느 정도 익숙한 개념이다. 엔트로피는 시간이 흐르면서 항상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거다. 질서 있는 것들이 점점 무질서한 방향으로 흐른다는 것이 세상의 모든 물질이 따르는 법칙이다. 하지만 진화는 엔트로피 증가 법칙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별과 은하, 행성 등 질서 정연한 천체를 형성하고, 우주에서 가장 정교한 구조를 가진 생명체까지 만들어낸 것이다. 이 책은 시간대를 거슬러가면서 언젠가 붕괴될 우주에 별과 은하, 그리고 생명과 의식 등 질서정연한 피조물을 창조한 물리학 원리를 차근차근 살펴본다.

 

 

 

과학은 언제나 변하지 않을 것 같은 현실의 저변에서 역동적인 드라마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아냈다. 모든 만물은 입자로 이루어져 있고, 이들이 캐스팅한 '진화'와 '엔트로피'라는 두 캐릭터가 서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드라마의 플롯은 간단하다. 진화가 어떤 구조를 애써 만들어 놓으면 엔트로피가 그것을 파괴하는 식이다. 이야기 자체는 깔끔한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앞에서 보았듯이 진화와 엔트로피는 적대적 관계가 아니다. '전체의 대강'이 항상 그렇듯이, 이야기를 단순화시키면 중요한 진실이 흐릿해지거나 아예 사라져 버린다.     p.353

 

이 책이 흥미로운 것은 물리학의 기본 원리를 이용해 빅뱅과 별, 행성의 탄생 과정, 별의 내부에서 복잡한 원소가 합성되는 원리 등을 설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딱딱한 과학서의 느낌보다는 소설이나 에세이처럼 술술 읽히며, 마치 인문서나 철학서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분명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의식의 진화와 인간 존재의 의미, 우주의 종말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그려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재미있게 읽힌다는 점도 놀라웠다. 과학 전공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설명하는 과학 이론들이나 용어들이 전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만 보아도, 저자가 얼마나 공들여 문장을 썼는지 짐작이 될 것이다. 이렇게 깊이 있고 심오한 내용을 명쾌하고, 재미있고,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재미있게 쓸 수 있는 과학자가 또 있을까 싶을 만큼 감탄하면서 읽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이 동일한 요소로 이루어져 있으면서 동일한 물리 법칙을 따른다고 하면, 사람 또한 물리 법칙의 지배를 받는 입자의 집합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빠져 있는 것은 바로 '의식'이다. 생각하고, 느끼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두려워하고, 동경하고, 희생하고, 상상하고, 창조하는 능력 말이다. 의식에 관한 이야기는 엔트로피와 진화, 그리고 생명의 '바깥에서' 연구될 수 있다. 무엇보다 의식의 수준에서 우주를 이해하려면 완전히 개인적이면서 자율적이고 주관적인 현실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점을 대단히 흥미롭게 읽었다. 거기다 철학자의 사유가 등장하고, 일상생활 속의 유사한 사례와 비유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어 어려운 전문 용어가 남발하는 과학 서적을 상상했던 독자들에게조차 책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도와주고 있으니 그야말로 '대중적인' 과학책 이었다. 자, 이 책과 함께 과학이라는 엔진이 장착된 우주선을 타고 인간과 우주를 향해 '신나는 모험'을 떠나 보자. 여기서 방점은 '신나는'에 있다. 지금부터 호기심과 상상력, 재치와 감동까지 안겨주는 즐거운 경험을 하게 될 테니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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