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허밍버드 클래식 M 1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한에스더 옮김 / 허밍버드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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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야 상관없겠죠. 남자의 이름은 하이드였습니다."
"자네가 보기엔 어떤 사람이었나?"
"한마디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겉모습이 이상하고 쳐다보기만 해도 불쾌하고 역겨웠습니다. 그렇게 혐오스러운 인상은 처음인데 이유를 정확히 알 수도 없고, 어딘지 모르게 기형이라는 느낌도 강하게 들었습니다. 아주 특이하게 생겼지만 어디가 이상한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질 못하겠어요. 그렇다고 기억이 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도 눈앞에 서 있는 것처럼 생생하거든요."       p.17

 

사람들이 모두 잠든 고요한 거리, 키가 작은 남자가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열 살 정도의 어린 여자아이가 힘껏 달려 길을 건너오다 그 남자와 부딪히고 만다. 그런데, 남자가 넘어진 아이를 태연하게 짓밟다가 그냥 가버리는 게 아닌가. 아이는 쓰러져 일어나지도 못하고 소리를 지른다. 그 장면을 목격한 남자가 달려가 남자의 뒷덜미를 잡아 현장으로 데려왔지만, 그는 태연하고도 냉혹한 모습으로 그를 쳐다본다. 대체 뭐가 문제냐는 듯이 말이다. 사람들은 아이의 가족에게 줄 위로금을 요구했고, 그는 수표를 꺼낸다. 그런데 수표에 서명되어 있는 이름은 신문에도 자주 나올 정도로 유명한, 훌륭한 사람의 이름이었다.

 

유복한 가문에서 태어나 현명하고 선한 사람으로 존경을 받아온 지킬 박사. 그에겐 남들이 모르는 단점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쾌락에 쉽게 빠진다는 거였다. 그는 스스로 세운 높은 이상에 갇혀 병적인 수치심으로 욕구를 숨겨 왔지만, 인간의 두 가지 본성인 선과 악을 가르는 실험을 통해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인 하이드를 발견한다. 도덕적이고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지킬 박사와 괴물 같은 외모로 오로지 쾌락만을 추구하는 하이드가 동일 인물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이드는 지킬 박사가 가지고 있었던 제2의 자아임에는 분명하다. 결국 하이드의 힘은 점점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마침내 지킬의 영혼을 잠식하게 되는데...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의 이중성을 발견한 것도 도덕적인 나였지. 하지만 두 가지 본성 중 어느 한쪽만이 진정한 나라고 인정하더라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 역시 그 둘 모두가 진정한 나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네. 의학적 발견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부터 나는 기대에 차 있었지. 내 안에 존재하는 두 자아를 분리하게 될 기적이 가능하리라 믿으면서 기뻐도 했고. 두 개의 나를 두 개의 전혀 다른 자아에 가둘 수만 있다면 끔찍한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리라 나 자신을 설득했네. 사악한 나는 정직한 내가 느끼는 죄책감을 잊고 자유로이 살 테고, 정직한 나는 기꺼이 선행을 베풀며 정상을 향해 안정적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겠나.    p.102~103

 

대부분의 고전이 그러하지만, 이 작품 역시 원작보다는 다른 매체를 통해 먼저 만나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만큼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는 영화와 뮤지컬, 연극, 오페라 등을 통해 수없이 변주되어 온 작품이니 말이다. 누구나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 외에 또 다른 면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라는 두 인격은 다소 극단적인 모습이긴 하지만, 선과 악이라는 대비를 보여주기에 이만큼 매력적인 선택도 없었을 것이다. 타락을 향한 욕망으로 터질 듯한 내면을 철저히 억누른 채 겉으로는 점잖은 척 교양과 아량을 두른 지킬의 이중적 면모를 분열된 두 인격 간의 갈등으로 그려낸 이 탁월한 작품은 분량이 길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페이지를 덮고 나서도 많은 여운을 남겨 준다.

 

선과 악의 경계는 현대에 이르러서는 더욱 불분명해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우리는 공권력이 항상 선한 것이 아님을 이미 알고 있고, 폭력, 범죄 집단에도 그들 나름의 사정이란 것이 있고, 아무리 선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악한 면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물론 그 악한 부분을 죽을 때까지 내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선과 악을 명확하게 구분짓는 다는 것이 어쩌면 애초에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 모두 완벽할 수 없는 인간이기에, 사소한 욕망이나, 나약한 이기심에 굴복하는 순간이 오게 마련이고, 태어날 때부터 선한 것이 인간이라 하여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악으로 가득 차 있어 조금은 물들게 되는 순간도 올 수밖에 없고 말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만큼은 선과 악이 너무도 자명하게 드러나 보인다. 물론 그것이 한 사람의 내면 안에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지만 말이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이 작품이 오랜 시간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싹한 고딕 추리소설이자 뛰어난 심리소설이기도 한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의 이중성과 선과 악의 대립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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