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보그가 되다
김초엽.김원영 지음 / 사계절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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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 기계와 결합한 존재란 아이언 맨 슈트를 입고 하늘을 날거나 온갖 화려한 차종으로 변신하는 모빌리티를 타는 존재가 아니라, 낡은 철제 수동 휠체어를 탄 이들, 오래된 전동 휠체어를 타고 배터리가 방전될까 걱정하는 이들, 3일에 한 번씩 신장 투석기에 접속하고 4시간씩 혈액의 노폐물을 걸러주느라 스케줄 조정에 곤란을 겪는 이들이다. 그러므로 '사이보그가 되어서' 스스로를 온전한 존재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언젠가 도래할 첨단의 기계와 결합하거나 기계 없이도 '정상적인 몸'이 될 날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일상에서 사용하는 기계들과 더 안전하고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공존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p.63

 

김초엽 작가에게 후천적 청각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독자들이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청력 손상을 가지고 있다고 굳이 말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장애를 잘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청각장애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당사자가 알리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보이지 않는 장애'이니 말이다. 그 외에도 심리적인 문제, 내부장애, 만성 통증 등의 보이지 않는 장애는 지속적으로 '의심'을 받는다. 주변인들이 즉각적으로 인지할 수 없고, 혹은 장애 상태를 잊어 버리거나, 당사자가 경험하는 고통에 둔감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애가 드러나지 않는 것과 장애가 있음을 드러내는 것 중에 어떤 것이 더 편한 것일까.

 

한국의 등록된 장애인 인구는 작년 봄 기준으로 261만 명으로 전체 인구 대비 5퍼센트가 살짝 넘는다.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일상에서 장애인을 마주치는 일은 흔치 않다. 왜냐하면 장애인들이 오랫동안 집과 시설에 격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을 보려고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과학을 전공한 소설가 김초엽과 사회학, 법학을 전공한 변호사 김원영이 각기 보청기, 휠체어라는 테크놀로지와 밀접하게 결합하여 살아온 경험을 토대로 과학기술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초엽 작가는 보청기를 착용하고, 김원영 변호사는 휠체어를 타며 생활하고 있으므로 기계와 결합한 유기체라는 점에서 '사이보그적인' 존재일 것이다. 이들은 사이보그라는 상징을 통해 자신들의 경험과 자기 정체성을 반추해본다.

 

 

우리는 타인의 삶이 각자 너무나 고유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쉽게 잊는다. 어떤 주관적 세계는 그 세계를 직접 경험하며 살아가는 사람조차도 전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인간 보편의 삶에 대한 해석이 수도 없이 주어져 있지만 결국은 모든 사람이 각자 고유한 삶의 문제로 고민하는 것처럼, 그 보편의 해석조차 갖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 세계를 설명하는 일이 훨씬 더 힘들다. 여기서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 생겨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p.260

 

나는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장애를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실제 삶에서 기계와 연결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보청기와 휠체어라는 보조기기가 생각보다 값이 비싸고, 불완전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실의 기계는 피부를 짓무르게 하고, 온갖 염증을 일으키고, 끊임없이 잔고장이 나며, 지속적인 관리와 전문가의 점검을 필요'로 하지만, 이는 장애인들의 삶을 경험해보지 못한 이들이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사이보그의 매력적인 이미지는 다양한 매체에서 활발하게 소비되지만, 실제로 기술과 결합해 살아가는 장애인 사이보그의 삶은 미래 담론의 중심에 놓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기술은 해방일까, 혹은 억압일까, 사이보그는 현실일가, 아니면 비유일까'에 대해 한번도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았던 나에게 이 책은 정신이 번쩍 들게 할 만큼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책은 김초엽 작가와 김원영 변호사가 각자 따로 5챕터의 글을 써 전체 10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마지막에 두 사람이 만나 함께한 대담의 페이지로 마무리가 된다. 두 사람은 성별도, 전공도, 나이도, 장애 유형도 확연히 다르다. 보이지 않는 장애를 가진 여성과 걸을 수 없는 몸을 가져 어린 시절부터 휠체어와 함께 했던 남성의 경험 또한 완전히 다르다. 평소에는 보청기를 잘 착용하지 않는 김초엽은 휠체어를 신체의 일부로 느끼며 그 미적 가능성을 탐구하는 김원영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김원영은 장애 권리 운동의 자장 안에서 활동하느냐 아니냐와 관계없이 그런 경험 없이도 장애학의 관점을 체화하여 세계를 바라보는 김초엽의 시각을 놀라워한다. 이들의 경험과 시각이 교차하는 지점도 흥미로웠고, 장애와 과학기술의 복잡한 관계에 대한 통찰도 인상적이었다. 장애가 손상된 몸을 가진 한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며, 장애가 단지 결핍으로만 규정되지 않는 세상을 바래본다. '우리의 불완전함은 때로 다른 세계로 가는 문을 열어준다'는 김초엽 작가의 말이 여운처럼 남는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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