킨 (리커버 에디션) 옥타비아 버틀러 리커버 컬렉션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20년 7월
평점 :
품절


 

어떻게 케빈과 내가 이 시대에 수월하게 끼어들어갔는지 알 것 같았다. 우리는 정말로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우리는 쇼를 바라보는 관찰자였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역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배우였다. 집에 갈 날을 기다리는 동안에 그들과 비슷한 척하면서 주위 사람들을 만족시키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형편없는 배우였다. 우리는 실제로 역할 속에 녹아든 적이 없었다. 연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적이 없었다.     p.184~185

 

1979년에 출간된 옥타비아 버틀러의 <킨>은 수십 년이라는 시간을 뛰어 넘어 여전히 당대의 현실 속에서 읽히는 압도적인 걸작이다. 무려 노예 제도가 나오고, 흑인 여성으로서의 불합리한 삶에 대해 그리고 있음에도 말이다. 국내에는 2016년에 소개되었었고, 작년 여름에 리커버 버전이 출간되었었다. 흑인 여성이 전면에 등장하는 기존 버전의 서사성을 배제하고, 위대한 작가의 작품이 전해주는 강렬함을 컬러로 다시 빚어내는 것이 특별판의 모토였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미래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을 주는 형광 컬러를 표지부터 본문까지 부여한 너무 근사한 표지가 탄생했다. 시선을 사로잡는 리커버 에디션은 출간되자마자 소진되어 여러 달 동안 절판 상태였는데, 최근에 한정수량으로 재제작되었으니 이번 기회에 이 아름다운 작품을 만나보면 좋을 것 같다.

 

사실 작년에 리커버 에디션이 출간되자마자 구매했었는데, 이제야 읽어 보게 되었다. 이 작품을 처음 만났던 때로부터 사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요 장면들이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만큼 엄청난 작품이었고, 놀라운 이야기였다.

 

 

그날은 다나의 스물여섯 번째 생일이었다. 작가인 케빈과 작가 지망생인 다나 부부는 이사한 지 얼마 안되는 집에서 책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현기증이 나면서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하더니, 방 안이 흐릿해지고 주위가 어두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다나는 그렇게 집도, 책도, 전부 다 사라지고, 난데없이 야외에서, 나무가 자란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앞에 있던 넓은 강 한가운데에 어린아이 하나가 허우적거리고 비명을 지르며 빠져 죽기 직전이었고, 그녀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이 강으로 달려가 아이에게 헤엄쳐 가 아이를 구한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물가에 있던 아이의 엄마는 구해준 자신을 주먹으로 공격하고, 화가 난 남자 목소리에 몸을 돌리자 평생 처음 보는 긴 총신이 내려다 보였다. 그렇게 자신이 총에 맞는다는 생각에 딱 얼어붙은 순간, 다나는 다시 케빈 곁으로 돌아온다. 온통 젖고 진흙투성인 채로. 다나가 체감한 시간은 몇 분 정도였지만, 케빈은 실제 그녀가 사라진 시간은 기껏해야 십 초에서 십오 초밖에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두 번째로 그곳으로 가게 되었을 때는 처음 만났던 소년 루퍼스가 커튼에 불을 붙여 위험에 처했던 순간이었다. 소년은 처음보다 서너 살은 많아 보였고, 루퍼스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나는 그곳이 무려 100년 전인 1815년 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흑인이 검둥이라 불리며 천시받고, 백인들이 노예들에게 채찍질을 해대는 것이 당연하던 시절, 게다가 다나는 흑인 여성이었다. 그리고 루퍼스는 다나의 아주 먼 조상이었다. 이후 다시 현실로 돌아온 후 다나와 케빈은 자신이 과거로 들어가게 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선지 루퍼스가 위험한 순간이었고, 다시 현재로 오게 되는 것은 다나가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대체 언제 과거로 들어가게 되는 건지, 어떻게 다시 현재로 돌아올 수 있게 되는 건지는 알 수 없었고, 속수무책으로 닥쳐온 현실을 견뎌야 했다.

 

 

루퍼스는 내 어깨에 머리를 대고, 왼팔로 나를 안고, 오른손은 여전히 내 손을 붙잡은 채 누워 있었다. 나는 서서히 이대로 가만히 누워 있기가, 이 일마저 용서하기가 얼마나 쉬운지 깨달았다. 내가 했던 모든 말에도 불구하고 너무 쉬웠다. 반면 칼을 들어 올리기는, 그렇게 여러 번 구해준 몸에 칼을 박아넣기는 너무나 어려웠다. 그를 죽이기는 너무나 어려웠다.......     p.506~507

 

다나는 그곳에서 상상도 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맞아보기도 하고, 정신을 잃을 만큼 심한 벌을 받기도 하고, 흑인으로서 백인들의 비위를 맞추며 눈치를 보며 당시의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 작품을 읽게 되면 누구나 '흑인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이 허구의 이야기임을, 작가가 그려낸 상상의 산물임을 알고 있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압도적인 이야기는 극중 다나가 겪는 수많은 경험들과 생각들을 고스란히 독자들에게 체험하게 만들고 있다. 노예제도가 있었던 시대를 배경으로 인종과 젠더 문제를 다루었던 여타의 작품들이 현대의 기준으로 볼 때 너무도 비현실적이라 일종의 거리두기가 있었던 것에 비해, 이 작품은 그 간극을 완전히 없애 버린 것이다. 이토록 생생하게, 이토록 무참하게, 고통스러울 만큼 리얼하게 1800년대의 풍경을 그려낼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압도적인 작품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여행에서 팔 하나를 잃었다. 왼팔이었다. 그리고 일 년에 가까운 인생과, 사라지기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귀한 줄 몰랐던 편안함과 안전의 많은 부분을 잃었다.'라는 이 작품의 처음을 열었던 문장의 의미는 500여페이지가 지나서야 엄청난 무게로 다가온다. '선'과 '악'이라는 개념은 결코 완전하지 않고,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무언가를 잃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는 작가의 가치관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이 문장은 작품 전체의 압도적인 서사에 방점을 찍으며 이 책을 결국 또 다시 읽게 만들어 준다. 이 작품은 두 번째 읽었을 때 훨씬 더 재미있었고, 아마도 세 번째, 네 번째 계속 다시 읽게 될 것 같다. 살면서 이렇게 여러 번 다시 읽고 싶은 작품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홀린 듯 사로잡히게 만들어 줄 이야기를 찾고 있다면 이 작품을 적극 추천한다. 당신도 옥타비아 버틀러의 작품과 사랑에 빠지게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