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도시 - 뉴욕의 예술가들에게서 찾은 혼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
올리비아 랭 지음, 김병화 옮김 / 어크로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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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뉴욕 시내에서 지낸 적이 있다. 편마암과 콘크리트와 유리로 된 북적이는 섬, 고독이 일상적으로 지배하는 도시. 절대로 편안한 경험은 아니었지만, 나는 울프의 말이 틀린 게 아닌지, 고독의 체험에는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은 없는 게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사실은, 살아 있다는 게 무엇이냐는 더 큰 물음을 생각하게 하지 않는다고. 사적인 개인으로서만이 아니라 픽셀로 분할된 우리 세기에 사는 시민으로서도 내게서 소진된 것들이 있었다. 외롭다는 게 무슨 뜻일까? 타인과 직접 가까이 개입되어 있지 않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까? 우리는 타인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p.15

 

이 책은 '제2의 리베카 솔닛'이라 불리는 올리비아 랭의 대표작으로 국내에는 2017년에 소개되었는데, 이번에 개정판으로 새롭게 출간이 되었다. 연인을 따라 도착한 뉴욕에서 실연하며 혼자가 된 그녀가 ‘외롭다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천착해가는 과정을 좇는다. 에드워드 호퍼에서부터 앤디 워홀까지, 저자는 뉴욕의 예술가들이 남긴 외로움의 다양한 조각을 유연하게 이어 붙이며 고독의 맨얼굴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예술가들의 궤적을 따라가는 이 내밀하고도 대담한 여정 끝에 만나게 될 특별한 사유가 정말 근사한 책이었다. 고독이 일상이 된 시대, 혼자 있고 싶지만 혼자이고 싶지는 않은 모순된 감정을 느끼며 살아 가는 우리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고독이란 무엇인가.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홀로 있는 모습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올리비아 랭은 고독하다는 것이 배고픔 같은 기분이라고 말한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 잔칫상에 앉아 있는데 자신만 굶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라는 거다. 창피하고 경계심이 들고, 그러다 보니 점점 더 고립되고 점점 더 소외되는 상태. 그러다 보니 현대 사회에서는 '고독사'라는 것으로 고독이 죽음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고독사라니, 얼마나 서글픈 단어인가. 사람들로부터, 사회로부터 격리된 채 아무도 모르게 홀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 바로 고독인 것이다. 도시에서 고독이란 어느 정도는 필수불가결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옆집에 누가 사는지, 아래층엔 누가 있는지 조차 모르는 상태로 살고 있다. 핵가족화와 고령화, 1인가구의 증가로 인해 고립될 수 있는 여지가 너무도 많은 주거 형태가 아닐 수 없다. 도시에서의 삶이란 아무도 날 간섭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가 존재하지만 거울의 양면처럼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찾지 않은 상태로 세상에서 사라져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예술이 할 수 없는 일은 너무나 많다. 죽은 이를 도로 살릴 수도 없고, 친구들 사이의 다툼을 말려주지도 못한다. 에이지를 치료하지도 못하며, 기후 변화의 속도를 늦추지도 못한다. 그렇기는 해도 예술은 아주 비상한 기능을 한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 사이에 스며들어 서로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사람들을 중재하는 능력이다. 그것은 친밀성을 창조하는 능력이 분명 있다. 예술은 상처를 치유하면서도 모든 상처에 치료가 필요한 것은 아니며 모든 흉터가 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p.369

 

호텔, 영화관, 집 등 도시의 장소와 사람들의 일상을 담아낸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바로 고독이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은 한 명이거나 두세 명이 있어도 서로 소통하지 않고 바라보지 않는다. 우리는 호퍼의 그림 속 인물들처럼 타인들과 신체적으로 가까이 있어도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서로 격리되어 있는 것이다. 올리비아 랭은 뉴욕이라는 유리의 도시, 염탐하는 눈의 도시에서 끊임없이 호퍼의 그림들에 사로잡힌다. 그녀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서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단서를 발견하고 그 도시를 살아간 예술가들의 작품과 삶 속으로 빠져든다. 외로워지기 전에는 언제나 무시했던 앤디 워홀의 작품들에게 매혹 당하고, 평생 골방에서 그림을 그리고 죽음 직전에야 세상에 알려진 아웃사이더 헨리 다거, 소외의 원천을 고통스러울 정도로 가깝게 담아낸 사진작가 낸 골딘, 고독한 피사체들을 담아온 사진작가 피터 후자 등등 여성, 성소수자, 이민자, 부랑자로서 고립을 경험한 예술가들의 삶 속에서 자신이 모습을 발견해낸다. 

 

'예술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 사이에 스며들어 서로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기묘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예술은 상처를 치유하고, 모든 흉터가 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고독은 사적인 것이면서도 정치적이고, 집단적인 것이다. 올리비아 랭은 말한다. 우리의 상처가 켜켜이 쌓인 이곳 지옥에서 '중요한 것은 다정함을 잃지 않는 것, 서로 연대하는 것, 깨어 있고 열려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상실감에서 시작된 이 작품은 외로움과 고독이 구축한 다정한 세계로 향해간다. 혼자 있고 싶지만 혼자이고 싶지 않은, 고독이라는 도시의 거주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었다. 올리비아 랭의 근사한 사유가 그려내는 도시의 풍경들과 예술가들의 삶을 통해서 고독하더라도 조금은 따뜻하게 일상을 보내게 될 테니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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