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죽음이 내게 말해준 것들
고칸 메구미 지음, 오시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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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K씨에게서 남은 핏기가 사라지더니 손끝이 자줏빛으로 변했다. 이내 그의 몸이 차갑게 변해갔다. 그래도 내게는 약간의 따스함이 느껴졌다. 내가 그의 곁에 있어도 좋다고 허락받은 기분이었다. 나는 K씨의 차가운 손을 더욱 꼭 쥐었다. 나의 따스함이 전해지라고 강하게 기도하면서. 그때 나는 깨달았다. 따스함은 체온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온도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p.71

 

미키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갑작스럽게 잃었다. 그날 아침 그녀는 엄마랑 다투다 홧김에 '내가 어쩌다 너 같은 걸 낳아가지고'라는 말에 '엄마야말로 죽어버려!'라고 소리를 질렀다. 물론 엄마가 교통사고로 진짜 죽어버릴지 몰랐고, 진심도 아니었지만 그 일은 미키에게 큰 상처로 남는다. 아무리 사이 나쁜 모녀라고 해도 엄마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소중한 사람이 사라지고 나서야 뒤늦게 후회하고 싶지 않았던 미키는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전보다 훨씬 더 부드럽게 대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이렇게 소중한 걸 잃어버리고 나서야 두 번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그래서 이런 책이 더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저자인 고칸 메구미는 간호사로서 16년이 넘는 시간을 일해왔다. 특히 요양 병동에서 일하며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의 종말기를 함께했다. 종말기는 질병이나 노화, 사고 등으로 인해 죽음으로 향하는 인생 최후의 시기를 말하는데, 그렇게 천 번이 넘는 죽음을 누구보다 가까이 지켜보며 '어떻게 하면 행복한 마지막을 맞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늙고 병들어 여기 저기 아픈 몸으로 병원에 입원한 뒤에야 자신의 죽음에 대해 고민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그때가 되면 시기적으로 평온한 죽음을 준비하기에는 늦다고. 죽음이란 건강할 때부터 가족들과 함께 의논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난 매일 일에 쫓겨서 어린 아들이 놀아달라고 매달리는 걸 뿌리치곤 했어요. 매번 '나중에'라는 말만 반복하며 아들과의 시간을 미뤘습니다. 할 말이 있다는 아들에게도 항상 나중에 말하라고 할 뿐이었어요. 결국 그 말을 들어준 적은 한 번도 없었네요..........."
지나간 시간은 결코 다시 오지 않는다. 우리는 별생각 없이 '나중에'라고 말하며 지금을 뒤로 미루는 경향이 있다. 지금 놓쳐버린 이 순간이 나중에 생각하면 가슴 시리도록 아픈 후회가 된다는 사실을 모른 채 말이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이 시간을 영원히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p.194

 

죽음을 직면한 사람들의 가장 큰 고민이라고 하는 '연명치료'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보통 죽을 때가 되면 연명치료를 통해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지만, 그러느라 소모하는 시간을 생각하면 반대로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니 나에게 한정된 시간, 남은 생명을 걸고서라도 연명치료를 받을 것인지에 대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족의 뜻에 따라 연명치료를 받게 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 이유는, 건강할 때 이러한 부분에 대해 가족과 충분히 의논하지 않은 탓이다. '치료'라는 이름의 고문과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결국 괴로운 최후를 맞는 환자와 가족들을 수없이 보아온 저자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들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만약 나라면 더 오래 살기 위해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고, 어느 부분은 포기할 수 없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인간답게 살아가는 시간'에 대해, 인생에서 한번은 반드시 찾아올 죽음과 그 뒤의 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갑작스러운 사고사, 오랜 간병 끝의 이별, 자살, 고독사 등 의료 현장에서 지켜본 다양한 죽음의 민낯을 지켜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연명치료의 허와 실, 종말기의 영양 공급법과 같은 전문적이고 실질적인 조언을 들려준다. 살면서 나 자신의 '죽음'에 관해서는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가짐이 달라지게 되었다.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것이 나 자신이듯이, 생을 매듭짓는 순간에도 마찬가지여야 하는 것이다. 죽음이란 나이를 먹어 늙어 죽는 것만이 아니라, 아무런 전조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기도 하는 것이다. 일상의 소중함을 놓치고 있다면, 미래의 자신에게, 죽기 진전의 나에게 편지를 써보자. 그렇게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살아갈 힘을 얻게 될수도 있으니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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