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지음, 함규진 옮김 / 와이즈베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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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과 재능 만으로 누구나 상류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미국인의 믿음은 더 이상 사실과 맞지 않는다. 기회 균등에 대한 담론이 과거와 같은 반응을 얻지 못하는 이유라 볼 수 있다. 사회적 이동성은 더 이상 불평등에 대한 보상이 될 수 없다. 빈부격차에 대한 진지한 대응은 무엇이든 부와 권력의 불평등을 직접 다뤄야만 하며, 사다리를 오르는 사람들을 돕는 방안으로는 무마될 수 없다. 사다리 자체가 점점 오르지 못할 나무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p.51

 

<정의란 무엇인가>로 한국에 200만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리고, '정의'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마이클 샌델의 신작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이후 8년 만에 쓴 신간으로, 원제는 《The Tyranny of Merit: What’s Become of the Common Good?》이며 직역하면 ‘능력주의의 폭정: 과연 무엇이 공동선을 만드나?’로 국내 버전은 <공정하다는 착각>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미국 현지에서 2020년 9월에 나왔으니, 정말 따끈따끈한 신작이 아닐 수 없다.

 

이번에 샌델이 말하는 것은 능력주의가 정말 공정한가에 대한 것이다. 기회를 공평하게 제공하고,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게 하며, 능력에 따라 성과를 배분한다는 명제는 자유시장경제의 핵심이지만, 사실 공평한 기회제공과 능력발휘의 보장 장치는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우리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나 권력이 주어지는 사회에 살고 있지 않으니 말이다. 샌델은 특권층 부모들이 불법적 수단으로 자기 자녀들을 명문대에 입학시켰던 사건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드라마 <스카이 캐슬>을 떠오르게 하는데, 이 사건의 중심에 악덕 입시상담가가 있었고 자식 걱정에 노심초사하는 부유한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교묘히 설계된 입시 부정을 저질렀다는 거다. 샌델은 실력이 경제적 우위와 구별해서 보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공정성 관점에서 뒷문과 옆문을 구분하기 쉽지 않은 입시의 윤리에 대해서 말한다. 능력주의의 문제는 원칙 자체보다 어떻게 그 원칙을 실현하느냐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샌델은 그렇게 능력주의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의견 불일치를 시작으로 능력주의의 장단점을 구체적으로 따져 보기 시작한다.

 

 

그것이 사회적 상승 담론의 포인트였다. 성공의 길에 놓인 장애물을 모두 제거할 수 있다면 모든 사람이 동등한 성공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 인종이나 출신 계층이나 성별에 상관없이 누구나 자기 재능과 노력이 허락하는 한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기회가 정말로 평등하다면 꼭대기에 선 사람은 그 성공과 관련된 보상을 누릴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 이것이 능력주의의 약속이었다. 더 많은 평등의 약속이 아니라, 더 많고 더 공정한 사회적 이동 가능성의 약속 말이다.     p.145

 

재산과 소득에서 똑같은 수준으로 불평등한 두 나라가 있다고 해보자. 한 사회는 귀족정이며 소득과 재산은 어떤 집에서 태어나느냐에 달려 있고 고스란히 대물림된다. 다른 한 사회는 능력주의로 각자가 노력과 재능에 따라 얻은 결과로 재산과 소득의 불평등이 생긴다. 대부분 능력주의 사회가 귀족정 사회보다 낫다고 여길 것이다. 출생에 따라 계급을 매기는 귀족정은 부정의하다고 여길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부잣집에서 자라날지 가난한 집에서 자라날 모른다는 전제 하에 당신은 어떤 사회를 선택하고 싶은가? 혹은 처음부터 자신이 최상위층이 될지 최하위층이 될지 알고 있다고 하면, 둘 중 어느 사회에서 살고 싶을까. 중요한 것은 두 나라의 불평등 정도가 똑같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결론은 부자와 빈자의 차이가 두 사회 모두에서 극심하므로, 어느 계층에 속하든 한쪽 사회를 고르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샌델은 이런 식으로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능력주의의 이면을 다시 생각해보도록 한다.

 

성공에 대한 모든 불공정한 장애물을 제거했을 경우, 완벽한 능력주의는 정의로운가? 능력주의적 경쟁에서 비롯된 불평등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개인의 능력은 정말 공정하게 측정되고 있는가? '정의'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마이클 샌델은 이번에 능력주의가 정말 공정한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무엇보다 '성적 기반 능력주의'인 한국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공감되는 부분이 많은 책이라 흥미롭게 읽었다. 과연 이번에도 샌델이 '공정' 열풍을 불러일으킬지 궁금해진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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