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사피엔스를 위한 뇌과학 - 인간은 어떻게 미지의 세상을 탐색하고 방랑하는가
마이클 본드 지음, 홍경탁 옮김 / 어크로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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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사람들을 비웃기는 쉽지만, 누구나 길을 잃을 수 있다. 낯선 길을 따라 GPS 없이 A지점에서 B지점으로 가는 것(그리고 다시 돌아오기)은 가장 복잡하고 까다로운 인지 과제 중 하나이다. 이 과제를 성공적으로 해내려면 주변을 잘 살피고, 풍경의 특징을 잘 기억해야 하고, 거리를 계산하고, 움직임을 조젏고, 자신의 위치를 알고, 방향의 변화에 주의를 기울이고, 경로를 계획하고, 경로의 변화에 대비하고, 여러 유형의 감각 정보를 처리해야 한다. 당연하겠지만, 그러려면 뇌의 많은 부분이 관여해야 한다...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는 길을 찾아가는 것이 단순하다고 생각한다.     P.146~147

 

예전부터 낯선 장소에서 길을 잘 찾는 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늘 길치라고 스스로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스마트폰의 GPS 기능 덕분에 지도 앱을 활용하면 어디든 찾아갈 수는 있게 된 것 같다. 자동차로 이동 시에는 네비게이션을, 도보로 움직일 때는 다양한 지도 앱을 사용하게 된 현대에서 아마도 GPS없이 길을 찾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도착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을 안내해 목적지까지 이동할 수 있게 도와주는 편리를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인 마이클 본드는 정말 길을 잘 찾고 싶다면 GPS를 꺼야 한다고 말한다. 대체 이게 다 무슨 얘기일까.

 

이 책에 따르면 언뜻 편리해 보이는 GPS 기기가 지난 수만 년 동안 인간을 살아남게 해주었던 공간 관련 능력을 사용하지 않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제 인지적으로 어려운 일은 GPS를 이용하는 내비게이션에 맡기고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한다. 스마트폰 앱이나 음성 안내를 그대로 따르면, 해마에 있는 위치 세포나 전전두엽 피질의 의사 결정 회로를 괴롭히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어떻게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몰라도 되며, 심지어 내가 선택한 경로에 대해 아무것도 기억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우리는 공간에서 우리의 위치에 대한 절대적 확실성에 대한 대가로 위치 감각을 희생하게 되는 것이다. GPS를 이용해서 길을 찾으면 우리는 주변 환경에 무관심해질 수 있고, 주변 환경에 무관심해지면 더 이상 풍경에서 정보를 얻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고 그만큼 무지해진다.

 

 

 

 

길을 잃는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길을 잃을 위험에 처하면 불안해진다. 길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마치 뱀을 봤을 때 우리가 보이는 반응처럼 본능적으로 인간의 뇌에 각인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수백만 년 동안 진화하면서 길을 잃었을 때 결말이 좋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한 두려움은 문화의 바탕에 깔려 있다. 고대의 신화는 물론 현대의 동화에서도 숲에서 길을 잃은 아이들이 모티브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픽션에서는 보통 일종의 구원이 나타난다.... 하지만 현실은 대개 더 냉혹하다.    p.231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길 찾기 능력'이 인류의 생존을 좌우하는 핵심 조건이 될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저자는 호모사피엔스를 살아남게 한 협력과 소통의 근원인 길 찾기 능력에 관해 먼저 인류학 적으로 접근한다. 이곳 저곳 떠돌아다니는 구석기시대의 생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위치와 목적지를 알아야 했고, 길을 찾고 공간을 인지하는 능력은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조상들이 식량의 위치를 알아내고 적을 파악하면서 발달시킨 길 찾기 능력은 인류가 세상을 이해하고, 타인과 소통하고 협력하며, 미지의 세계를 탐험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부분은 길 찾기 능력을 뇌과학적으로 풀어내는 대목이었다. 길 찾기 능력이 추상적 사고, 상상력, 기억력, 언어 등 필수적인 인지 능력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우리의 몸은 물론 마음도 지배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낯선 도시를 돌아다니는 우리의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며, 처음에는 생경했던 곳이 어떻게 내 집처럼 친숙해지는 것일까. 이에 대해 신경과학의 공간 인지 연구를 시작으로 뇌과학과 심리학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어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그 밖에도 길 찾기에 최적화된 사람들, 여자와 남자의 길 찾기 능력 차이, 길 잃은 사람과 우울증 환자의 심리적 공통점, 우리가 공간을 인식하듯 타인과의 관계를 인식하는 이유 등등 길 찾기 능력이 인간의 몸과 마음에 미치는 영향들을 다양한 분야에 걸쳐 다각도로 풀어내고 있어 굉장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지금, 지난 수만 년 동안 인간을 살아남게 해주었던 바로 그 길 찾기 능력이 위협받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면 오늘 날 우리가 GPS에 의존하며 살아왔던 것에 대해 보다 심각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도 들게 된다. 길 찾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사회적 활동인데, 우리가 지도 앱이나 내비게이션에 의존해 길을 간다면 타인간의 상호 교류의 기회는 더 이상 얻을 수 없을 거라는 저자의 말에도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게 되었고 말이다. 선사시대부터 오늘날까지 길을 찾으며 살아온 인간의 발자취를 추적하는 여정은 대단히 시사하는 바가 많았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편리한 세상은 쉽게 길을 잃을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지만, 가끔은 그러한 완벽한 길 찾기에 저항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번쯤은 목적지나 지도, 휴대폰 없이 돌아다녀 보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길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우리가 있는 곳과 우리 관계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사유하게 될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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