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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펄 ㅣ 천 개의 세계 1
이윤하 지음, 송경아 옮김 / 사계절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드래곤 펄은 전설에서 말하는 것처럼 강력하지 않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것이 잘못된 손에 들어가는 위험을 가만 보고 있을 수는 없어. 생각해 보게, 후보생. 드래곤 펄이 척박한 세계 전체를 탈바굼시킬 수 있다면, 그 세계에 숲과 바다를 생성해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그 말은 즉 그 세계를 파괴해 생명 없는 사막으로 만드는 일도 그만큼이나 쉽다는 의미야. 그런 요술은 최고 입찰자에게 팔리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당국의 통제를 받아야 해." p.167
열세 살 민은 열다섯 살이 되자마자 '천 개의 세계' 우주군 입대 시험을 봐서 준 오빠를 따라 군에 들어가려고 남은 날짜만 세고 있다. 네 명의 이모와 엄마, 그리고 사촌 세 명과 함께 살고 있는 민은 언제나 일찍 일어나서 집안일을 잔뜩 해야 하는 것이 마땅치 않았다. 사실 이들은 인간인 척하며 살고 있는 구미호로 사람들은 대부분 여우들이 멸종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민은 여우 요술을 겉으로 드러내 보이지 말라는 경고를 평생 들으며 살았기에, 변신 능력이나 '홀리기'를 사람들에게 쓰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낯선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 잠에서 깬 민은 오빠 준이 수수께끼 같은 상황에서 사라져서 탈영 혐의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정보 조사원은 준이 드래곤 펄을 찾아 떠났다고 말한다. 드래곤 펄이란 생명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신령한 구슬로 전설적인 유물이었다.
하지만 민이 알고 있는 오빠는 절대 우주군을 탈영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준 오빠에게 우주군은 모든 것을 의미할 정도로 사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엄청 열심히 노력했었던 것이다. 조사원은 준이 떠나기 전 마지막 보고를 남겼는데, 거기에 민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들어 있다며 그걸로 준의 위치나 드래곤 펄의 위치를 찾을 단서를 파악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다. 메시지 내용 자체는 평범했지만, 민은 거기에 뭔가 숨겨진 뜻이 있다는 것을 알아챈다. 오빠는 민에게 뭔가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 민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면서까지 조사원을 공격하고 집에서 뛰쳐 나간다. 오빠를 찾고 드래곤 펄에 얽힌 수수께끼를 직접 풀기로 한 것이다. 민은 오빠가 배정된 전함인 창백한 번개호에 탑승해 오빠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조사하기 시작한다.
상황이 더 나쁠 수도 있었다. 그렇다. 우리는 전염병에 감염된 행성 위에 고립되어 있고, 귀신들에게 살해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숨 쉴 공기는 있었다. 어떤 행성은 대기권이 유독하거나 아예 공기가 없었다. 아니면 너무 춥거나 더웠다. 초자연적인 생물들마저도 여러 가지 장비가 없으면 살아남기 힘들 정도로.
"하는 데까지 해 보자." p.334
SF 장르가 현대 과학으로 설명이 가능한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가까운 미래에 실현될 수도 있는 가능성을 바탕으로 둔 작품을 말한다면,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는 과학적 사실보다는 상상력에 의존하여 실현이 불가능하거나 아주 먼 미래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현대 과학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작품들을 말한다. 우주를 무대로 무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스토리라고 보면 되는데, 보통 작가가 구축한 세계의 설정들을 이해했을 때 가능한 지점들이 많은 장르라 독자 입장에서 보자면 다소 진입장벽이 높은 편이다. 시작부터 처음 듣는 낯선 용어들이 잔뜩 등장해 겁에 질리게 만들고, 인물들 간의 관계를 파악하기도 전에 완전히 새롭게 구축되어 있는 특정 세계관을 이해하도록 거의 강요하게 마련이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윤하의 신작은 SF나 스페이스 오페라를 처음 접한 독자들에게도 추천할 수 있을 만큼 쉽게 읽을 수 있고, 누구라도 재미있게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SF장르에서 구미호, 호랑이, 귀신과 용 등 한국적인 캐릭터들을 조합해 매우 색다르고도 매력적인 스페이스 오페라를 만들어 내고 있다. 작가가 한국계 미국인이긴 하지만,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글을 쓰는 작가가 한국의 전설을 SF라는 장르 속에서 녹여내었다는 점도 대단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국내에 먼저 번역되었던 <나인폭스 갬빗>을 비롯해 해당 시리즈 3부작이 모두 휴고상과 제뷸러상에 노미네이트 되어 국내 독자들에게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전작의 SF 세계관이 다소 어려웠다면, 이번 신작 <드래곤 펄>은 누구라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이니 아직까지 이윤하의 작품을 만나 보지 않았다면 바로 이 작품부터 시작하면 더 좋을 것 같다. 한국적인 감수성을 토대로 구축된 색다른 SF 세계를 만나보고 싶다면, 기존에 전혀 만나볼 수 없었던 독특한 SF 작품이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추천한다. 한국적인 소재가 SF 장르와 이렇게 잘 어울릴 수 있다니 감탄하면서 읽게 될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