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가오 옌 그림, 김난주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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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우리는 모두, 각자 세대의 공기를 숨쉬며 그 고유한 중력을 짊어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틀의 경향 안에서 성장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그것이 자연의 섭리다. 마치 요즘 젊은 세대 사람들이 부모 세대의 신경을 일일이 곤두서게 하는 것처럼.    p.62~64

 

1950년대 후반, 하루키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쯤이었다. 당시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에 살았던 하루키의 가족은 항상 고양이와 함께 살았다. 형제가 없는 하루키에게 고양이와 책은 가장 소중한 친구였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하루키는 아버지와 함께 고양이 한 마리를 버리러 해변에 간 적이 있다. 왜 고양이를 버리러 갔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버지와 함께 고양이를 담은 상자를 해변에 내려놓은 다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은 아직 남아 있다. 그들은 집에 도착해서 '불쌍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하는 기분으로 문을 열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조금 전에 버리고 온 고양이가 살갑게 그들 부자를 맞았다. 그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어리둥절했지만, 웬지 안도하는 기분이 들어 그 고양이를 계속 키우게 되었다고 한다.

 

소년 하루키의 고양이에 얽힌 수수께끼 같은 회상으로 시작되는 이 책은 그의 아버지 '무라카미 지아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가장 '사적인 이야기'이자, 언젠가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해서 문장으로 정리해봐야겠다고 오래 전부터 마음 먹고 있었던 글이다. 이 작품은 가제본 원고로 먼저 만나봤었는데, 문장들이 딱딱하고, 접속사도 쉼표도 더 많고, 평소의 하루키 작품들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가 낯설게 느껴졌었다. 분량이 짧은데 비해 난해한 어휘들도 자주 등장해 읽기에 수월한 작품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천천히 읽게 되는 인상적인 작품이기도 했다.

 

 

만약 아버지가 병역에서 해제되지 않아 필리핀이나 버마 전선으로 보내졌다면.... 만약 음악 교사였다는 어머니의 약혼자가 전사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생각해가다 보면 정말 기분이 묘해진다. 만약 그랬다면, 나라는 인간은 이 지상에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그 결과, 당연히 나라는 의식은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내가 쓴 책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면 소설가로서 이렇게 살아있는 나의 삶 자체가, 실체가 없는 덧없는 환상처럼 여겨진다.     p.88~89

 

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을 비롯해 세 번이나 전쟁에 소집되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다음에는 거대한 혼란과 빈곤 속에서 있는 힘을 다해 기를 쓰고 살아남아야만 했던 불운했던 세대였던 것이다. 하루키는 '무라카미 지아키'라는 개인의 역사를 담담하게 되짚어 나간다. 유년기의 입양과 파양, 청년기의 중일전쟁 참전, 중장년기의 교직 생활, 노년기의 투병 등을 비롯해 자신과 아버지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가감 없이 말이다. 다들 알다시피 하루키는 아버지와 이십 년 이상 전혀 얼굴을 보지 않는 '절연' 관계였던 걸로 알려졌다. 하루키는 아버지의 기대에 충분히 부응할 수 없었고, 그가 서른 살에 소설가로 데뷔 했을 때 이미 부자 관계는 상당히 멀어져 있던 상태였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를 줄곧 실망시켰고, 거기에는 언제나 막연한 가책 같은 것이 따라다녔다고 한다. 아마도 그러한 이유로 하루키가 이 책을 쓰고자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루키는 그가 전업작가가 된 후로 어지간한 일이 없는 한 거의 대화도 연락도 하지 않는 상태로 지내왔던 아버지와의 수십 년에 대해서도 담담하게, 마치 객관적인 사실 정보라도 들려주듯 이야기한다. 그리고 아버지와 겨우 얼굴을 마주하고 얘기를 나눈 것이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의 일이었다고 한다. 그때 하루키는 예순 가까운 나이였고, 아버지는 아흔 살로 심한 당뇨를 앓고 있는 데다 온 몸에 암이 전이되어 있던 상태였다고 한다. 다행히도 그때 아주 어색한 대화를 나누고 화해 비슷한 것을 했다고 하지만, 하루키는 그 순간 뭔가 깨달은 바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관계된 사람들을 만나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조금씩 듣게 된다. 자식과 부모의 관계란 성장한 시대도 환경도 다르고, 사고방식도, 세계를 보는 시각도 다르게 마련이라 '세대 차이'라는 이름으로 종종 부딪치게 마련이다. 그러니 하루키가 풀어내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다소 낯설게 느껴지더라도, 결국에는 공감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는 얘기다. 우리 모두 누군가의 자식이자 부모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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