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더 원더 킬러
하야사카 야부사카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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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가만히 서 잇는 나를 향해 지금까지 잠자코 있던 흰토끼가 입을 열었다.
"왜 그래? 네가 가장 좋아하는 추리소설의 꽃, 살인사건인데 기운이 없네. 설마 겁먹은 거야?"
확실히 흰토끼의 말대로 가상현실 속의 처참한 현장에 압도당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탐정이 되면 이런 현장과 수도 없이 마주하게 된다. 계속 위축되어 있을 수는 없다.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p.163

 

열 살 소녀 앨리스의 장래희망은 아버지 같은 명탐정이 되는 것이다. 생일을 맞이한 앨리스에게 아버지는 '수수께끼'를 선물한다. 사건 조사 때문에 생일을 함께 보내지 못하는 것을 사과하며, 두 사람이 늘 가던 오두막으로 가면 최고의 수수께끼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편지를 남긴 것이다. 수익이 불안정하고 위험한 직업인 탐정보다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안정적인 직업을 얻길 바라는 어머니를 피해, 아버지와 앨리스는 종종 그 오두막에서 탐정 수업을 하곤 했다. 과연 오두막에서 앨리스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오두막에 도착한 앨리스는 새하얀 머리와 피부에 빨간 눈을 하고 토끼 귀 머리띠를 한 잘생긴 청년과 마주한다. 자신을 아버지의 친구라 소개한 그는 아버지의 부탁으로 생일 선물을 가져왔다고 말한다. 발명가라는 그는 자신이 '화이트 래빗'이라는 기계를 발명했는데, 그걸 통해서 가상현실을 체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토끼 귀 모양 헤드기어를 장착하고 전원을 켠 뒤 전용 알약을 먹으면, 잠을 자는 동안 진짜와 똑같은 세계를 체험하게 된다는 거였다. 평소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좋아하는 앨리스를 위해, <앨리스> 시리즈를 변형한 수수께끼 게임을 준비했다고 한다. <앨리스>도 좋아하고, 수수께끼 놀이도 정말 좋아하는 앨리스는 설레이는 마음으로 게임에 참여한다.

 

그렇게 가상공간에 구현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세계에 떨어진 앨리스는 흰토끼의 가이드에 따라 수수께끼 게임을 시작한다. 첫 번째 수수께끼는 '방을 나가서 게임을 계속해야 하지만,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문은 잠겨 있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 두 번째 수수께끼는 '쌍둥이 유괴 실종 사건에서 사라진 아이의 행방을 찾는 것' 이었고, 세 번째 수수께끼는 티타임 시간에 모자 장수와 잠쥐를 살해한 범인을 찾는 것'이었다. 앨리스는 그렇게 이어지는 다섯 가지 수수께끼를 제한시간 24시간 이내에 풀어야 한다. 평소에 수수께끼와 정정당당하게 맞서 해결했던 앨리스는 스스로를 '수수께끼를 죽이는 앨리스'라 칭하며 "내 사전에 수수께끼란 없어!"를 외치곤 했다. 그만큼 수수께끼를 사랑했고, 수수께끼 풀이에 자신이 있었던 앨리스는 과연 각각의 수수께끼를 풀고 무사히 현실 세계로 돌아올 수 있을까.

 

 

여왕이 전지전능하기 위해서 이 세계에 그녀가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wonder)가 없어야 한다. 여왕이 독재를 펼치기 위해서는 백성들이 의심(wonder)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그녀는 wonder를 모조리 죽이기로 결심했다. 그 시작으로 추리소설과 퍼즐책을 불태워 버리는 것이다. 수수께끼를 죽인다. 나와 똑같은 말을 하지만 그 의미는 정반대다. ‘수수께끼를 죽이는 앨리스’인 나는 정정당당하게 수수께끼와 맞서서 없앤다. 그러나 여왕은 수수께끼를 풀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그것을 말살한다.나와 여왕은 극과 극의 존재인 것이다.      p.250~251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 하야사카 야부사카는 범인이나 트릭, 동기가 아닌 제목을 맞힌다는 전대미문의 추리소설 《○○○○○○○○ 살인사건》으로 메피스토상을수상하며 등장했다. 메피스토상은 특별한 수상 기준 없이 철저하게 재미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독특한데, 모리 히로시가 <모든 것이 F가 된다>로 메피스토상 제1회 수상자로 선정되며 데뷔했다. 나오키 상을 수상한 츠지무라 미즈키 역시 메피스토상 출신이다.

 

이 작품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가상공간을 접목한 신감각 본격 미스터리 소설이다. 앨리스가 풀어야 하는 다섯 개의 수수께끼들은 모두 루이스 캐럴의 원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에피소드들을 변형해 재구성한 것이라, 익숙하면서도 색다른 지점에서 오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앨리스의 모험 여정이 끝난 뒤 마주하게 되는 기상천외한 대반전 역시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수수께끼를 죽이는 앨리스' 라는 뜻의 명탐정 '앨리스 더 원더 킬러'라는 제목도 신선했고, 각각의 수수께끼를 풀어 나가는 과정에서의 트릭 들도 재미있었다. 고바야시 야스미의 <앨리스 죽이기>가 잔혹하고 그로테스크했다면, 하야사카 야부사카의 <앨리스 더 원더 킬러>는 순수하게 논리와 트릭에 집중하는 분위기라 완전히 다른 색깔의 작품이 되었다. 물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원작으로 하는 추리 소설들이 그 동안 많이 있어 왔지만, 최근 작 중에서는 이 두 작가의 작품이 매우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루이스 캐럴의 원작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도, 본격 미스터리를 즐기는 이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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