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심리의 재구성 - 연쇄살인사건 프로파일러가 들려주는
고준채 지음 / 다른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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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규 사건 후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도 일제 식민지배로부터 독립한 후 6·25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사회적으로 혼란한 시기였기 때문에 신고되어 드러난 범죄가 없거나, 도시화가 늦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윤리를 중시하는 우리 민족의 유교 문화도 연쇄살인 같은 잔인한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 데 기여했을 것이다. 1970년대에 이르자 우리나라에서도 연쇄살인 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p.30~31

 

범죄 소설을 좋아해서인지 범죄 수사와 프로파일링 관련 책들도 많이 읽어본 편이다. 프로파일러 표창원, 김경옥, 권일용,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교수 등 사건, 사고가 터질 때마다 언론에서 자주 보게 되는 이들의 저서는 모두 다 읽어보았으니 말이다. 국내에서 실제 활동하는 프로파일러는 약 40명 내외로 그 수가 매우 제한적이다. 이번에 만난 책은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프로파일러 특채 1기로 활동한 프로파일러 고준채 저자가 썼다. 그는 강호순 연쇄살인사건, 오원춘 살인사건 등 굵직굵직한 강력범죄 사건 수사에 참여한 이력이 있다.

 

프로파일링이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과학적인 연구 방법과 심리학적 원리 등을 활용하여 수사관들에게 전문적인 조언을 제공하는 수사 기법이다. 우리나라 경찰에서 현재 프로파일링의 역할은 수사 방향 제시, 용의자 신문 전략 수립, 사건 관련자들의 진술 신빙성 평가, 용의자 거주 지역 범위 설정 및 동일 수법 전과자 추출, 피의자 심리 면담 등 수사 실무 전반에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프로파일링이라는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미 벌어진 범죄에 대해 자료를 통해 '사후분석'을 하고, 범죄를 예방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사건이 발생하면 바로 현장에 투입되어 사건에 관한 정보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훼손되지 않은 현장을 관찰하여 현장에 남겨진 물리적 증거뿐 아니라 범인의 행동 흔적을 찾아내고, 범행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하여 범죄자를 분석하는 일을 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사이코패스라고 해서 꼭 연쇄살인마가 되는 것은 아니다. 폭행이나 상습 절도, 강도 같은 범죄를 우발적으로 일으켜서 교도소를 들락거리는 경우가 많다. 거짓말을 잘하기 때문에 자신의 거짓말이 들통나도 곧바로 다른 거짓말을 생각해내기도 한다. 뻔뻔하게 어떤 말이든 아무렇지 않게 내뱉기 때문에, 매우 무식한 사람이라도 아주 박식하고 매력적이며 유능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p.167

 

이 책의 서두를 여는 것은 최초의 연쇄살인범 질 드레, 런던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살인광 잭, 영화 '양들의 침묵' 속 버펄로 빌, 미국 역사에서 '세기의 재판'으로 불리는 찰스 린드버그 아들 납치 사건 등 세기의 범죄들이다. 이어지는 것은 그에 못지 않은 우리나라의 강력 범죄 사건들이다. 사건 발생 33년 만에 극적으로 범인을 검거한 화성연쇄살인사건, 올해 12월 출소를 앞두고 있는 조두순 사건과 최근 이슈가 되었던 n번방 등 텔레그램 관련 디지털 범죄들을 짚어본다. 이렇듯 일반적인 정서와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게 되면 사회는 그들의 동기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로 인해 범죄 심리학이 발달하게 되고, 프로파일링이라는 최첨단 수사 기법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저자가 10여 년 동안 프로파일러로 일하며 겪은 수많은 실제 사건의 사례들을 통해서 범죄 수사 현장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너무 흥미로웠다. 끔찍한 범죄 현장을 다니며 마음속 괴물과 싸우는 사람들, 범죄 현장에 남긴 흔적을 분석해 범행 동기와 수법을 파악하고 그들의 심리를 분석해 다시 같은 범죄가 생기지 않도록 막는 사람들이 바로 프로파일러이다. 우리가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유명한 사건들이 어떤 식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또 어떤 과정을 거쳐 범인이 검거되고 사건이 해결되는지 보여주고 있어 범죄 수사에 관심이 많다면 매우 도움이 될 것 같다. 프로파일러뿐 아니라 과학수사요원, 피해자케어요원, 형사, 최면수사관, 진술분석가, 위기협상요원 등 사건 수사를 위해 다양한 역할을 하고 직업들에 대해서도 알려 주고 있어 해당 분야로 진로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도 유익한 정보가 되어 줄 것이다. 끔찍한 범죄 사건에 대한 뉴스 보도를 접하면 생각한다. 도대체 어떤 인간이기에 이런 짓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 어떻게 한 인간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을 이토록 완벽하게 상실할 수 있는가. 왜 이런 사건이 반복될까? 우리는 이러한 괴물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 책을 통해서 끔찍한 범죄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오늘도 현장에 가서 참혹한 죽음과 마주하는 이들의 노고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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