팅커벨 죽이기 죽이기 시리즈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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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가는 죽을지도 몰라."
"당연하지."
"죽는 게 무섭지 않아?"
"죽는 게 무서우냐고? 무슨 소리야? 죽는 건 엄청난 대모험이라고! 그렇지, 얘들아?"
피터가 대뜸 물어보자 소년들은 부리나케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자, 봐." 피터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했다. "다들 목숨을 걸고 싸우고 싶은 거야."   p.49

 

고바야시 야스미의 '죽이기 시리즈' 그 네 번째 작품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변주했던 <앨리스 죽이기>, '호두까기 인형'을 모티프로 한 <클라라 죽이기>, '오즈의 마법사'와 미스터리를 결합시킨 <도로시 죽이기>에 이어 이번에는 '피터 팬'이다. 작가는  ‘피터는 자신이 죽인 사람은 잊는다’, ‘네버랜드 아이들은 살육을 즐긴다’, ‘피터의 부하는 피터가 모르는 사실을 알아서는 안 된다’는 원전 문장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확장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피터팬은 우리가 동화나 영화 속에서 만나왔던 피터팬과는 완전히 다른 인물처럼 보인다. 천진난만하면서도 사악한 웃음을 짓는 피터팬이라니,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사실 <팅커벨 죽이기>를 어느 정도 읽다가 아무래도 이 '피터팬'이라는 캐릭터에게 너무 적응이 안 되어서, 제임스 매튜 배리의 <피터팬> 원작을 다시 들춰 보았다. 그리고 흥미로운 대목들을 발견했다. 솔직히 세상에 피터만큼 건방진 소년은 없었다, 피터의 관심은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멋진 재주를 과시하는 데 있는 것 같았다, 등의 문장들은 영원한 소년 피터팬의 아이답고 철없음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만큼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 중심적이며, 악의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실제 동화에 묘사된 피터팬도 사람을 엄청 많이 죽여본 것을 자랑스레 이야기했고,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원했으며, 전투의 열망으로 가득하다는 걸로 나온다. 놀랍게도 말이다. 그렇다면 우린 그 동안 이 <피터팬>이라는 동화를 어떻게 읽고, 해석해 온 걸까, 새삼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 그렇게 보자니 고바야시 야스미의 '죽이기 시리즈'가 새삼스레 더 매력적인 작품으로 느껴졌다.

 

 

"즉 이런 말인가. 범인을 찾으려면 모두를 신문할 필요가 있지만, 여기서 신문하면 증언의 가치가 점점 상실된다."
"그러니까 범인 찾기는 신중하게 진행해야 해. 누군가 부주의하게 말을 꺼낸 순간, 누가 범인이냐는 정보가 영원히 사라질 수도 있어."
"네 머릿속에는 해결에 다다르는 경로가 만들어져 있어?"
"아마도."      p.293

 

이야기는 피터팬이 후크 선장을 죽이고 나서 웬디와 동생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온 뒤에서 시작된다. 피터는 웬디에게 봄철 대청소를 할 때 다시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여름이 되어서야 데리러 간다. 웬디와 동생들과 달링가에 입양된 소년들은 모두 피터와 팅커벨을 따라 네버랜드로 향한다. 하늘을 날던 중 배고픈 아이들을 위해 피터가 구해 온 고깃덩이 중에 말하는 도마뱀 빌이 등장한다. '죽이기 시리즈'를 계속 읽어 왔다면 누군지 알겠지만, 사실 이 작품으로 처음 접했다고 해도 상관없다. 도마뱀 빌과 지구에 사는 인간 이모리는 꿈으로 연결되어 있다. 빌이 이상한 나라에서 앨리스를 만나고, 호프만 우주의 사람들과 사건을 수사하고, 오즈의 나라에서 활약하며 모험을 펼치는 동안 지구의 이모리가 도움을 주며 빌을 구하려고 한다. 현실과 꿈 속 세계, 각기 다른 두 세계에서 일어난 죽음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점이 흥미로운데, 예를 들어 네버랜드의 누군가가 죽으면 지구에 있는 아바타라도 죽는다. 꿈 속 세계에서 살해당하더라도, 현실 세계에서는 병이나 사고로 죽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범인을 찾아낼 수도,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나기도 쉽지가 않다.

 

네버랜드에 도착하자마자 팅커벨이 잔혹하게 살해된 채 발견되고, 아이들은 피터를 범인을 찾는 탐정으로 적극 추천한다. 하지만 범인을 찾겠다며 무차별 살인을 저지르는 피터 때문에 지구에서도 사고가 잇따르자 이모리는 살육을 멈추기 위해 그의 아바타라를 찾아 나선다. 꿈의 나라 네버랜드에서는 매일매일 살인이 일어나고, 동화 속 나라에 대한 환상은 산산조각이 나지만, 그럼에도 도마뱀 빌과 이모리의 모험은 계속 된다. 다음에는 또 어떤 동화 속 세계가 잔혹한 환상으로 바뀌게 될 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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