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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무얼 부르지 ㅣ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4
박솔뫼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평점 :
무언가를 잘하게 되는 데 필요한 건 열심히가 아니라고 그게 남들이 보기엔 열심히로 보여도 당사자에겐 아니라니까 열심히가 아냐 무작정이 아니란 말이야 좀 더 구체적으로 지목할 수 있는 항목이 당사자와 함께 달려 나가는 거에 가깝다니까. 뭐 양보해서 열심히가 중요하다고 쳐도 정말로 열심히의 세계가 있겠어? 있다 해도 그게 튼튼해? 검은 옷 당신의 말처럼 열심히의 세계로 만들어진 노래가 자기의 몸을 부수고 세상에 던져질 만큼 튼튼해? 게다가 열심히로 만들어진 노래라니 조금도 듣고 싶지 않잖아. 안 그래? 정말로 나는 아니라고 생각해 나도 생각이라는 것을 했는데 아니라고 생각해. -'안 해' 중에서, p.53
박솔뫼의 첫 소설집 <그럼 무얼 부르지>는 2014년 출간 당시 이 작품집으로 김승옥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6년이 지나 이번에 민음사의 '오늘의 작가 총서' 시리즈로 재출간되었다. <오늘의 작가 총서>가 새로운 시작을 알리며, 2000년대 이후 출간작 중, 문학적 가치와 소설적 재미가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여러 사정으로 독자를 만나기 어려웠거나, 다시 단장할 필요가 있는 5종의 소설을 동시에 선보였다. 신작이 아니라 독자들과 다시 만날 수 있도록 기존 작품들을 새로운 표지로 보여준다는 점이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특히나 이번에 만난 작품은 표지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져서 전혀 다른 작품처럼 느껴지는데, 사라지고 나면 남는 것들에 대한 사유가 근사하게 표현된 이미지라 작품과 너무도 잘 어울린다.
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된 이 소설집에는 지명을 공유하는 작품이 두 작품 있고, 공간과 등장 인물이 공통적인 작품이 두 작품 있다. <안 해>라는 작품에서는 노래방에 손님을 가둬두고 막무가내로 노래를 시키는 검은 옷 남자가 등장한다. 여고생 두 명이 손님으로 오면 한 명은 노래를 계속 부르도록 시키고, 같이 온 친구는 노래방 뒤에 있는 방에 가둬두는 식이다. 노래를 부르던 여고생이 밖으로 나가려 하면, 문을 발로 차고 가둔다. 검은 옷 남자는 어떤 기준에선지 사람들을 고른 후 가두었고, 누군가는 가두지 않고 계속해서 노래를 시킨다.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르고 정말로 열심히 부르는 게 어떤 건지 알게 되면 그때 그 사람의 노래가 완성되는 거라는 이야기를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는데, 물론 무작정 노래를 해야 하는 당사자는 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그들 중에 누군가가 기세 좋게 남자의 논리를 거부한다. ‘구름새 노래방’이라는 공간과 ‘검은 옷 남자’라는 노래방 사장은 <그때 내가 뭐라고 했냐면>이라는 작품에서도 등장한다. 하지만 두 작품을 연작이라고 보기는 다소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그래서 더욱 흥미롭게 읽힌다.
여름이 끝나고 나는 수도로 돌아왔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책을 읽던 남자가 말했던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는데 이해하고 나자 그 말은 당연하게 여겨져 어째서 예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는지 오히려 의아했다. 돌아가고 싶은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지? 어느 때고 그렇지? 여전히 나는 가볍고 바람이 통과하고 흔들거리고 텅 비어 있고, 질문들은 빈 공간을 빠져나가 돌아오지 않는다. 돌아가고 싶은 사람도 돌아가고 싶어지는 때도 없다. 언제나 그랬지만 다시 어딘가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게 어떻지는 않았다. 사라지는 것을 계속 지켜볼 수 있을 뿐이었다. -'해만' 중에서, p.93
<해만>과 <해만의 지도>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해만'은 육지로부터 배로 다섯 시간이 걸리는 섬이다.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섬에서 서너 달 머무르는 데 문제가 없을 정도의 돈이 생겨 해만에 가게 된다. 그곳을 알게 된 것은 신문 기사 때문이었다. 존속 살인을 한 범죄자가 해만에 숨어들어 한참 후에야 찾을 수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관광지이기는 하지만 그다지 유명하지도 않고, 볼거리도 없는 그곳에 가게 된 이유치고는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그곳은 마냥 안온하거나 평화로운 공간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각자 저마다의 이유로 그곳에 온 여행자들이었다. 이야기는 그곳 여행자들의 숙소를 중심으로 어린 대학생, 책을 읽던 남자, 직장을 그만두고 온 '나'를 비롯해서 섬에 들어왔다는 존속살해범의 여동생이라 자처하는 여자까지 자발적으로 육지를 떠나 그곳을 찾아온 이들의 사연을 풀어낸다.
그 밖에도 5.18을 겪지 않은 세대가 '광주'라는 사건에 대해 갖는 역사적 태도를 보여주는 <그럼 무얼 부르지>, 사람이 테이블이 되어 가는 이상한 상황을 그리고 있는 부조리극 분위기의 <안나의 테이블> 등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박솔뫼의 소설들은 독특하고, 낯설게 느껴진다. 쉽게 잘 읽히지만 다 읽고 나면 무슨 얘기인가 싶은 게 있고, 연작처럼 보이는 작품임에도 뭔가 어긋나 있다. 잔잔하게 흘러가던 서사가 갑작스레 돌발적인 곳으로 향하기도 하고, 삶에 대한 적극적 의지를 결여한 것처럼 보이던 인물에게도 욕망이 있다. 특유의 분위기가 있고, 작가의 색깔이 뚜렸하다는 점이 박솔뫼의 소설들이 가지는 장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서사의 '재미'적인 요소는 조금 덜하지만,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는 작가의 예리한 시선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를 읽는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다면 적극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