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소녀의 거짓말 - 구드 학교 살인 사건
J.T. 엘리슨 지음, 민지현 옮김 / 위북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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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동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나름대로 사회학적 연구라도 하듯 많은 자료를 찾아 읽었다. 사람은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 자신에게, 서로에게. 어딘가에 속하기 위해, 받아 들여지기 위해, 그리고 중요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과거에는 거짓말로 돈을 벌거나 손해를 피하기가 훨씬 쉬웠다... 지금은 모두가 약장수인 시대다. 소셜미디어가 등장하면서 대중이 당신의 창문과 대문, 나아가 마음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 거짓말을 하려면 신중하고 치밀해야 한다. 연출하고, 걸러내고, 계획해야 한다.      p.18

 

완벽하게 줄지은 창문들, 그 안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며 안뜰을 굽어보는 듯한 지붕 창들, 엄청난 예산을 들여 가꾸는 교정과 숙소들, 수목원.. 아름다운 학교다. 그러나 뭔지 모를 불안한 기운이 서려 있다. 이곳은 100년이 넘은 오랜 역사를 가진 명문 기숙학교인 구드 학교이다. 워싱턴 D. C.의 엘리트 계층인 상원의원과 하원의원, 외교관, 정부 고위직과 그 밖에 억만장자의 딸들이 모인 영재학교로 대부분의 학생들이 하버드를 비롯한 아이비리그에 진학한다. 학 학년의 정원은 단 50명, 모두 포드 학장이 직접 선출한다. 구드는 최고의 학생만을 받아들이고, 그들이 노력한 만큼 미래를 보장시켜 주는 곳이었다.

 

전학생이 거의 없는 이곳에 어느 날 영국에서 온 아름다운 소녀가 전학을 온다. 180센티미터에 윤기 흐르는 피부, 연회색이 감도는 파란 눈동자, 천연의 금발 머리, 그리고 순진무구한 소녀의 미소를 가진 애쉬 칼라일. 그녀는 얼마 전에 끔찍한 비극을 겪었다. 한날 한시에 부모가 자살한 것이다. 런던에서 인정받는 자산관리 전문가였던 아버지가 재무부 차관에 내정되기 직전 불륜 스캔들이 터지자 자살했고, 어머니 마저 심한 충격을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게다가 오래 전 남동생도 그녀와 함께 호숫가에 있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 열여섯 소녀 주변에 너무 많은 죽음이 있었고, 이러한 애쉬의 사정을 안타깝게 여긴 포드 학장은 그녀의 개인사를 밝히지 않고, 이름을 바꾼 상태로 입학하는 것에 동의했다. 그런데 애쉬가 전학을 오고 나서 구드 학교에 의문의 죽음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모든 과거를 잊고 새로운 세계에서 다시 시작하기 위해 멀리 전학 온 애쉬를 또다시 찾아온 죽음의 그림자, 과연 그녀는 그 모든 죽음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살아 나갈 수 있을까?

 

 

우리는 최악의 순간들을 돌아보며 살아간다. 아픈 치아를 찔러보고, 멍든 자국을 눌러보면서 아직도 아픈지 확인한다. 그러는 동안 현재의 행복을 흘려보낸다. 그것을 누릴 자격이 없으므로. 평안하다는 것, 행복하다는 것은 뭔가 잘못했다는 뜻이니까. 누군가의 어깨에 올라타거나, 누구를 아프게 했거나, 속이거나, 거짓말을 했다는 뜻이니까. 상처에 덮인 딱지를 떼어내서 피 맛을 보고, 싸우고, 미워하고, 섹스를 하고, 사랑을 한다. 무엇을 위해? 인생이란 도대체 뭘까?      p.403

 

구드 학교는 오래된 전통만큼이나 여러 떠도는 괴담들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10년 전, 숲을 가로지르는 길에서 학생 하나가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당시 살인자의 아들이 지금 학교에서 사환으로 일하고 있었다. 비밀 클럽이 다락방에서 신생아 뼈를 여러 구 찾았다는 얘기도 있었고, 학교 밑으로 지나가는 지하철도와 터널도 위험했으며, 수목원 길은 절대 혼자 다니면 안 되고, 계단이 붉은색인 이유도 어떤 여학생이 목을 매달면서 흐른 피가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와중에 애쉬는 항상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는 것 같다고 느낀다. 게다가 저마다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특권층 소녀들의 견제와 질투, 선생님들의 암묵적인 묵인 하에 운영되는 비밀클럽과 학교의 수많은 규칙들로 신입생의 나날은 정신 없이 흘러 간다.

 

이야기는 주로 신입생 애쉬의 시점과 포드 학장의 시점으로 진행되는데, 두 인물 모두 명백하게 거짓말을 하거나 뭔가 숨기는 게 있다. 그리고 현재의 버지니아 마치버그에서 벌어지는 일 사이로 몇 개월 전 영국 옥스퍼드에서 있었던 일이 교차로 보여지면서 더욱 긴장감을 부여하고 있다. 소녀들만 모여 있는 명문학교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라 학원 스릴러 내지는 영어덜트 소설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가볍지 않은 작품이었다. 심리 묘사도 촘촘하고, 플롯도 잘 짜여 있고, 반전도 인상적이고, 페이지를 넘길 수록 더해가는 서스펜스 또한 훌륭하다. J.T.엘리슨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라 낯설지만, 영미권에서는 FBI 시리즈와 형사 테일러 잭슨 시리즈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리고 대통령 임명직으로 백악관에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워싱턴 정가 엘리트의 실체를 누구보다 훤히 꿰고 있어 대단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매혹적인 배경과 생생한 인물들, 그리고 놀라운 반전까지 영화화하기에 딱 좋은 작품이 아닌가 싶다. J.T.엘리슨의 다른 작품들도 국내에 소개되어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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