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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르본 철학 수업 - 세상을 바꾸기엔 벅차지만 자신을 바꾸기엔 충분한 나에게
전진 지음 / 나무의철학 / 2020년 8월
평점 :
작은 집에 부지런히 책을 들여다 놓는 것도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거주의 불안에 시달리는 외국인의 입장에서 이사할 때 제일 번거로운 물품이 책인데도 말이다. 그렇지만 이는 공간을 가장 넓게 점유할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 활자 너머의 아득한 세계에 비하면 종이의 두께와 면적이 차지하는 자리는 거저나 다름없어 보인다. 측량할 길 없는 세계로 가는 입장권을 모셔두고 좁은 집에서 우주를 탐험하는 일은 나의 가장 오래된 습관이다. 상상력이 머무는 공간, 그곳을 나는 집이라고 부르곤 했다. p.83
제목만 보고 오해하는 이들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은 '철학'책이 아니다. 사실 책에 대한 정보를 거의 보지 않고 책을 읽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책을 읽기 전에 겉 날개에 있는 저자의 이력부터 보았다. 그런데 고등학교 졸업 후 파리로 가서 어학 코스를 2년 밟고, 파리 1대학 철학과에서 학사를 졸업하고, 올해 가을부터 동대학원에서 공부할 예정이라는 이력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잘못 본 줄 알았다. 철학에 대해서 겨우 3년 공부한 대학 졸업생이 어떻게 철학에 관한 책을 낼 수가 있지 싶었던 거다. 그래서 사실 다소의 의심을 가지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책이 너무 술술 잘 읽히고, 재미있기까지 했다. 읽다 보니 이 책은 철학을 공부한 학생의 유학 수기 내지는 에세이로 분류가 될 것 같았는데, 저자가 글을 참 맛깔나게 잘 쓰고 있었고 '철학'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철학'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그러니 철학이 뭔지도 모르고 소르본 대학 철학과에 입학하겠다고 프랑스 땅을 밟았던 저자처럼, 철학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혹은 관심이 전혀 없다고 하더라도 이 책을 즐기는 데에는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다.
그러니 일단 도망가지 않는 것부터 시작하자. TV 화면에 얼굴을 묻거나 한껏 올린 소리로 귀를 막아선 안 되지. 저무는 해가 기웃대는 걸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으니. 그렇다면 드리우는 빛을 조명 삼아 책을 읽는 건 어떨까. 하염없는 기다림 말곤 달리 할 일도 없는걸. 나는 시간을 빠르게 흘러가도록 만드는 책을 선호했다. <돈키호테>였나? <걸리버 여행기>였을까? 페이지를 넘기는 몸만 남겨두고 나를 다른 세계로 불러내는 이야기가 있다. 관성처럼 읽어내는 책. 이런 경우 잠시 덮어야 하는 순간이 고통스럽다. 내가 읽던 책은 저녁을 예고하는 황혼처럼 활자가 빚어내는 세계의 입구였다. 고독이 두려운 어린이가 사라진 무아지경의 세계. p.220
원하는 답을 알아차리는 한국의 '눈치'와 찾은 답을 거부하는 프랑스의 '불온함' 사이에서, 배워본 적 없는 반항적 사고를 새로운 언어로 익히는 공부가 쉬웠을 리 없다. 프랑스에서 공부하려면 불어를 배워야 했고, 한국에서 배웠던 불어는 실전과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프랑스에서 왕초보반에 배정받으면서 다시 어학을 시작해야 했지만, 어학원은 갑작스레 문을 닫아 버렸고, 몇 달 치 수업료를 환불 받지도 못한 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일이 아기가 되는 가장 탁월한 방법이며, 언어를 몸으로 익힌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과정이란 흥미로웠다. 프랑스는 교육이 자본과 분리된 곳으로, 고등학교 졸업 시험인 바칼로레아를 통과하기만 하면 어느 국립대학이든 지원할 수 있는 평등 교육을 지향했고 학비 또한 저렴했다. 그런데 하필 저자가 공부를 하던 시기에 외국인 학생을 대상으로 등록금을 16배 인상한다는 소식이 들려 오고, 불합리한 정책에 반대하는 학생 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한다.
이처럼 저자의 유학 생활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하다. 단순히 자신의 경험담들만을 가볍게 늘어놓고 있는 게 아니라 소르본 대학의 철학과에서 배웠던 여러 사상가들의 이론에 대한 진지한 사유가 함께 하고 있어 더욱 흥미로웠다. 특히나 한국과 프랑스, 두 나라가 서로 당연하다고 여기는 제도가 너무도 다르다는 데서 오는 혼란과 저자의 고민이 와 닿았다. 나를 둘러싼 사회가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졌다는 가난한 유학생의 에피소드는 수많은 젊음들에게 공감과 이해를 불러올 것 같다. 저자는 말한다. 타인과 사회의 욕망에 반발해 이를 악문 도망은 견딜 만하지만, 타인의 욕망으로 형성된 나라면 '와장창'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고. 누군가 질문을 해오는데 자신은 거기 없을 테니 말이다. 나는 어떻게 살아온 건지 삶이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면, 사회가 강요하는 온갖 규범 속에서 온전히 나로 존재하는 것이 어려웠다면 이 책이 '내가 될 용기'를 줄 수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