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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8월
평점 :
"네 말이 맞아. 별 거 아니지! 그래서 이게 말이 안 되는 거야! 우리가 저스티스 리그나 엑스맨도 아니잖아!"
"우리, 납치당한 거야?"
그는 그들이 폭소를 터뜨려 주길 간절히 바랐다. 한 명이라도 당연히 그건 아니지 하고 대답해 주길 간절히 바랐다.
"당근이지." 조지가 말했다. p.143
남편과 아내가 죽어 있고, 그들의 아이가 사라진 현장을 경찰이 발견한다. 앞뒤 정황상 아이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다. 아이는 열두 살의 나이에 두 개의 일류 대학에서 입학 허가를 받은 뛰어난 지능의 소유자였고, 경찰은 머리가 좋은 아이가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경우가 많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래 봤자 아직 어린 아이였고, 아무리 머리가 좋은 아이라도 오랫동안 숨어 있지는 못할 것이므로 아이를 찾는 건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아이는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왜냐하면 그들이 데려갔기 때문이다.
그곳은 TP(텔레파시)와 TK(염력)을 가진 아이들을 모아놓고 가혹한 훈련과 실험을 통해 그들의 능력을 키워 테러에 사용하는 ‘시설’이었다. 아이들을 납치해 그들의 초능력을 테스트하는 그곳에는 의사도 있고, 기술자도 있고, 숲 속에 박혀 있는 소규모 병원이자 일종의 수용소였다. 시설에서 지내는 동안 그들은 외부 세계와 전혀 접촉할 수 없었고, 모든 명령에 복종해야 했다. 아이들에게 선택권이란 없었다. 조국에 봉사하는 어마어마한 특권이라는 말로 포장하고 있었지만, 아이들을 일종의 무기로 개조해 남는 게 없을 때까지 쓰고 버리는 곳이었다.
루크 엘리스는 머리가 비상한 동시에 특이하다는 평가를 받지 않으려고 오버해 가며 붙임성 있게 굴던 아이였다. 그는 적절한 상호작용을 모두 수행한 뒤에 책의 세상으로 돌아갔다. 이 세상에는 심연이 있고, 책 속에는 거기 숨겨진 것을 소환하는 비밀의 주문이 들어 있었다. 모든 걸작 미스터리물이 그랬다. 루크에게는 그런 미스터리물이 최고였다. 미래의 언젠가는 그가 직접 책을 쓸 수도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유일한 미래가 뒤 건물이었다. 여기에서는 '그런들 무슨 소용이겠어'가 삶의 진리였다. p.323
그곳, 비밀 시설에서는 물건을 마음대로 움직이고, 타임의 마음을 읽어내는 초자연적 능력을 지닌 아이들을 몰래 잡아와 시험을 했다. 뭔지 모를 주사를 잔뜩 맞히거나, 수조에 넣어 놓는 등 비인간적인 훈련이 이어졌다. 대신 아이들에게 유일하게 허용된 것은 담배나 술, 각종 과자며 탄산음료들이었다. 덕분에 열 살밖에 안 된 아이들이 칵테일이나 위스키를 뽑아서 마시기도 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앞 건물에 머무는 기간이 대략 3주, 그 기간이 지나면 뒤 건물로 건너가 임무가 해제되고 관련된 기억이 삭제된 후 다시 부모 곁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그들은 루크의 부모를 살해하고 루크를 데려왔다. 당연히 아이들이 알고 있는 이 모든 것이 거짓말이고, 조작이란 뜻이다. 시설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빼앗기며 참담한 생활을 이어가던 루크는 실험 약물의 부작용으로 함께 있던 아이가 죽는 사건이 발생하자 정신이 번쩍 든다. 이런 식으로 자신을 잃어 버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죽음을 불사하더라도 이곳을 탈출하겠다고 말이다.
스티븐 킹은 어른들이 전 인류를 위한다는 명분 아래에 아이들을 가차 없이 짓밟는 비인간적인 이야기를 그리면서, <그것>에 이어 악에 맞서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공포와 판타지 그 사이에서, 항상 불가능하면서도 가능한 세계를 그려온 작가답게 이번 작품 역시 끔찍하지만 현실적인 이야기였다. 그는 출간 기념 인터뷰에서 무방비하고 약한 인간들이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순진무구한 아이들이 어른들의 욕심으로 점철된 악을 만났을 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엄청난 사건들도 경첩의 사소한 움직임 하나로 방향이 바뀔 때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스티븐 킹의 놀라운 스토리텔링을 만나 보자. 1권 마지막에 탈출에 성공한 루크가 그들에게 어떻게 복수하게 될지 궁금해서 어서 빨리 2권도 만나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