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더봇 다이어리 : 인공 상태 FoP 포비든 플래닛 시리즈 8
마샤 웰스 지음, 고호관 옮김 / 알마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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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만 5천 시간 전쯤에 나는 라비하이랄 광산 시설 큐 정거장에서 계약을 맡았어. 임무 도중에 폭주해서 고객의 상당수를 죽였지. 그 사건에 관한 내 기억은 부분적으로 지워졌어."
보안유닛의 기억 삭제는 언제나 부분적이다. 우리 머릿속에 있는 유기체 부분 때문이다. 유기체 신경 조직의 기억은 지울 수가 없다.    p.49

 

먼 우주로의 여행이 일상이 된 미래, 사람들이 외계 행성을 탐사하려면 기업의 승인을 받고 보안 유닛과 함께 해야 했다. 이야기의 화자는 사람이 아니라 보안용 안드로이드인 머더봇murderbot 이다. 그는 스스로를 '살인기계'라고 부르는데, 오래 전 사람을 죽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 그의 지배모듈이 오작동을 일으켜, 시스템의 통제권을 잃고 자신이 보호해야 했던 사람들인 채굴 작업자 쉰일곱 명을 죽였기 때문이다. 회사는 그를 회수해서 새 지배모듈을 설치했고, 그 뒤로 3만 5천 시간이 훌쩍 넘을 동안 살인을 한 적은 없다. 대신에 그 시간 동안 영화와 드라마, 책, 연극, 음악을 즐기며 지냈다. 다운받은 드라마 보는 걸 가장 좋아하는 안드로이드, 인간에게 냉소적이고 자신을 무자비한 살인기계로서는 실패작이라고 칭하는 독특한 캐릭터이다.

 

 

이번 작품에서 머더봇은 자신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 스스로를 살인기계라고 부르게 된 과거 학살, 비극의 장소로 돌아가기로 한다. 그 동안 머더봇은 주로 외딴 시설이나 거주민이 없는 탐사 행성에서 하는 일을 해왔다. 하지만 화물선을 타고 돌아다니며 드라마나 보면서 남은 삶을 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한 그는, 텅 빈 화물선을 혼자 타고 환승 고리까지 와서 자신이 자유로운 봇이며 인간 보호자에게 돌아가려는 중이라고 속이고 우주선을 얻어 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존재를 만나게 된다. 심술을 부릴 정도로 똑똑한 우주선 봇이 그가 탈주한 보안유닛이라는 알아보고 말을 건 것이다. 머더봇은 우주선봇과 함께 드라마를 보기도 하고, 그의 도움으로 신분을 위조해 증강인간인 척하며 인간들의 팀에 합류해 그곳으로 향한다. 과연 그는 자신의 정체를 찾을 수 있을까?

 

 

"스스로 어떻게 대처할 수 없는 일을 당할 때도 있는 법이에요. 그저 살아남아서 계속 나아가야 하죠."
다들 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나는 불안해져서 곧바로 옆에서 우리를 볼 수 있도록 가장 근처에 있는 보안카메라의 시야로 전환했다. 내 의도보다 더 강조해서 그 말을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원래 세상일이 다 그랬다. 그 말이 왜 그렇게 큰 영향을 끼쳤는지는 알 수 없었다.     p.143

 

이 시리즈의 전작인 <머더봇 다이어리: 시스템 통제불능>은 2018년 휴고상, 네뷸러상, 로커스상을 석권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번째 작품 <머더봇 다이어리: 인공 상태> 역시 2019년 휴고상과 로커스상을 수상하며 2년 연속 세계 SF 어워드를 석권한 시리즈가 되었다. 총 4부작인 ‘머더봇 다이어리’ 시리즈는 내년에 <머더봇 다이어리: 로그 프로토콜>과 <머더봇 다이어리: 탈출 전략>으로 이어질 예정이라고 한다.

 

'머더봇 다이어리' 시리즈가 매력적인 이유는 인간이 아닌 존재를 통해 인간답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는 점 때문이다. 늘 연결돼 있지만 혼자이기를 갈망하는, 인간을 냉소하지만 필요할 때는 따뜻한 농담도 건넬 줄 알고, 드라마를 많이 본 덕분에 위기 상황에서 기지를 발휘할 줄도 아는, 소심하고 사회성 없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살인봇이라는 전대미문의 캐릭터 또한 매우 인상적이고 말이다. SF라는 장르 중에서도 스페이스 오페라는 다소 어렵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과학적 공상과 상상력이라는 것이 재미를 보장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작가가 구축한 세계의 설정들을 이해했을 때 가능한 지점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시리즈는 문턱이 그리 높지 않아 누구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머더봇이라는 안드로이드의 일인칭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많고, 가장 비인간적인 존재여야 할 인공지능이 마치 진짜 인간처럼 생각하게 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게 되는 과정 또한 흥미진진하니 말이다. 이 매력적인 안드로이드와 함께하는 장대한 우주 모험의 세계로 당신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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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08-19 08: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밌을것 같네요. 서재에서 이렇게 새로운 작가나 책을 만나는게 항상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