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왕국 프로이센
크리스토퍼 클라크 지음, 박병화 옮김 / 마티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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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늘 곁에 두고 책으로부터 자극을 받고 싶은 프리드리히의 욕구는 너무도 본능적이어서 그는 원정 기간용으로 만든 이동식 '야전도서관'까지 갖추고 있었다. 글쓰기(언제나 프랑스어로)도 중요했는데, 그것은 단순히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전하는 소통의 수단일 뿐만 아니라 심리적 피난처였다. 그의 글에는 철학자의 비판적인 거리를 유지하면서 행동하는 남자의 대담성과 발랄함을 결합하려는 열망이 담겨 있다. 이 두 가지 인간 유형은 '철인왕'이라는 치기 어린 자기 묘사 속에서 결합되었다. 철인과 왕 두 가지 역할 중 어느 것 하나만으로는 자신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p.265

 

지금은 지도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린 곳, 한때 독일 인구의 62퍼센트, 면적의 65퍼센트를 차지한 거대한 땅이자 권력이었지만 역사의 무대에서 완전히 지워져 버린 프로이센.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언급되던 것을 빼고는 전혀 들어볼 일 없었던 그 프로이센에 관한 엄청난 책을 만났다.

 

 

모든 언어를 막론하고 프로이센에 관한 최고의 역사서로 평가 받는 이 책은 프로이센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지워졌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무려 천 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때 많은 사람들에게 그토록 위풍당당해 보였던 국가가 어쩌다 그렇게 급작스럽고 감쪽같이, 그 어떤 애도도 없이 사라지게 되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분량의 압박을 견뎌야만 하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을 만큼 흥미로운 책이었다.

 

책의 서두에 프로이센- 브란덴부르크의 역사를 보여주는 여섯 개의 지도가 수록되어 있다. 1415년 무렵의 지도부터 1918년 독일제국 시절의 프로이센을 보여주는 지도까지 시간대 별로 변두리 소국으로 출발해 독일을 통일시키고 제국으로 발돋움하기까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프로이센은 베를린 시를 중심에 둔 4만 제곱킬로미터에 이르는 지역인 브란덴부르크에서 시작되었다. 그저 단조로운 자작나무와 전나무 숲이 대부분의 땅을 뒤덮고 있던 시골 지역이었다. 토양은 척박해 나무가 제대로 자라지 못했고, 윤지로 둘러싸여 방어를 위한 어떤 종류의 자연경계선도 없었다. 그렇다면 장래성 없던 이 영지가 어떻게 강력한 유럽 국가의 심장이 되었을까.

 

 

1860년 <타임스>의 머리기사를 보자... 프로이센은 언제나 누군가에 의지하는 사람 같았다. 언제나 자신을 도와줄 상대를 찾으면서 결코 자립할 의지가 없는 사람, (...) 회의에는 참석하지만 전투에는 빠지는 사람, 얼마가 되었든 이상이나 감성은 있지만 현실 앞에서는 수줍음을 타는 사람 같았다. 프로이센은 대군을 거느렸지만 그 군대는 전투의지가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 어떤 나라도 프로이센을 우방으로 여기지 않으며, 어떤 나라도 프로이센을 적으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떻게 프로이센이 강대국이 되었는지는 역사가 말해주지만, 왜 프로이센이 아직도 강대국인지 말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p.687~688

 

대부분의 역사가 그러하듯이, 프로이센의 연대기 역시 온갖 굵직굵직한 전쟁들을 통과한다. 30년 전쟁, 북방전쟁, 7년전쟁, 프랑스혁명, 나폴레옹 전쟁,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무슨 전쟁이 이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 속에서 주요 통치자들과 사건들, 그들의 과거부터 이력에 이르는 것들을 낱낱이 다루면서도 이 책은 당시 살았던 평범한 백성들의 이야기도 놓치지 않는다. 전쟁이 민중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실제 진격 중인 군대가 지나가는 마을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리고 대중 문화에 어떤 재앙을 끼쳤는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수백 년에 걸친 프로이센의 정치, 사회적인 변화들을 이렇게 구체적이고, 점진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1947년 연합군 점령 당국은 프로이센이 전쟁을 일으킨 독일 내 주범으로 지목 당해 프로이센 주와 그 중앙정부, 그리고 그 정부기관은 프로이센이라는 이름과 함께 모두 폐지된다. 저자는 이러한 프로이센의 서사를 다루면서 선악을 나누거나 그 경중을 가리지 않으려고 했다고 밝히고 있다. 여전히 프로이센을 둘러싼 논쟁이 생기면 양극단으로 갈리고는 있지만, 이 책은 거기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프로이센의 역사를 이해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프로이센을 본격적으로 다룬 책은 국내에 그 동안 한 권도 없었기에, 출간 만으로도 굉장히 의미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주요한 정치적, 외교적 사건을 도식적으로 나열하는 것에 그치는 책이 아니라 정치적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사회문화적으로 유려하게 엮어내고 있어 만만치 않은 두께만큼의 읽는 재미도 선사하는 책이었다. 물론 읽을 때 재미있는 것과는 별개로 방대한 분량 때문에 막상 리뷰를 쓸려니 난감한 책이긴 했지만, 한 번쯤 시간과 비용을 들어 읽어 볼만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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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5 0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피오나 2020-08-16 23:38   좋아요 1 | URL
ㅋㅋㅋ 책을 읽으면서 저도 정말 이동식 야전 도서관 같은 걸 가지고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어요.
하루 남은 연휴 기분 좋게 보내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