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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의 미생물 - 우리 몸을 살리는 마이크로바이옴과 발효의 비밀
캐서린 하먼 커리지 지음, 신유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7월
평점 :
절판
음식물이 젓가락을 떠난 뒤에 겪는 일련의 과정은 듣기에 아름다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마치 잘 짜인 소설을 읽는 것처럼 놀랍고 또 매 순간이 굴곡과 변화로 가득하다. 우리가 먹은 저녁 식사는 대략 총 9m 길이의 코스를 수십 시간 내에 이동한다. 그 과정 내내 장은 신경, 신경전달물질, 호르몬, 면역 체계를 통해 몸의 나머지 부분과 소통한다. 근육은 수축하고 꿀렁거리고 이완하며 음식물을 이동시킨다. 사람들은 소화관이 매우 내부적이고 사적인 기관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소화관은 바깥세상으로 활짝 열려있다. 외부 물질(아마도 음식)이 매일같이 지나다니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p.52~53
수많은 균류, 박테리아, 바이러스, 고세균 등의 작은 미생물들은 인류가 나타나기 수십억 년 전부터 이 행성에 존재해왔다. 그리고 우리는 미생물 군중을 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으며 살고 있다. 만약 미생물이 없었다면 면역 체계는 제 기능을 잃고 음식물에서 필요한 영양소를 얻는 일도 어려울 것이며 인체의 내, 외부 전체가 병원균을 위한 드넒은 기회의 땅이 되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는 체내 미생물과 전쟁을 시작했다. 무분별한 항생제 복용이나 실내 배관 설치 등은 몇 세대 만에 고대 미생물 군집을 뒤집어놓았고, 인류의 음식 문화 역시 체내 미생물의 조성을 바꾸고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의 서문에서 '이 책은 체중 감량의 지름길이나 건강을 위한 기적의 치료법을 알려주기 위해 쓴 책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인체와 체내 미생물에게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해 우리 인간들이 찾아냈던 수많은 방법들을 살짝 맛보려 한다'고 밝히고 있다. 치즈, 요거트, 김치, 낫토, 사우어크라우트, 콤부차, 올리브, 코코아 등 우리의 장내 미생물을 먹이는 전 세계의 대표 전통 음식들을 찾아 떠나는 여정은 매우 누구라도 매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미생물이 어떤 존재인지에서부터 그러한 미생물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하는 음식, 그로 인해 마이크로바이옴이 우리 몸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게 되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지고 있다.
"우리는 음식을 대할 때 '이건 먹어도 괜찮아, 이건 상했어'라고 딱 잘라 분류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살균 기술과 유통기한이라는 것이 생겨나면서 음식에 무언가가 살고 있다면 그것은 문제가 되고 따라서 그 음식은 상한 것이라는 생각이 기정사실화 됐죠. 그러나 이곳에서는 그런 식의 시선이 도움이 되지 않아요." 그녀가 설명했다. "저는 가끔씩 사람들에게 '당신은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을 구매한 거예요'라고 말해요. 발효 음식은 시간에 따라 계속 변하니까요." p.322
수많은 연구들이 밝혀낸 건강과 장수의 비밀은 결국 전통 식단과 맞닿아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과일과 채소를 많이 먹고, 섬유질을 충분히 섭취하며, 고기는 적당량만 먹고, 발효 음식으로 맛을 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먹는 식단에 이러한 음식들을 꾸준히 포함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요즘 과학계를 들썩이게 하는 키워드가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이라고 하는데, 우리 몸 안의 미생물 생태계를 말하는 마이크로바이옴이라는 단어 자체를 처음 들어본 이들도 있을 것이다. 건강한 미생물이 우리의 위와 장을 튼튼하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비만, 자폐, 알레르기, 우울증 등까지 치료하는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 받고 있다고 하니 궁금해지기도 하는데, 너무 낯선 분야라 어렵고 딱딱한 내용이 이어지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 너무 술술 읽혀서 깜짝 놀랐고, 무엇보다 미생물이라는 존재의 가치에 대해 새롭게 발견할 수 있어 좋았다.
과학 전문 저널리스트인 캐서린 하먼 커리지는 우리에게 아직은 낯선 '미생물의 세계'를 일상에서 늘 접하고 친숙한 '음식'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 과학계의 화두인 마이크로바이옴을 소개하고, 미생물 연구의 최전선에 선 학자들과 미생물이 풍부한 세계 곳곳의 발효 음식을 소개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 대표적인 발효 식품인 요거트와 라씨, 치즈를 이용한 전채 요리인 수프 드 샬레, 그리고 피클, 사우어크라우트, 김치, 낫토 등의 레시피까지 수록하고 있어 누구라도 발효 식품을 직접 만들어, 먹어볼 수 있도록 도와 준다.
저자는 경동시장에서 김치에 대해 논하고, 스위스의 수백 년 된 치즈 동굴을 방문하며, 홍어만큼 지독하다는 그린란드의 발효 생선을 소개하고, 새로운 트렌드가 된 발효 식품 콤부차도 빼놓지 않는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미생물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고, 이를 풍부하게 함유하는 발효 음식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우리 몸을 살리는 마이크로바이옴과 발효의 비밀을 만나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