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여자들 - 편향된 데이터는 어떻게 세계의 절반을 지우는가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 지음, 황가한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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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늘 일해왔다. 무급으로, 저임금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보이지 않게 일해왔지만 일하지 않았던 적은 없다. 그러나 오늘날의 일터는 여자를 위해 기능하지 않는다. 위치에서부터 근무 시간, 규제적 표준에 이르기까지 남자들의 생활을 기준으로 설계되어왔지만 그것은 더이상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 우리는 여자들이 하는 일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부록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해야 한다. 여자들의 일은, 유급이든 무급이든, 우리 사회와 경제의 근간이다. 이제는 그 가치를 인정할 때가 되었다.    p.186

 

대부분 회사의 사무실 온도는 여성에게 적당한 온도보다 평균 5도가 낮다고 한다. 그래서 한여름에 남자들은 반팔을 입고 돌아다니지만, 여자들은 가디건이나 담요로 몸을 싸고 있게 된다. 이유는 표준 사무실 온도를 결정하는 공식이 1960년대에 40세 70kg 남자의 기초대사율을 기준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여자'가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는 문제의 일부에 불과하다. 피아노 표준 건반의 한 옥타브 간격, 휴대폰 사이즈, 자동차 설계, 의료, 일자리 등 모든 영역에서 여자의 데이터는 수집되지 않았다. 남성이 보편이라는 추정은 젠더 데이터 공백의 직접적인 결과이다. 이 책은 젠더 데이터 공백이 그런대로 평범하게 사는 여자를 어떻게 해치는지에 대한 폭로이자, 우리가 인류의 반에 대해 기록하지 않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자들이 투명 인간이 되어 버린 이유, 인류의 절반인 여자들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세워진 세상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영국의 여성운동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는 기술과 노동, 의료, 도시계획, 경제, 정치, 재난 상황 등 여러 영역에 걸쳐 여성에 관한 데이터 공백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과 차별의 단면을 면밀하게 보여준다. 다수의 사례와 통계, 정확한 수치로 세상이 여자를 지워버렸다는 명백한 증거들을 보고 있자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매년 수백만의 여성들이 복용하는 약에 대해 단 한번도 여성 피험자를 상대로 임상시험을 거친 적이 없다거나, 여성의 심장마비가 오진 받을 가능성이 남성보다 50프로나 높다는 것, 게다가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여자가 중상을 입을 확률이 남자보다 47프로가 높다고 하니 그야말로 오싹해졌다. 우리는 바로 지금 이런 세상 속에서 살아왔고, 또 살아가야 하는 것이니 말이다.

 

 

데이터를 수집할 때 여자가 투명 인간 취급을 당하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여성의 삶을 정의하는 두 번째 주제에서는 여체가 눈에 보인다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 주제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남성의 성폭력,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집계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것을 반영하여 세상을 설계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럼으로써 여성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사실이다. 여성의 생물학적인 몸은 여자가 강간당하는 이유가 아니다. 공공장소를 지나갈 때 여자가 위협당하거나 공격 당하는 이유가 아니다. 그 원인은 성별이 아니라 젠더, 우리가 남체와 여체에 부여하는 사회적 의미다.    p.380~381

 

1975년을 UN이 여성의 해로 선포하고 나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아이슬란드의 여성단체들이 모여 파업이라는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그리하여 그 해 10월 24일에 아이슬란드의 어떤 여자도 일하지 않는, 휴일을 가지게 된다. 유급 노동은 물론이고, 요리, 청소, 아이 돌봄까지도.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 여자들이 매일 해왔던 보이지 않는 노동이 사라지면 어떻게 되는지 남자들이 스스로 깨닫게 하자는 취지였다. 아이슬란드 여성의 90프로가 참여했던 그 파업은 어떻게 되었을까. 저자는 이 사례를 소개하면서 '일하지 않는 여자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일을 하고도 급여를 받지 못하는 여자가 존재할 뿐이다'라고 말한다. 전 세계적으로 여자들은 무급 노동의 75프로를 담당하고 있다. 여자들은 항상 일주일에 40시간 넘게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일"에 대해 얘기할 때 여성의 무급 노동에 대해서는 잊어버리는 걸까.

 

이 책은 데이터 관점에서 성차별 메커니즘을 밝히고 젠더 문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여성을 향한 보이지 않는 차별에 대해 대부분 어느 정도 인지는 하고 있지만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거나, 정확한 수치로서 파악하고 있는 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이를 이러한 보이지 않는 차별을 증명할 수 있는 사실근거들을 한데 모아서 구체적이고 검증된 데이터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 이 책은 세상의 모든 여성들에게 '팩트라는 강력한 무기'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세계 곳곳의 여성들에게 이 놀라운 무기를 쥐어주고 싶다. 여성들이 더 이상 투명 인간 취급을 당하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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