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 철도의 밤 인생그림책 5
미야자와 겐지 원작, 후지시로 세이지 글.그림, 엄혜숙 옮김 / 길벗어린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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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반니는 정신없이 내달렸어요. 그리고 곧장 반대쪽 어두운 언덕 위로 올라갔어요.
하늘의 은하수가 희끄무레하게 남쪽부터 북쪽까지 닿아 있는 것이 보였어요. 꿈속에서도 향기가 날 것 같은 초롱꽃과 들국화가 그 근처에 온통 피어 있었어요.
‘나는 왜 이렇게 쓸쓸한 기분이 드는 걸까. 할 수만 있다면 어딘가 먼 곳으로 가고 싶어……. 그런데 캄파넬라가 함께라면 얼마나 좋을까…….’

 

어린 시절에 어렴풋하게 밤하늘을 가르는 기차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을 본 기억이 아직도 난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선명한 이미지가 머릿속에 각인이라도 된 것처럼 여전히 생생하다. 이후에 조금 더 자랐을 때 <은하철도 999>라는 작품을 제대로 보게 되었지만, 그 만화의 원작이 따로 있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일본 최초의 SF 작가인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 <은하철도의 밤>이 원작이라고 한다. 내용상으로는 만화와 동화가 상당히 다르지만, 가장 중요한 소재인 우주를 가로지르는 기차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화가 탄생했다고 하니 말이다.

 

 

특히나 이번에 만난 작품은 그냥 동화책이 아니라 그림책이라 더욱 인상적이었다. 빛과 그림자를 이용한 ‘그림자 회화’ 카게에로 일본 화단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점하고 있는 후지시로 세이지의 그림자그림은 정말 너무 아름다웠다. 동화적인 상상력의 세계’를 환상적으로 표현해내는 그림자그림은 환상적인 색감과 그림자로 각각의 장면들이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졌다. 이 그림책은 후지시로 세이지가 그림만 그린 게 아니라, 글도 고쳐 썼기 때문에 원작 동화와 완전히 같지는 않다. 원작에서 빠진 부분도 있고, 원작에 없는 부분이 추가된 것도 있어 동화로 원작을 만났던 이들에게도 특별한 시간을 선사할 것이다.

 

 

덜컹, 덜컹덜컹. 기차는 찬란하게 파란빛으로 반짝이는 강가를 힘차게 나아갔어요. 올리브 숲 위로 이따금씩 공작새가 휙휙 닫ㄹ리는 모습도 보였어요. 날개를 접었다 펼 때마다 드문드문 푸른빛이 반사되었지요. 은하수에서 검게 반질거리는 머리를 한 돌고래가 튀어나오더니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보였어요... 수정으로 만든 것 같은 투명한 작은 궁전이 구름을 타고 남색 하늘 가운데에 떠 있었어요.

 

이 날은 일 년에 한 번 있는 은하 축제날인 켄타우루스 축제날이었다. 수업이 끝나자 친구들은 밤에 있을 은하 축제에 갈 준비를 하지만, 인쇄소에서 일을 해야 하는 조반니는 그들이 마냥 부럽다. 조반니의 아버지는 바다로 돈을 벌러 가서는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고 있었고, 어머니는 아파서 줄곧 누워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학교를 마치면 언제나 마을의 인쇄소로 일을 하러 다녀야 했다. 조반니는 겨우 일을 마치고 부랴부랴 거리로 나서지만, 반 친구들은 여느 때처럼 돌아오지 않는 조반니의 아버지에 대해서 놀려 댄다. 슬퍼진 조반니는 정신 없이 내달려 반대쪽 어두운 언덕 위로 올라가고, 그곳에서 특별한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하늘이 수천 수만 빛의 알갱이로 반짝반짝 계속 빛이 났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은하 철도를 달리는 기차에 올라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앞자리에 앉아 있는 캄파넬라를 발견한다. 조반니는 캄파넬라와 함께 기차를 타고 이곳 저곳을 다니며, 여러 사람들과 신비로운 풍경들을 경험하게 된다. 텅 빈 보라색 하늘에서 눈 내리는 것처럼 내려오는 수많은 백로, 올리브 숲 위로 휙휙 달리는 공작새, 지평선 끝까지 이어진 아름다운 옥수수 밭 등등.. 조반니가 보고 느끼는 감정들이 매혹적인 그림자그림으로 눈에 보일 듯, 손에 잡힐 듯 그려진다. 이번 작품은 아이와 어른이 함께 즐기는, 길벗어린이의 '인생 그림책’ 시리즈 그 다섯 번째 책이다. 아름다운 그림이 눈을 사로잡고, 환상적인 묘사가 우리를 은하 철도를 달리는 기차 속으로 데려간다. 아이와 함께 읽어도 좋을 것 같고, 어른이 읽기에도 너무 힐링이 되는 특별한 그림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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