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떡볶이로부터 - 떡볶이 소설집
김동식 외 지음 / 수오서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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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에서는요, 골목 냄새가 나요. 골목 냄새가 뭐냐면, 담이 낮은 집들이 쭉 늘어섰고 고무줄놀이도 겨우 할 만큼 좁은 골목들이 막 엉켜 있는데요, 초입에 붉은 포장을 친 떡볶이집이 있거든요. 합판을 몇 장 겹쳐 만든 긴 의자에 올라 앉아 다리를 대롱거리며 백 원짜리 동전 몇 닢을 아줌마에게 건네면 비닐을 씌운 멜라민 접시에 빨간 떡볶이를 가득 담아줘요. 이쑤시개로 밀떡 하나 집어 입에 넣으면 참 달콤도 하지. 종이컵에 부어주는 어묵 국물 후후 불어 무시면 등 뒤로 저녁 바람이 스쳐요.    


 -김서령, '어느 떡볶이 청년의 순정에 대하여' 중에서, p.47

 

생각해보면 떡볶이를 결코 특별히 좋아한 적이 없는 나에게도, 학창 시절 떡볶이와 관련된 추억이 한 두 개쯤은 있다. 학교 앞 분식집에서 친구들과 먹던 떡볶이와 사회인이 되어 일부러 찾아간 떡볶이 맛집의 그것은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른 종류의 음식이었다. 함께 했던 이들도, 사회적인 풍경도 너무도 달랐지만 그 속에 떡볶이라는 음식이 자주 등장했던 걸 보면 한국인에게 떡볶이는 일종의 소울 푸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번에 만난 책은 바로 그 '떡볶이'를 소재로 10명의 작가가 모여 만들어낸 소설집이다. 

 

참여한 10명의 작가는 김동식, 김서령, 김민섭, 김설아, 김의경, 정명섭, 노희준, 차무진, 조영주, 이리나. 소설가도 있고, 소설을 처음 써본 작가도 있고, 전문 번역가도 있으며, 소설가들도 각기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러니 이들 10인의 소설이 각양각색으로 전부 다를 수밖에 없다. 떡볶이도 순한맛, 매운맛, 아주 매운맛으로 맵기가 다 다르고, 들어가는 재료나 양념에 따라 종류가 달라지듯이 말이다.

 

 

인간에게 말이 아니라, 파장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다면. 너희중 99퍼센트는 지금과 같은 삶을 살고 있지 않을 텐데. 그런 것도 모르고 너는 네가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 어쨌거나 사업이 잘 되었으니까. 무서울 정도로 번창하고 있었으니까.
‘사랑이 어딨어. 다 뇌의 착각이지.’
네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야. 그런데 무서운 얘기 해줄까? 사랑이 뇌의 착각이면, 삶도 통째로 착각이야. 어차피 다 착각인데, 왜 사랑만 착각이라고 말한 거였을까 너는?


-노희준, '떡볶이 초끈이론' 중에서, p.178

 

하교길에 사먹는 500원짜리 컵떡볶이의 떡볶이 개수가 늘 자신보다 친구의 것이 하나가 더 많은 것이 불만이었던 주인공이 고민 끝에 세우는 계획이 귀엽게 펼쳐졌던 <컵떡볶이의 비밀>이 수록된 첫 작품이다. 그래서 가볍고, 아기자기한 작품들이 이어질 거라고 예상했는데, 바로 다음 작품 <어느 떡볶이 청년의 순정에 대하여>를 읽으며 눈물이 핑 돌았다. 이건 너무 현실에서 벌어질 법한 이야기였고, 여성이라면 특히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초반에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 나가다 후반부에 갑작스럽게 펼쳐지는 이야기 전개에 나 역시 주인공인 한수정 대리처럼 왜 미리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이렇게 될 줄 알았어야 했는데 싶은 마음에 눈시울이 붉어지고 말았다. 게다가 작품 뒤에 이어지는 작가의 말에서 또 한번 울컥 감정이 올라오고 만다. 부디 현실에서 또 다른 한수정 대리가 더 이상 생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기분이 가라앉았지만, 이 소설집에 무거운 작품만 있는 것은 아니다.

 

떡볶이가 되어 세상을 살아본다면 어떨까에서 시작한 전지적 떡볶이 시점의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미래에서 과거로 온 마약 떡볶이 때문에 칼부림이 일어나고, 좀비가 창궐한 세상에서 떡볶이가 도전이자 희망이 되기도 한다. 씁쓸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작품도 있고, 그 시절 추억에 잠기게 만드는 작품도 있고, 60대 여성의 떡볶이 복수극도 있고, 떡볶이 한 그릇에 위로를 받는 청춘의 이야기도 있다. 그야말로 '개성 넘치는 10명의 작가가 준비한 100% 수제 떡볶이 소설집'이라는 호칭에 맞게, 다양한 맛을 가진 떡볶이의 온갖 희로애락을 담고 있는 듯한 이야기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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