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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한 날들의 철학 - 과도기의 무한한 가능성을 탐색하는 아름다운 지적 여정
나탈리 크납 지음, 유영미 옮김 / 어크로스 / 2016년 3월
평점 :
삶의 모든 시기는 저만의 가치가 있다. 그것은 미래의 결과로 측정되지 않으며, 우리가 이 순간들에 삶이 우리에게 예비해준 것을 포착하는가, 그것을 우리에게 맞게 변화시켜서 다시금 내주는가가 중요하다. 아이가 아이인 것은 성공적인 직장인이나 훌륭한 음악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다. 아이로 세상을 경험하고 세상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다... 아이는 우리를 밝아지게 한다. 아이들의 웃음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황량할까. p.32
과도기란 누구나 겪는 과정이면서,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시기이다. 내가 잘 알던 삶에서 낯선 세계로 발을 내딛을 때, 익숙했던 것으로부터 새로운 것으로 변화를 겪게 될 때 우리는 긴장하고 불안해한다. 이 시기를 어떻게 지나가야 할 지,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모르기 때문이다. 독일의 철학자 나탈리 크납은 '과도기가 새로움을 동반하는 창조적인 시기'라고 말한다. 이 책은 과도기에 대한 깊은 탐색과 빛나는 통찰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창조적인 과도기를 보내기 위해 어떤 조건과 전제가 필요할까. 저자는 이 책에서 공간적, 계절적 변화에 대처하는 자연의 능력을 보여주며 그 어떤 어두운 때에도 희망을 품는 것이 합당한 일임을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인간의 탄생에서 사춘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며 우리가 겪게 되는 불확실한 시기들이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삶의 모든 시기는 바로 그 순간에만 취할 수 있는 특별한 가능성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병에 걸렸을 때, 계획이 빗나갈 때, 또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눈앞이 캄캄할 때, 그렇게 인생길이 생각과 다르게 흘러갈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어린 시절의 경험에 가까워진다. 그리고, 이러한 존재의 순간, 삶은 새로워진다.
위기의 시기, 살아 있음을 향한 동경은 고통 또는 공허감으로 느껴지고 때로는 중독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고통은 우리에게 뭔가가 맞지 않는다고 말해주고, 공허감은 뭔가가 잘못되었다고 신호를 보내준다... 철학자 아리아드네 폰 시라흐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모든 것은 자신의 자아와 욕구를 넘어서는 것들이다"라고 말한다. 공동체, 모험, 열정, 헌신, 용기, 사랑. "그냥 경직된 채 여기서 모든 것이 어떻게 나빠져가고 있는지를 응시하는 대신, 지켜야 할 것들은 지켜내야 한다." p.341
'혼란의 한가운데에서도 아름다운 순간들이 있다.' 바로 이런 책을 만나는 순간이 아닐까.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탈리 크납이라는 저자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저자인 나탈리 크납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독일 철학자인데, 현재 독일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철학자 중 한 명이라고 한다. 그동안 철학의 역사나 이론, 그 외에 철학을 다루고 있는 책들을 꽤 읽어 왔지만, 이렇게 재미있고, 공감되고, 우아한 철학 책은 처음이다. 철학을 이런 방식으로 소개할 수도 있구나 라는 놀라운 깨달음과 삶에서 마주하게 되는 매 순간 철학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이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되는지 알게 되어 위로 받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이 책은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을 소개하며 그들의 삶에서 과도기적 순간들을 읽어 내고, 존 윌리엄스의 소설《스토너》, 뮈리엘 바르베리의 《고슴도치의 우아함》, 미하엘 엔데의 《모모》 등 문학작품을 통해서도 과도기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어 누구라도 쉽고 재미있게 철학적 사고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우리는 '개인적인 변화의 시기와 사회적인 변화의 시기가 구조적으로 비슷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각자 나름의 삶에서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겠지만, 지금은 모두가 함께 극복해 나아가야 하는 사회적인 위기 앞에 서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코로나 사태라는 대미문의 팬데믹으로 문명의 근간이 흔들리는 요즘이니 말이다. 이 책은 '이러한 불안한 시기들이 우리의 인생에 주는 의미를 깨닫고 이런 시기가 우리 인생에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 시기들을 다른 태도로 보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오래 전에 출간된 책이지만, 지금 같은 불확실한 위기의 시대에 정말 딱 필요한 책이 아닐까 싶다. '행복과 절망이 종종 서로 한 뼘 거리에 있음'을 알려주는, 너무도 아름다운 책이었다. 과도기를 인생 중에 만나는 시적인 지대라고 표현하는 저자의 말처럼, 이러한 시기를 불안하고, 불안정한 시기가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시적인 시간이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도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의 질은 무척이나 달라질 테니 말이다. 이 책이 '우리 시대의 어두운 구석을 비추는 데 도움이 되는 수단'이 되어 줄 거라고 생각한다. 과도기를 창조적 전환기로 만들어내고 싶다면, 정신적 면역력을 키우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