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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미래를 찾는 여행, 타이베이 - 대만의 밀레니얼 세대가 이끄는 서점과 동아시아 출판의 미래 ㅣ 책의 미래를 찾는 여행
우치누마 신타로.아야메 요시노부 지음, 이현욱 옮김, 박주은 감수 / 컴인 / 2020년 5월
평점 :
다시 독립서점이 늘어나는 건 무척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시장이 커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작더라도 내가 사는 동네에 서점이 있으면 멀리 가지 않아도 책을 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다만 젊은 사람들이 이상을 가지고 서점을 시작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현실적으로 과연 수익을 내면서 운영을 할 수 있을지, 서점을 계속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어요.... 서점 경영이 어렵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을 거예요. 저 역시도 항상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 같은 기분이죠. 그럼에도 서점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요. p.30
몇 년 전 일본을 대표하는 북 디렉터와 여러 라이프스타일 베스트셀러를 기획한 편집자인 저자는 도서 출간 기념 강연 차 한국을 방문했다가 유례없는 동네 서점 붐과 독립출판물의 인기를 만나고는 서울에서 '책의 미래를 찾는 여행'을 기획한다. 그렇게 북디렉터 우치누마 신타로와 편집자 아야메 요시노부는 서울을 대표하는 여러 서점과 서점인, 출판인 등을 직접 만나 취재하고 인터뷰한 내용을 엮어 《책의 미래를 찾는 여행, 서울》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한국의 서울에서 시작된 ‘책의 미래를 찾는 여행’, 이번에는 대만 타이베이를 찾아갔다. 이들은 7앨 동안 20곳 이상의 독립서점과 독립출판사를 방문했고, 타이베이의 출판계에서 '관광'을 훌쩍 뛰어넘는 어떤 '움직임'을 발견하게 된다. 타이베이 역시 출판업의 어려운 상황은 마찬가지였고, 1980년대생을 중심으로 한 젊은 세대가 자신들의 힘으로 서점이나 출판사를 시작한다는 점도 비슷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새로운 책방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독립 출판 시장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타이베이의 풍경은 서울과 닮은 점이 많아 더욱 흥미로웠다.
각각의 독자에게는 각각의 구매 스타일이 있기 때문에 온라인에서 사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오프라인 서점에 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책을 단순한 상품으로 유통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독서를 습관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콘텐츠를 개발하는 거예요. 그래야 출판 산업이 장기간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것이 저희의 중요한 목표예요... 이 활동도 직접적으로 매출에 도움이 되는 건 아니지만 독자 육성과 온라인 서점의 신뢰 구축을 위해서 앞날을 생각하면서 열심히 하고 있어요. p.135
이 책은 지금 타이베이 출판 문화의 최전선에 있는 젊은 출판인 31명을 찾아가 인터뷰하고 취재한 내용을 담고 있다. 아트, 디자인 계열의 책과 잡화가 세련된 공간에 진열되어 있는 복합 문화 공간을 지향하는 콘센트 서점 '폰딩', 라이프스타일 디자인 잡지를 바탕으로 새로운 공간 큐레이션을 제안하는 '샤오르쯔', 전 뉴스캐스터가 운영하며 대담과 강연 등을 인터넷 생방송으로 하고 있는 '파랑새서점', 음악을 하는 동료들과 시작한 힙한 셀렉트숍 '웨이팅룸', 온라인 서점으로는 대만 최대 규모이며, 독자적인 독서 사이트도 운영하는 '보커라이', 츠타야 서점이 영감을 받은 것으로도 유명한 '청핀서점', 대만에서 가장 유명한 독립출판사 '콤마북스' 등 현재 출판과 콘텐츠 분야에서 다양한 실험과 시도를 거듭하고 있는 대만의 독립서점들과 젊은 출판인들을 소개하고 있다.
무엇보다 저자인 두 사람이 일본에서 '책에 관해서'라면 누구보다도 뛰어난 현직 출판인이자 전문가라서 질문 자체도 매우 날카롭고 시의성이 있어서 책과 서점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관심 있게 읽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들이 '지금 현재'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출판 산업이 장기간 이어질 수 있는 '지속성'에 가치를 두고 있다는 점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종이책의 생산량이 점차 줄어들고 있고, 다양한 플랫폼의 등장으로 인해 사람들은 새로운 콘텐츠와 정보를 책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는 경우가 많은데, 타이베이의 출판인들은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자신만의 길을 모색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당장 직접적으로 매출이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으로 책과 관련된 미래를 그려나가고 있어 인상적이었다.
서울의 독립서점들은 주인의 취향에 따라 책이 진열되고, 뚜렷한 테마를 가지고 있어 더욱 매력적인 곳들이 많다. 요즘엔 지방에도 아기자기한 색깔을 가지고 있는 개성 있는 독립서점들도 눈에 뛴다. 거기다 강좌나 사인회, 낭동회 등 다양한 책과 관련된 부가 서비스로 차별화를 두고 있어 독자들의 발걸음을 이끈다. 그리고 출판사들이 앞장서서 서점들과 연계해 독립서점에서만 판매하는 책이나 그곳에서만 받을 수 있는 사은품 등을 제작하고 있기도 한다. 덕분에 좋아하는 작가의 책은 온라인에서 한 번, 오프라인에서 또 한 번 사게 되는데, 한 권의 책을 두 가지 버전의 표지로 만나는 일 또한 책을 사랑하는 독자로서 설레는 일이다. 서울에 이어, 타이베이로 떠난 '책의 미래를 찾는 여행'은 새로운 책의 미래와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들어 주었다. 서울, 도쿄, 타이베이를 넘어 동아시아 출판 시장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하는 이 시리즈가 앞으로 또 어떤 나라로 향하게 될 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