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 특별 합본판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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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참모습을 두고 그것을 '삶의 진실'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가능하다. '내가 그리는 삶의 참모습'은 바로 '내 삶의 진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실은 아름답다는데, 삶의 진실은 어떤가? 아름다운가? 그것은 아름다운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늘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진실은 우리 손가락을 씀벅 베어버리는 칼날 같다. 진실이란 참으로 무시무시한 것이다. 육안으로는 진실을 보아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고대 신화는 꾸준하게 우리를 가르친다.    p.349

 

2000년,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의 첫 권이 출간되고 나서 그야말로 그리스 로마 신화 열풍이 불었다. 먼 나라의 옛이야기에 지나지 않던 그리스 로마 신화가 국민 필수 교양으로 자리잡고, 만화와 공연, 전시로 확장되기까지 신화 열풍의 중심에 이 책이 있었으니, '국민 신화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번에 첫 출간 20주년을 기념하고 이윤기 선생의 타계 10주기를 기리기 위해, 다섯 권 시리즈를 한 권으로 묶은 특별 합본판이 출간되었다. 이번 특별판은 시리즈 다섯 권의 텍스트를 가감 없이 담고, 기존 책에서 선별하고 새롭게 추가한 도판 자료 220여 점을 수록한, 1200쪽의 두툼한 양장본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발생해 로마 제국으로 이어지는 신화인 그리스 로마 신화는 고대인의 상상 세계가 만들어 낸 이야기지만 수천 년이 지난 현대에도 ‘살아 있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진다. 철학자와 역사가에게 영향을 주었고, 미술과 문학의 중요한 주제가 되었으며, 과학기술 분야의 용어가 될 정도로 서양 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문학, 역사학, 인류학, 심리학 등 인문학 전반을 포괄하는 인류 문화의 원형이라는 점 때문에 이를 다루고 있는 책들도 정말 너무 많다. 신화의 세계를 처음 만나게 되는 경우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고민이 될 정도로 말이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가장 우리의 정서와 잘 맞고,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 쓴 버전이라 누구나 친근하게, 쉽고, 재미있게 신화의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저자가 직접 신화의 무대였던 그리스를 비롯해 유럽 곳곳의 유적지와 박물관을 누비며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찍어온 사진이 거의 2만 장에 달했을 정도이니,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고스란히 독자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고자 했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신화를 믿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믿는다고 대답함으로써 많은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들고는 한다. 나는 신화를 믿는다. 신화를 믿는다고 해서 대리석으로 아름다운 여자를 갂아놓고 내 색시가 되게 해달라고 아프로디테에게 비는 식으로 믿는 것은 아니다. 내가 믿는 것은 신화의 진실이다. 퓌그말리온의 진실과 그가 기울이는 정성이다. '퓌그말리온 효과'라는 말은, 스스로를 돌아보되 희망과 기대를 버리지 않을 경우에 나타나는 효과를 뜻하는 말로 지금도 줄기차게 쓰이고 있다.   p.514

 

특별 합본판은 그 압도적인 분량에서 읽기도 전부터 기가 죽게 마련인데, 사실 다섯 권의 분량을 하나씩 읽기 시작하면 그리 어려운 일만도 아니다. 게다가 탁월한 이야기꾼의 입담에 나도 모르게 푹 빠져들어 페이지를 한 장씩 넘기기 시작하면 멈출 새가 없는 것도 사실이고 말이다. 1권은 '신화를 이해하는 12가지 열쇠'라는 타이틀로 신화 이해와 해석에 필요한 열두 개의 키워드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저자는 신화 이야기들을 현대적인 맥락에서 해석, 국내 정서에 맞춰 서술해 가장 이해하기 쉽고도, 흥미진진한 그리스 로마 신화를 만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2권은 '사랑의 테마로 읽는 신화의 12가지 열쇠'로 잔혹하고 무자비한 신화 시대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오늘날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풀어낸다. 신화에 등장하는 성과 사랑에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들은 대부분 파렴치하고, 비열하고, 금기를 훌쩍 뛰어 넘고, 엽기적이라고 할 만큼 놀랍다. 근친상간, 트랜스젠더, 자기애, 매춘 등 어떠한 도덕적 관념으로도 재단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 꼬장꼬장한 도덕군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바로 그 '조금도 윤리적이지 않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음란한' 신화 속 사랑이야기가 펼쳐진다.

 

 

3권 '신들의 마음을 여는 12가지 열쇠'에서는  '신의 마음을 여는 방법'을 주제로 '신들이 좋아한 인간'과 '신들이 싫어한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그렇다면 ‘호모 테오필로스(신들이 좋아하는 인간)’과 ‘호모 테오미세토스(신들이 싫어하는 인간)’을 보여주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신화는 신들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인간이 없으면 신화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나 3권이 흥미로운 것은 '신화가 가지는 서사의 힘'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어서인데, 정말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이어지는 느낌이라 굉장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4권에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영웅 '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헤라클레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영웅이다. 헤라클레스 이야기에는 그리스 신화와 서구 문화의 수수께끼를 여는 황금 열쇠가 숨어 있는데, 그만큼 헤라클레스 신화는 방대한 그리스 신화의 축소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마지막 5권은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으로 이올코스의 왕좌를 되찾기 위해 모험을 감행하는 이아손과 아르고 원정대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인터넷 서점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검색하면, 무려 구백 권이 넘는 책들이 나온다. 그 중에서 판매량이 가장 많은 것이 바로 이윤기의 책이라는 점이 시사하는 바는 명백하다. 압도적으로 매혹적이고, 무엇보다 소설처럼 재미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간 이해의 열쇠가 신화라면 신화 이해의 열쇠는 바로 '상상력'이라고 말한다. 영웅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로 미궁 진입과 미궁 탈출에 성공했듯이, 우리는 신화라는 미궁 속에서 그 상징적인 의미들을 알아내기 위해 나만의 아리아드네를 만나야 한다. 이 책은 그러한 상상력의 빗장을 풀고, 그 문을 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가이드이기도 하다. 이번 기회에 너무도 아름다운 양장본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시작해보자. 신화 이야기들을 현대적인 맥락에서 해석, 국내 정서에 맞춰 서술해 가장 이해하기 쉽고도, 흥미진진한 그리스 로마 신화를 만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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