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이사이드 클럽 스토리콜렉터 83
레이철 헹 지음, 김은영 옮김 / 북로드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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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를 넘겼다. 두려움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감시 대상자가 됐다. 하지만 이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녀 정도면 감시대상자 명단에는 이름이 오르지 않는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 그녀가 아는 사람들 중에는 없지만, 상습적으로 이혼하는 사람들이나 실직자들 또는 인지능력이 손상된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일이었다. 생명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 영생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일이었다. 레아는 훌륭한 라이퍼였다. 그녀는 헬스핀에서 일했다. 그리고 누구보다 생명을 소중히 여겨왔다. 정부 당국도 이 사실을 갈고 있지 않은가?     p.28

 

'영원한 삶'이란 인류의 오랜 숙원이지만, 사실 그것은 결코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우리의 욕망이다. 하지만 공상 과학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영생에의 꿈은 실제 현실에서 의료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평균 수명을 높이는 것으로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70년대만 하더라도 63세 안팎이던 인간의 평균 수명은 현재 80세 안팎이지만, 점차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100세 시대'라는 말로 미리 노후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작품은 거기서 더 나아가 평균 수명이 300세에 이른 근미래의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제1의 물결이라 칭해지는 과거에 인간은 150세 가까이 살았고, 제2의 물결이라 하는 현재는 300세 이상 살 수 있었다. 그리고 곧 제3의 물결이 시작되면 인간은 영원불멸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인 걸까.

 

미래의 뉴욕 시민들은 태어나자마자 수명을 알리는 숫자를 부여 받는다. 좋은 유전자를 타고난 신생아는 ‘라이퍼’로 분류되어 몇백 년의 삶을 살기 위한 정부의 온갖 지원 혜택을 받는다. 반면, 상대적으로 열등한 유전자는 '비라이퍼'로 분류되어 정부의 관심으로부터 소외된 채 병에 걸리거나 노화되어 일찍 삶을 마감하게 된다. 수명 연장자로 분류된 라이퍼들은 정부의 영생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가능한 한 오래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하며 영원한 삶을 살기를 희망한다. 주인공인 레아 기리노 역시 완벽한 유전자를 타고난 라이퍼로 이제 막 100세가 된 참이다. 그녀는 금융사에서 일하며 파격적인 승진을 앞두고 있으며, 고급 아파트에서 완벽한 연인과 멋진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삶이 뒤바뀌는 건 찰나의 순간이었다. 어느 날, 출근길에 88년 전에 사라진 아버지를 발견하고 그 뒤를 쫓다가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는데, 이후 정부의 감시자 명단에 오르게 되면서 완벽했던 일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걸 왜 묻는 거죠?" 그가 물었다. "당신도 명단에서 이름을 없애고 싶어요?"
"아니요." 레아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상관없어요. 하지만 위커버리 모임에 더는 나가고 싶지 않아요."
"생각해봐요." 마누엘이 다시 미소를 지었다. "당신이 모임에 나가지 않으면 그들이 어떻게 할까요? 수명연장 치료를 중단할까요? 당신의 수명을 줄일까요? 아니면 당신을 죽게 내버려둘까요?"     p.278~279

 

회사와 집을 오가며 오직 건강만을 좇는 삶이란 어떨까. 식사로는 정부에서 권장하는 뉴트리팩과 향료가 첨가된 단백질 음료 정도에, 육류와 과일은 금지되었으며, 신체적으로 무리가 갈 수 있는 조깅은 명상으로 대체되었다. 같은 나이의 '라이퍼'들은 생김새는 달랐지만, 키와 근육의 탄력까지 거의 똑같은 체형을 유지했다. 사람들은 상대를 보며 근육과 피부의 상태, 비타민D, 코르티솔 수치 등에만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그들 중에 일부는 정부의 수명유지 시술과 금욕적인 삶에 지치고 환멸을 느껴 비밀리에 모임을 가지기 시작한다. 일명 '수이사이드클럽(SuicideClub)'으로 그들은 라이브 음악 공연을 들으며 동맥경화에 가장 안 좋다는 전통 음식들을 진탕 먹고 마시는 파티를 열어왔다. 인구 감소 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는 정부에서 이렇게 라이퍼들이 영생의 삶을 포기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을 리 없었고, 정부 차원에서 규제를 시작한다. 레아가 정부의 감시자 명단에 오른 것도 그것이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그녀가 일부러 차에 뛰어들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SF 디스토피아 소설이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가능한 한 오래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하며 영원한 삶을 살기를 희망하는 것은 극중 인물들만큼이나 현재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유전자에 따라 영원히 살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해 한 가족 안에서도 누군가는 일찍 죽음을 맞이하고, 누군가는 수명 연장이 가능하다면 어떨까. 수명 연장이 개인의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라 정부의 통제와 억압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말이다. 삶의 양보다는 질이 중요하니, 유한한 삶 속에서 살아 있는 순간을 마음껏 즐겨야 한다는 쪽과 완벽한 두뇌와 외모를 갖추고 영원히 살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쪽, 당신은 어떤 것을 선택하겠는가.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삶과 죽음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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