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 키스 링컨 라임 시리즈 12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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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마땅치 않은 것은 링컨 라임의 타운하우스가 아니라 이곳에서 수사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젠장.
라임이 경찰 자문 업무에서 손을 뗐다는 사실이 불만이었다. 아주. 개인적으로 색스는 서로 주고받는 자극, 자아의 부딪힘, 그런 상태에서 흘러나오는 창조력이 그리웠다. 그가 일을 그만둔 뒤로 색스의 생활은 마치 온라인 대학에서 공부하는 것 같았다. 정보는 같지만, 그 정보를 두뇌 안에 집적하는 과정이 대폭 축소되었다.    p.84~85

 

아멜리아 색스는 인간 군상 수만 명이 득실거리는 도시 한복판에서, 우연히 인상착의가 용의자와 유사한 사람을 발견하게 된다. 185센티미터가 넘는 키에 몸무게는 60, 70킬로그램이 채 되지 않을 것 같은 체형의 호리호리한 남자는 클럽 이름을 따서 붙인 수사 명으로 '범인 40'이라 불렸다. 그는 퇴근 후'40도 북쪽'이라는 클럽에 가던 스물아홉 살의 맨해튼 시민이 강도가 든 둔기에 맞아 끔찍하게 사망한 사건의 용의자였다. 색스는 범인의 뒤를 쫓아 5층 건물 쇼핑센터에 들어가며 지원 인력에게 상황을 알린다. 스타벅스 매장에 들어간 범인을 체포하기 위해 지원 인력과 함께 준비 중이던 색스는 갑작스럽게 날카로운 비명 소리를 듣게 된다. 목소리는 에스컬레이터 꼭대기에서 들려오고 있었고, 한 남자가 에스컬레이터의 열린 패널 속으로 몸이 떨어져 허리가 절반으로 잘리고 피투성이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색스는 남자를 구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로 향하지만 피해자는 출혈 과다로 사망하고, 그 혼란을 틈타 범인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만다.

 

 

문제는 사회다. 그들은 소비하고, 소비하고, 소비하려고 하지만,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한다. 우리는 물건을 수집하고, 물건을 수집하는 데 집중한다. 달리 말해 저녁식사는 사람을 위한 것이 ‘되어야만’ 하고, 가족들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모여서 소통하는 자리여야 한다. 최고의 오븐, 최고의 만능 조리기구, 최고의 블렌더, 최고의 커피메이커를 뽐내는 자리가 아니다. 우리는 이런 물건들에 집중한다, 친구가 아니라!! 가족이 아니라.    p.562

 

한편, 라임은 이제 더 이상 뉴욕 시경을 위해 일하지 않는 상태로 등장한다. 한 달 전 라임은 사건 수사 업무를 정리하고 형사행정학교 교수직에 지원했다. 법과학 수업 교수로서의 라임 역시 너무도 훌륭하지만, 색스는 그와 함께 수사를 할 수 없는 점이 매 순간 아쉽기만 하다. 라임이 수사에서 손을 떼자 함께 브레인스토밍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라임과 색스가 함께 하지 않기 때문에, 기존의 시리즈와는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생성된다. 라임의 수업을 듣는 제자인 줄리엣 아처가 그의 조수를 자처하며 비공식 인턴으로 등장하게 되는데, 그녀 또한 라임처럼 휠체어를 몰고 다니는 데다 색스와는 또 다른 명석함으로 라임에게 도움을 죽고 있기 때문이다. 라임과 별개로 범인 40을 추적하는 색스의 수사와 엘리베이터 사건의 배후를 파헤치게 된 라임과 아처의 수사가 별개로 진행되다 서로 교차되는 순간, 법의학 스릴로서의 재미는 정점으로 향하게 된다.

 

링컨 라임 시리즈는 그 동안 굉장히 다양한 소재들로 살인마들을 등장시켜왔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사물인터넷(IoT) 서버를 해킹하여 원격으로 살인을 하는 색다른 범인이 등장한다. 수천 가지 기계, 도구, 냉난방 시스템, 차량, 산업용 제품들에는 소비자가 원격으로 접속할 수 있는 컴퓨터 조종장치가 내장되어 있다. 이런 장치들은 우리의 삶을 훨씬 편하게 만들어 주지만, 제조사가 수집하는 우리의 데이터는 안전한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스마트 시스템이 오작동할 때 부상과 죽음의 위험이 있다는 점이 취약한 부분이다. 이 작품에서 범인은 바로 그 스마트 컨트롤러를 손에 쥐고 엘리베이터, 냉장고, 자동차, 오븐처럼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제품들을 살인 무기처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에서 너무도 친숙하게 사용되고 있는 온갖 스마트 제품이 어느 날 살인 무기로 돌변할 수 있다는 지점이 더욱 현실적인 스릴과 재미를 선사하는 작품이었다.

 

 

오랜 만에 만나게 된 링컨 라임 시리즈 신작이라 정말 설레이는 마음으로 읽었다. 보통 국내 번역이 2년에 한번씩이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링컨과 색스가 처음 만났던 <본 컬렉터> 사건을 변주했던 전작 <스킨 컬렉터> 이후 무려 3년이나 걸렸다. 링컨 라임 시리즈 그 열 두 번째 작품 <스틸 키스>는 표지 색감부터 시선을 사로잡는다. 물론 또 판형이 달라져서 시리즈로서의 통일감은 잃어 버리고 말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신간을 내주는 것만으로도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런데 대체 왜 해리 보슈, 미키 할러, 그리고 링컨 라임 시리즈까지 모두 시리즈 중간에 자꾸 판형과 디자인을 바꾸는 건지 궁금하긴 하다. 이 시리즈는 이번에 나온 'The Steel Kiss (2016)' 이후에도 'The Burial Hour (2017)', 'The Cutting Edge (2018)' 까지 현재 열 네 번째 작품까지 출간되어 있다. 빨리 다 만나보고 싶은데, 국내 번역본을 만나려면 또 시간이 필요하지 싶긴 하다.

 

경찰 애인에게 배신당해 경찰이라는 직업 자체에 환멸을 느끼고 있던 순찰 경관 색스와 사고로 전신마비를 당하고 경찰을 퇴직해 삶을 포기하려던 라임이 인간의 뼈에 집착하는 본 컬렉터 사건을 맡으면서 시리즈가 시작되었던 것이 2009년이니 벌써 까마득하게 오래 전 일이다. 그 이후로 링컨 라임과 색스는 수많은 사건을 겪으면서 연인이 되고, 든든한 동료가 되어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라임의 투덜거림을 다 받아주는 톰과 여전히 신참 같은 매력을 풍기는 론 풀라스키를 비롯해 멜 쿠퍼, 론 셀리토 등 라임의 수사팀들도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더 애정이 느껴져서 마치 살아 숨쉬는 인물들처럼 느껴지는데, 이게 바로 시리즈만의 묘미이기도 할 것이다. 반전에 반전, 거기다 다시 이야기를 완전히 뒤집고, 꼬면서 몇 번의 반전이 거듭되어도, 개연성에 대한 의심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의 탄탄한 플롯을 자랑하는 링컨 라임 시리즈라 매번 신작이 나올 때마다 이번에는 또 어떤 반전을 선보일 것인지 기대하는 재미도 특별하다. 제프리 디버에게 반전의 제왕이라는 수식어 자체는 평범할 수도 있지만, 링컨 라임 시리즈에서 등장하는 반전은 그야말로 기가 막히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감정의 지배를 받지 않는 두뇌형 인간인 링컨 라임과 전직 모델 출신에 직감이 뛰어난 권총 명사수 색스의 활약을 만나 보자. 시리즈가 이미 너무 많이 진행되어 어떤 작품부터 읽어야 할 지 고민이라면, 바로 이 작품부터 시작하면 된다. 대부분의 시리즈들이 그러하듯이, 어떤 작품부터 시작해도 링컨 라임 시리즈만의 매력에 푹 빠질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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