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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의 기술 - 유혹의 시대를 이기는 5가지 삶의 원칙
스벤 브링크만 지음, 강경이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4월
평점 :
어떤 사람은 평생 이 집에서 저 집으로 계속해서 이사를 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안정감과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좋은 일자리를 얻든 이상형의 배우자를 만나든 '정복'의 기쁨이 워낙 빠르게 사라져버려, 더 새롭고 더 나은 일자리나 배우자를 너무도 쉽게 찾아 나서는 사람들도 있다. 행복의 쳇바퀴에 오른 우리는 노상 더 빨리 더 빨리를 외치며 계속해서 쳇바퀴를 달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마치 순간의 쾌락을 계속해서 느끼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투여량을 높이는 마약 중독자처럼 말이다. p.42
<철학이 필요한 순간>에서 대중적이고, 쉬운 철학을 보여 주었던 스벤 브링크만의 신작이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덴마크의 공영방송 라디오 강의 시리즈를 통해 유쾌한 철학 강의로 열광적인 호응을 받은 심리학자이다. 이번 책에서는 헛된 욕망을 물리치고 진정한 행복을 찾는 법을 알려주며 '행복은 인생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는 데 달렸다'고 말하고 있다. 그의 말처럼 우리를 행복으로 인도하는 것이 욕망이 아니라 절제라고 한다면, 행복은 인생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는 데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세상에는 우리의 욕망을 부추기는 것들로 가득하고, 그러한 유혹의 문화가 전반적으로 깔려 있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경험하고, 소유하며, 성취해내는 삶이 모두가 꿈꾸는 이상이 되어 버린 지금, 저자는 오히려 기꺼이 뒤처지고 더 많이 내려놓을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심리학, 철학, 윤리학, 정치학, 미학으로 바라본 절제의 기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스벤 브링크만은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내 마음을 지키는 절제의 원칙을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선택지 줄이기, 진짜 원하는 것 하나만 바라기, 기뻐하고 감사하기, 단순하게 살기, 기쁜 마음으로 뒤처지기이다. 선택지를 줄이는 것은 내 삶의 한계에 대해 깨달을 심리적 준비이기도 한데, 때론 적당히 만족하고 내려 놓을 줄 알 때, 행복이 우리에게 찾아온다는 것이다. 진짜 원하는 것 하나만 바라기는 더 많이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 실존적 이유가 된다. 이것저것 다 원하지 말고 한 가지만 바라야 비로소 정말 가치 있는 것에 마음을 기울이게 될 테니 말이다. 기뻐하고 감사하기는 말만큼 쉽지 않은 일이지만, 어쨌든 중요하다. 이는 경제학이 알지 못하는 인간의 윤리적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인데, 욕망만 좇지 말고, 타인에 대한 배려와 감사도 배워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단순한 것만 원하는 태도가 개인을 위해, 사회를 위해 필요한데, 이는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정치적 결정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일상이 즐거워지는 삶의 미학적 형식으로 기쁜 마음으로 뒤쳐지기가 있다. 항상 새롭지 않아도 괜찮다고, 일상을 반복할 용기를 낼 때 진정한 삶의 기쁨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살지 않은 삶이란 우리가 상상과 예술, 꿈에서 사는 삶을 말한다. 필립스는 우리가 살지 않은 삶이 실제 살아가는 삶보다 중요할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무책임한 현실도피를 옹호하는 말이 아니다. 그와 반대로 우리를 지금 모습으로 만든 것은 바로 우리가 하지 않기로, 기꺼이 놓아버리기로 선택한 것들이라는 말이다... 우리가 하는 것만이 아니라, 기꺼이 놓아버리는 것들 역시 우리라는 사람을 만든다. 무언가를 기꺼이 내려놓을 때, 비로소 삶은 틀을 얻는다. p.89~90
“나는 무엇이든 이겨낼 수 있다. 단 하나, 유혹만 빼고.”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이렇게 선언한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의 눈길과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가능한 한 빨리! 가능한 한 많이!'라며 욕망을 부추기는 것들이 가득하니,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모든 것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매 순간 전전긍긍하며 살 수는 없을 것이다. 혹시 절호의 기회를 놓쳐버리진 않을까, 유행에 뒤처지는 건 아닐까, 나만 소외되진 않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을 내려 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몇 가지를 선택하고, 거기에 지속해서 마음을 기울이는 능력이 필요하다. 저자는 플라톤의 대화편 <고르기아스>에 나온 소크라테스의 표현을 빌려, 헛된 욕망으로 가득한 이들의 마음을 ‘구멍 난 항아리’에 빗댄다. 거기엔 아무리 많은 물을 부어도 결코 안을 채울 수 없다. 세상의 수많은 유혹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우리 욕망을 완벽하게 충족시킬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새롭고 더 많은 걸 바라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고 내려놓는 절제이다. 사회는 우리에게 뒤처지지 말라고, 계속 더 많은 것을 성취하라고 말하지만, 행복의 비결은 오히려 잘 포기하고 기꺼이 뒤처지는 데 있다. 행복이 채우는 게 아니라 비우고 나누는 데서,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만족하는 데서 생기는 의미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적당히 만족함으로써 정말 의미 있는 일에 시간을 쓰는 법,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