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눈
딘 쿤츠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칠판에 글자가 쓰여 있었다.
죽지 않았어
등줄기에 소름이 끼쳤다.
버번을 마시고 나서 혹시 무심결에 여기저기 방황하다가 도로 이 방에 왔던가.....?
아니다.
필름이 끊기지는 않았다. 이 글자를 쓴 건 그녀가 아니었다.    p.39

 

티나 에번스는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던 중에 낯선 이의 차에 탄 그녀의 아들 대니를 본다. 대니는 1년전 의문의 버스 사고로 죽은 그녀의 열두 살 난 아들이다. 그녀는 아직도 외아들을 잃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고, 어쩌면 대니가 그 사고로 죽은 게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보기도 한다. 물론 아들이 죽지 않았다는 생각은 비이성적이었지만, 그녀가 다른 아이를 대니로 착각한 것이 처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최근에 자꾸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아직 치우지 못한 아들의 방에 있던 칠판에 '죽지 않았어'라는 글자가 적혀 있는 게 발견되고, 라디오가 저절로 켜지고, 방 안에 있던 물건들이 저절로 움직이고, 대니가 살려달라고 외치는 악몽을 수시로 꾸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상한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그 공간의 온도가 얼어붙을 정도로 급격히 내려갔다가, 기괴한 증상이 사라지고 나면 다시 정상 기온으로 바뀌곤 했다.

 

이 모든 일들이 대니가 살아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생각한 티나는 대니의 무덤을 열어보기로 한다. 왜냐하면 1년 전 사고 당시, 관계자들이 상태가 나쁘다고 보지 말라고 했기에 아들의 시신을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변호사를 통해 시신 발굴 요청을 하는데,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그녀 주변에 기이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아세요?"
"뭡니까?"
"무덤을 열어보고 싶어요."
"대니의 시신을 발굴하고 싶으십니까?"
"네. 아이 시신을 한 번도 보지 못했으니까요. 그래서 아이가 떠났다는 걸 받아들이기가 이토록 힘든 거예요. 악몽을 꾸는 것도 그래서고요. 시체를 봤다면 아이가 죽었다는 걸 확실히 알았을 테니 대니가 여전히 살아 있을 거란 상상도 하지 않았을 거예요."   p.147~148

 

이 작품은 딘 쿤츠가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리 니콜스'라는 필명으로 40년 전에 썼던 소설 중 하나이다. 그 오래 전에 지금의 '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예견했다고 엄청난 화제가 되고 있으며, 세계 여러 나라에서 역주행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딘 쿤츠는 스티븐 킹과 함께 서스펜스 소설계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며 전세계 5억 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한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그 명성에 비해 국내에서는 그다지 많은 관심을 받지 못했던 작가인데, 이번 작품으로 인해 아마 조금 더 독자들에게 가깝게 다가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재미있는 건 사실 이 작품이 홍보되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코로노19 바이러스를 예견 하거나, 2020년 현재 바이러스가 창궐한 사태를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 작품 속에 그와 관련되어 언급되는 부분은 단 네 줄뿐이다. "그 물질은 우한 외곽에 있는 DNA 재조합 연구소에서 개발되어 ‘우한-400’이라는 이름이 붙었소. 그 연구소에서 만들어진 인공 미생물 중 400번째로 개발된, 독자 생존이 가능한 종이었기 때문이오. (p.435)" 아주 우연히도 극중 바이러스의 이름과 배경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 딱 맞아 떨어진 것이다. 덕분에 1981년 쓰인 소설이 2020년 세계 각국의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놀라운 상황이 만들어졌다. 그러니 만약 이 작품을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재난 소설이라고 생각했다면 읽으면서 예상과는 다른 전개에 당황할 수도 있겠다. 이 작품은 초자연적인 현상이 주요 소재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일종의 공포소설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 작품은 그의 후기작에서 나타나는 '강렬함이라든가 인물의 깊이, 복잡한 주제나 전개 방식도 없고, 목이 바짝 타오르는 공포감도 없는' 자신의 초기작이라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소설을 읽는 단순한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해서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가 자연스레 빨라지고, 인물이 겪고 있는 공포가 고스란히 느껴져서 함께 오싹해지며, 스릴과 유머, 매력적인 캐릭터와 감동까지 담고 있는 작품이라 누구라도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현대의 스릴러 작품들과는 다르게, 마치 고전 공포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읽게 되는 이 작품은 색다른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