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휴식과 이완의 해
오테사 모시페그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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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연약하고 찰나이며 사람은 물론 조심하며 살아야 하지만, 나는 온종일 자는 생활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죽음을 감수할 참이었다. 그리고 나는 영리하니까, 약 때문에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면 미리 감지할 거라고 판단했다. 심장이 멈추거나, 혹은 뇌가 터지든 출혈을 일으키든 7층 창문 밖으로 떨어지라고 날 조종하든, 그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예고성 악몽을 꾸기 시작할 거라고. 온종일 잘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이 잘 돌아갈 거라고 믿었다.    p.41~42

 

사람들이 소설이라는 허구의 이야기를 읽는 이유가 뭘까. 그리고 그 이야기가 재미있다고 느껴지는 순간은 어떤 때일까. 아마도 극중 인물에게 '감정 이입'해서 '공감'하거나 '위로'받거나 혹은 '이해'하고 싶어졌을 때일 것이다. 그래서 비호감인 주인공이 등장하는 작품의 경우, 독자 입장에서 그 작품을 좋아하기란 매우 쉬운 일이 아니다. 오테사 모시페그의 두 작품, <아일린>과 <내 휴식과 이완의 해> 모두 '비호감 여자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스물 넷의 아일린은 옷차림도 보수적이었고 겉으론 조용하며 누구에게도 싫다고 말하지 못했지만, 항상 격분했고 부글부글 끓었으며 자기혐오로 똘똘 뭉친 소심한 성격에 야한 상상과 독특한 망상을 즐기는 여성이었다. 자기혐오와 망상으로 점철된 젊은 날을 통과해온 아일린의 삶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전개되었던 <아일린>은 나이든 아일린의 여유와 유머 깃든 통찰이 젊은 아일린의 불균형과 미성숙을 어느 정도 견딜 만 하게 만들어주었던 작품이었다. 그에 비해 <내 휴식과 이완의 해>에는 더 좋아하기 힘든 주인공이 등장한다.

 

스물 여섯의 주인공 ‘나’는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고, 명문대를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직장에서 해고 당했고, 현재는 직업이 없다. 하지만 부모의 유산 덕분에 고급 아파트에서 지냈고, 예금 계좌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이삼 년은 충분히 살 수 있을 만큼 많은 돈이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날씬하고 아름다웠다. 매일같이 지저분하고 잠이 덜 깬 모습으로 돌아다녀도, 일주일에 겨우 한 번 씻고, 머리 빗기도 그만두었고 아파트에서 나가는 일도 드물었다. 모든 공과금은 자동납부로 처리했고, 재산세도 일 년 치를 미리 냈고, 약이 더 필요할 때만 잠깐 외출할 뿐이었다. 온갖 종류의 약을 하루에 열두 알도 넘게 먹었고, 술에 절어 지냈고, 무기력한 게으름뱅이가 되어 가고 있었던 그녀는 1년간 ‘동면’에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동물이 겨울잠을 자는 것처럼, 사람이 일 년 동안 잠을 자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창밖으로 어두워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유리에 낀 먼지를 문질러 닦아내려 했지만 되지 않았다. 먼지가 창 반대쪽에 들러 붙어 있었다. 완전히 헐벗은 나무들이 흐릿한 눈송이들을 배경으로 까맣게 보였다. 이스트강은 잠잠하고 컴컴했다. 퀸스 지역 위로 하늘이 컴컴하고 무거워 보였고, 깜빡이는 노란 불빛의 장막이 끝없이 펼쳐졌다. 하늘에 별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볼 수는 없었다... 저멀리서 사람들은 삶을 살고 즐기고 배우고 돈을 벌고 싸우고 걸어다니고 사랑에 빠졌다가 이별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태어나고 자라고 쓰러져 죽고 있었다.    p.131~132

 

자, 그렇다면 우리의 주인공이 '동면'이라는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현실적으로 구현할 방법은 이렇다. 한 알로 무의식 상태를 사흘간 지속할 수 있는 인페르미테롤이라는 약을 충분히 모은다. 이 약만 있다면 밖에 나가 어떤 일에든 연루될 두려움 없이 중단 없는 잠 속에서 살 수 있었다. 지독한 불면의 고통과 빌어먹을 실패한 인생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가 되는 셈이다. 그녀는 약을 먹고 사흘에 한 번씩 깨어나 달력을 보고 음식을 먹고 물을 마시고 목욕 등등을 하며, 매번 한 시간 동안만 깨어 있을 계획이었다. 그렇게 약에 의지해 몇 달을 통째로 망각 속에 흘려 보내고 나면, 끊임없이 그녀를 괴롭혔던 온갖 기억과 상처, 사람에 대한 혐오와 허무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 작품은 시작부터 비호감 여주인공의 심리와 행동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리고 있어 몰입하기가 쉽지 않다. 여주인공뿐만 아니라 그녀 주변 인물들이 모두 어딘가 뒤틀리고 병적인 면모가 가득해 이상하기 그지 없었다. 각자의 문제에 사로잡혀 자식을 전혀 사랑하지 않았던 부모부터, 유일한 친구인 리바는 욕망과 질투의 화신이고, 전 남자친구인 월가 금융인 트레버는 비뚤어진 성의식을 가졌고, 약을 처방해주는 정신과 의사 닥터 터틀은 윤리 의식이라곤 찾기 힘들만큼 황당한 인물이었다. 그 와중에 주인공은 전 남자친구에게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 이상한 소리를 늘어 놓으며 집착을 해대고, 예쁜 외모임에도 늘 다이어트에 매달리는 유일한 친구 역시 숭배와 질투를 오가며 평범하지 않은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읽는 동안 페이지는 더디게 넘어 가고, 감정 이입이나 공감할만한 대목도 없었지만, 이상하게 어느 순간부터 사회 부적응자처럼 느껴지는 주인공의 어둡고 뒤틀린 면들이 안타깝고 애처롭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녀가 세상과 사람들을 싫어하게 된 것이, 내면이 죽어버린 것처럼 염세와 절망 어린 나날을 보내게 된 것이 어떤 면에서는 당연하다고 느껴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환멸 나는 현실에서 벗어나 잠을 자기로 결심한 것이 단순한 도피가 아니라 다시 시작하기 위한 일종의 출발점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 즈음이면, 부디 그녀가 일 년간 원하는 만큼 자고 나서 새 삶을 살 수 있기를, 과거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그리고 이 휴식과 이완의 해를 통해서 다시 시작할 수 있기를 믿고 싶어지는 것이다. 살아 있는 것이 너무도 끔찍할 때, 당신은 눈을 뜰 것인가, 감을 것인가. 이 작품은 바로 그것에 대한 매력적인 블랙코미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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