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식당 오가와 - 오가와 이토 에세이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지향하는 것은 틈.
시간에도, 공간에도, 인간관계에도 틈을 만들면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생각 없이 살다 보면 물건은 계속 늘어나니 의식해서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필요 없는 물건은 손에 넣지 않는다, 집에 들이지 않는다, 인생에 덧붙이지 않는다, 이런 의식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p.25

 

이 책은 오가와 이토가 <츠바키 문구점>을 집필하던 당시 자신의 블로그에 기록한 1년간의 일기를 담고 있는 에세이이다. 주인공 포포가 이웃들과 일상을 보내며 대필가로서의 가업을 이어가는 모습을 소소하게 그렸던 <츠바키 문구점>과 <반짝반짝 공화국>을 참 따뜻하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아름다운 손편지로 누군가의 간절한 마음을 대신 전해주는 가슴 뭉클한 기적을 보여줬었는데, 포포에게 새로운 가족이 생기고 그들과 사계절을 지내면서 다양한 음식들이 등장해서 더 재미있게 읽었었다.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는 우동, 봄을 농축한 것 같은 상큼한 향의 쑥 삶는 냄새, 식후 산책 길에 먹는 시원하고 달콤한 수제 젤라토의 맛 등등... 음식과 맛에 대한 묘사를 읽으면서 실제 작가도 그런 일상을 보내지 않을까 했었다.

 

이번 에세이에서 그녀의 일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음식들이 소소하지만, 풍요로운 힐링을 전해준다. 추운 날엔 마음까지 뜨끈해지는 그라탕을, 봄이 되면 미나리를 듬뿍 넣은 샤부샤부를, 혼자 있는 밤엔 안주를 곁들여 레드와인을 즐기는 평범한 일상들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내는 보통날의 기적이 펼쳐진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 보면 <츠바키 문구점>의 포포도, <달팽이 식당>의 링고에게도 작가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사실 지금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결단을 내려야 할 일과 마주하고 있다. 평소에는 피해서 지나온 ‘뜻대로 되지 않는 일’. 판단을 잘못하면 앞으로 인생이 장기간에 걸쳐 괴로워질 것 같다. 솔직히 지금도 사라지고 싶을 정도로 괴롭지만. 그러나 이럴 때 가야 할 길의 지표가 되어준 것이 라트비아 십계명과 무히카 씨의 말이다. 어쨌든 나는 건강하고 씩씩하게 살아가고 싶다. 아무리 진흙탕에 발을 담그고 있어도 태양을 향해 나아가는 인생을 살고 싶다. 그걸 깨달아서 너무 좋다.   p.57

 

삶은 유리네를 바싹 구워서 올리브오일을 넉넉히 뿌리고 트뤼프 소금을 살짝 뿌려 만드는 뇨키, 겨울철의 별미인 말린 도미로 만드는 감자 도미 그라탱, 산에서 따온 미나리와 크레송, 땅두릅이 들어간 봄의 샤부샤부, 춘권피에 새우와 연근을 넣고 가늘게 말아서 기름에 튀긴 시가렛, 밤을 통째로 넣고, 청주와 소금으로 간을 한 뒤, 마지막에 참기름을 둘러서 먹는 밤밥, 감자를 오븐에 굽고, 돼지고기를 직접 두드려 다져서 만드는 크로켓 등등.. 가족과 자신을 위해 부지런히 만들고, 먹는 소소한 일상의 풍경들이 그려져 있다. 그런 날들 속에서 오가와 이토는 곧 출간될 책의 교정을 보고, 사인을 잘하기 위해 손글씨 연습도 하고, 대만으로 여행도 다녀오고, 강아지 유리네에게 간식도 주고, 이메일 대신 전용 만년필로 정성 들여 손편지도 쓴다. 그녀는 매해 반년쯤 독일에 체류하는데, 그곳의 생활양식과 문화에 대해서, 그리고 베를린에 대한 애정 가득한 이야기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어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섬세하고 따뜻한 오가와 이토의 소설들처럼, 자신의 일상을 고스란히 그려내고 있는 이 에세이를 통해 느껴지는 감정 또한 작품을 닮은 온기가 가득하다. 사십 대 후반의 작가가 가지고 있는 소녀 감성도 참 예쁘게 느껴져서 읽는 내내 미소 짓게 되고, 삶을 대하는 태도와 사랑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배우게 된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 무언가를 요리하는 것이 그녀가 삶을 사랑하는 방식 중 하나인데, 햇살 가득한 풍경 속에 서 있는 듯한 건강한 느낌이 페이지마다 묻어 있어서 참 좋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