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집 짓기 - 이별의 순간, 아버지와 함께 만든 것
데이비드 기펄스 지음, 서창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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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콜라주다. 명확한 순서 없이 한꺼번에 던져진 생생한 이미지, 그것을 해독하는 일이 보는 사람에게 맡겨진 이미지다. 하지만 그걸 보는 사람은 각각의 이미지가 새로운 이미지를 낳고 새로운 이미지가 또 다른 이미지를 낳으면서 끝없이 잡히지 않고 빠져나간다는 것을 발견할 뿐이다. 미래는 현재를 뚫고 나가는 과거다. 그리고 과거는 그런 일을 결코 멈추지 않는다.    p.185

 

만약 아버지가 곁에 없다면, 혹은 어머니가 먼저 떠나신다면.. 우린 어떡하지? 라는 생각을 한번쯤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우리는 부모 앞에서 아직 어린 자식이고, 언제 어디서나 나를 든든하게 지켜줄 것 같았던 부모가 없다면 세상이 끝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누구나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다. 산다는 것은 다시 말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고, 나이를 먹는 만큼 우리는 죽음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삶뿐 아니라 죽음도 함께 나누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역설'하고 있어 잔잔한 감동을 준다.

 

기자이자 작가인 저자 데이비드 기펄스는 은퇴한 토목 기사인 아버지와 함께 엉뚱하고도 기발한 착상으로 자신의 관을 만드는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그는 아버지의 작업실에서 함께 관을 만드는 3년 여의 시간 동안 어머니와 가장 친한 친구를 암으로 잃고, 마음을 채 추스르기도 전에 이미 두 번의 암 치료를 견뎌낸 아버지에게마저 암이 재발하고 만다. 온통 죽음으로 둘러싸인 날들을 보내며 저자는 죽음과 늙어감, 삶과 인생의 의미를 되돌아본다. 죽음과 늙어감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과 노년의 아버지를 곁에서 지켜보며 삶과 상실에 대한 저자의 사유는 담담하지만, 깊이 있게 펼쳐지고 있어 더 뭉클하게 읽힌다.

 

 

우리는 더듬거리면서 무계획적으로, 무모하게 세상을 알아가고 우리 자신을 알아간다. 하지만 인생을 오래 살다 보니 나는 내가 저지른 실수들을 알아가는 일에, 그리고 그 실수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밝은 빛 속에서 고민에 빠지는 일에 갈수록 커다란 흥미를 느꼈다. 그 실수들에는 정보가 가득했다.    p.342

 

세상에 아무것도, 영원하진 않다. 그래서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이 언젠가는 죽을 거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가까운 이의 죽음, 그리고 나 자신의 죽음 앞에서 의연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죽음이란 이해하기 어렵고, 받아들이기가 만만치 않은 것이니 말이다. 사실 모든 죽음은 갑작스럽다. 그러니 애초에 마음의 준비 같은 건 불가능하다. 영원할 것 같았던 날들에 사실 끝이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 이미 알고 있지만 잊고 싶어 하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그 사건은 늘 불시에 일어나곤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수 년에 걸쳐 사랑하는 사람들을 하나 둘 잃어가는 경험을 한다. 가장 친한 친구와 아버지가 암 진단을 받았고, 다음 해 두 사람이 좋아졌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신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 친구가 죽고, 아버지가 새로운 암 진단을 받게 된다. 자신이 어느덧 중년의 나이가 되고, 부모가 노년이 되었을 때면 누구라도 곁에 있는 사람들의 죽음을 어떤 방식으로든 겪게 마련인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는 언젠가 필연적으로 다가올 죽음이라는 것의 무게를 실감하게 된다.

 

저자가 1095일 동안 아버지의 작업실에서 자신의 관을 만드는 과정은 평범한 일상처럼 반복되면서도, 그 속에 담겨 있는 의미를 이해하기에 먹먹해지는 순간들이 많았다. 과장된 감정 표현이 전혀 없음에도, 오히려 그 담담함과 담백한 어조가 잔잔한 물결처럼 어느 순간 파문을 일으키는 것이다. 여든둘의 나이에 세 번째 암 치료를 받으면서도 아이언 맨처럼 힘있게 누구보다 활기찬 일상을 보내는 저자의 아버지였기에, 더 그랬을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삶의 지혜를 배우고,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에 대해 보고 느낀다. 부모의 죽음과 가장 가까운 날들 앞에서, 부모 없이 살아가야 할 날들에 꼭 필요한 것들을 배우는 자식의 마음이라니.. 언젠가는 나도 겪어야 할 일이기에 그 상실과 슬픔과 외로움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삶과 죽음은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더 가까이에 있다. 이 책을 통해서 '죽음과 화해하는 법', '죽음과 마주하는 태도' 등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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