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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사랑법 ㅣ 스토리콜렉터 81
마이크 오머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조이가 물었다. "이전 두 피해자를 확인했던 검시관이 당신인가요?"
검시관이 대답했다. "네, 그래요."
"나중에 같이 말씀 나누면서 세 피해자의 특징을 비교해주시면 정말 좋겠습니다."
정말 좋다. 조이는 확실히 단어를 선택하는 재주가 뛰어났다. 목이 졸려 살해당하고 방부처리된 여자들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어서 정말 좋다니. 기쁨이 넘친다. 트랄랄라. p.92
남자는 호숫가에서 보내는 시간을 즐기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옆자리에서는 어린 아이가 모래놀이를 하느라 여러 번 그의 비치타월에 모래를 날리고 있었고, 왼쪽에 있는 여자는 한 시간 내내 같은 자리에서 흐느끼고 있었다. 그는 여자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쩌면 우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다가갔다. 여자는 창백하다 못해 거의 잿빛에 가까운 피부색이었고, 어깨는 바위처럼 단단하고 뻣뻣하고 차가웠다. 여자는 모래밭에 앉아서 얼굴을 손에 파묻고 있는 자세로 죽어 있었던 것이다. 이는 언론에서 '목 조르는 장의사'라고 불리는 연쇄살인범의 소행으로 그는 교살 후 시신을 방부 처리해 누구나 볼 수 있는 장소들에 남기는 걸로 유명했다.
사건 해결을 위해 FBI 요원 테이텀 그레이와 범죄심리학자 조이 벤틀리가 시카고로 파견된다. 데이텀은 로스앤젤레스 지국에서 1년에 걸친 아동 성도착자 조직 사건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후 최근 승진했지만, 사실 상관들과 크고 작은 오해들을 끊임없이 만들었던 제멋대로 성격으로 버지니아주 행동분석팀의 신임 차장 밑으로 발령을 받았다. 맨쿠소 차장은 승진하자마자 일처리 방식을 바꾸며 민간인 하나를 자문으로 데려왔는데, 그게 바로 조이였다. 조이는 어린 시절 살던 곳에서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지켜봤고, 당시 사건은 미결로 남았지만 나름대로의 조사를 통해 유력한 용의자가 알고 지내던 이웃 남자라는 것을 밝혀냈던 이력이 있다. 물론 경찰을 비롯해서 주위 어른들은 어린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덕분에 동생과 함께 연쇄 살인범에게 무시무시한 협박을 받으며 공포에 떨었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 사건으로 인해 그녀가 범죄 프로파일링을 하게 된 것이다.
21세기의 가장 유명한 연쇄살인범 중 하나를 잡는 데 힘을 보탬으로써 잠시 명성을 얻었을 때, 조이는 사람들이 자신을 찬양하는 말을 들었다. 주로 자신의 영리함을 두고 떠드는 소리였다. 조이의 신임장은 종종 과장되었다. 하버드 법학박사, 수석 졸업, 기타 등등. 하지만 사람들은 조이가 그토록 뛰어난 실적을 올린 이유가 생생한 상상력 덕분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노력만 하면, 조이는 살인범의 머릿속으로 들어가서 놈이 뭘 느끼고 보는지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양날의 검이었으니, 조이는 또한 피해자의 눈으로도 사물을 보았던 것이다. 너무나 선명하고 생생한 광경. p.238
스릴러와 미스터리를 즐겨 읽었던 10대 소녀가 현실에서 그런 상황을 겪게 된다면 어떨까. 조용한 소도시에서 젊은 여자가 벌거벗은 변사체로 발견되었고, 사람들은 모두 공포에 질려 밤이면 유령 도시라도 된 듯 집에 숨어 있었다. 하지만 소녀는 기사가 실린 신문을 오려 스크랩북을 만들고, 자신이 아는 빈약한 사실들과 넘겨 들은 소문과 책을 통해 얻은 지식들로 홀로 나름의 수사를 시작한다. 매일 밤 범인에게 쫓기는 악몽을 꾸지만, 결국 경찰서에 가서 자신이 조사한 용의자에 대해서 신고하기에 이른다. 물론 경찰을 비롯해서 주위 어른들은 열네 살 소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사건은 다른 용의자가 수감 중 자살하는 걸로 마무리되고 만다. 그 소녀는 십육 년 뒤 FBI의 수사를 돕는 범죄심리학자가 되었고, 당시의 연쇄 살인범은 여전히 그녀를 잊지 않고 연락을 해온다. 그리고 현재 그녀는 FBI 요원 테이텀 그레이와 언론에서 '목 조르는 장의사'라고 불리는 연쇄살인범을 쫓는 중이다.
범죄 심리학자와 FBI 요원이 상반된 성격으로 서로 티격태격하면서 수사를 한다는 설정이나, 연쇄살인범을 쫓는 수사 과정과 피해자와 범인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함께 교차 진행되는 구성은 사실 이러한 장르에서 특별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자주 볼 수 있는 설정과 구성이라고 해서 이야기 또한 평범하다는 뜻은 아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캐릭터이다. 죽음까지 뛰어넘는 완전 무결한 사랑을 꿈꾸며 여자를 죽여 방부 처리하는 연쇄 살인범, 대책 안 서는 고집불통 할아버지와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소시오 패스 고양이와 함께 사는 역시나 제멋대로인 성격으로 상사들과 부딪쳐 온 FBI 요원과 살인범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는 알면서 평범한 사람들의 감정은 전혀 헤아리지 못해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돌직구만 날려대는 범죄심리학자가 모였으니 말이다. 범인의 병적 판타지도 이해할 수 없어 오싹하게 만들고, 사사건건 서로를 공격하고 무시하고 부딪히는 두 남녀 주인공 또한 전혀 평범과는 거리가 멀어서 매 장면마다 긴장감과 호기심을 유발시킨다. 게다가 보통 과거의 트라우마를 딛고 일어선 주인공이 등장하는 경우, 과거를 시작으로 현재 벌어지는 이야기에 더 중점을 두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녀의 과거 시점을 거의 현재 벌어지는 사건과 동일한 무게로 다루고 있어 인상적이다.
이 작품의 작가인 마이크 오머는 16세 때부터 온라인상에 자신의 글을 자비 출판하며 꾸준히 팬층을 확보했고 팬들의 요청에 부응해 이 작품을 집필했다. 게임 개발자 출신이라는 이력도 흥미로운데, 이 작품의 주인공인 조이 벤틀리는 아내의 모습을 투영해 만들어냈다고 한다. 주도적인 여성을 전면에 내세워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이 너무나 노련하고 자연스러워 마치 여성 작가가 쓴 것 같다는 평을 듣기도 했을 정도로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팬들의 요청으로 시리즈화가 확정되어 2019년 '조이 벤틀리'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인 <In The Darkness>가 출간되었으니, 국내에서도 빨리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