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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트위스트 (완역본) ㅣ 현대지성 클래식 29
찰스 디킨스 지음, 유수아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월
평점 :
여기에서 짚고 넘어갈 만한 사실이 있다. 우리는 스스로의 판단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며 터무니없이 성급하게 내린 결정에 괜히 자부심을 가지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그림윈 씨가 그리 나쁜 사람이 아니고 친구가 속는 모습에 진심으로 유감스러워할 사람이긴 했지만, 이 순간만큼은 진짜로 올리버 트위스트가 돌아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p.168
스스로를 부양할 수 없는 사람들, 즉 빈민이나 노약자에게 거처와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곳인 구빈원을 어느 마을에서나 흔히 볼 수 있던 시절이었다. 17~19세기 영국에 있었던 이 기관은 신체장애자를 비롯해서 노인, 부랑아와 실업자, 가벼운 범죄를 저지른 사람, 미혼모, 고아 등을 모두 수용했던 데다 의료 활동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위생 및 안전수준도 매우 낮았으며, 그곳에서 죽어가는 사람이 속출할 정도로 열악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어느 날 한 아이가 태어난다. 젊은 여인은 아이를 낳자 마자 죽어 버렸고,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구빈원의 고아로 늘 배를 곯아 하릴없이 세파에 이리저리 시달리는 보잘것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그 아이가 바로 이야기의 주인공, 올리버 트위스트이다.
구빈원, 혹은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지부인 고아 농장 모두 아이들에게 아주 부실하고 매우 적은 양의 음식만 제공했고, 대부분은 굶주림과 추위에 병들거나 방임으로 인해 사고를 당하곤 했다. 아홉 살이 된 올리버는 그곳에서 지내며 허기에 시달려 어느 날 죽 한 그릇을 먹고 조금만 더 달라고 말했다는 죄로 그곳에서 쫓겨나다시피 장의사의 가게에 도제로 가게 된다. 한 달 간의 시험 기간이 끝나고 정식으로 도제가 되었지만, 고참인 노아의 유세와 학대를 참다 못해 주먹을 날리게 되고 도망치다 런던으로 향하게 된다. 런던에서는 자기 또래 소년을 따라갔다가 소매치기 범죄단에 끌려가게 되고, 어떤 신사가 올리버를 도와주지만 결국 다시 범죄단에 납치되고 만다. 그야말로 온갖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올리버의 삶은 이 두툼한 페이지가 끝날 때까지 계속 된다. 도둑으로 오해 받고, 납치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쁜 평판이 만들어지고, 아파서 죽을 뻔하는 등 불운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다.
“코니 부인, 구빈원 밖 구제라는 게요, 잘만 관리하면 교구의 안전 장치가 되지요. 가장 큰 원칙은 극빈자들에게 정확히 그들이 원하지 않는 것만 주어야 한다는 거죠. 그러면 지쳐서 구걸하러 오지 않거든요.” 교구관이 우월한 지식을 뽐내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세상에! 참으로 영리한 대처네요, 정말!" 코니 부인이 감탄했다. p.262
현대지성 클래식 스물 아홉 번째 작품은 ‘고아원 소년의 여정’이라는 부제가 달린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이다. 19세기 영국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는 고아 소년의 인생 역정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1834년 시행된 신 구빈법을 통렬하게 풍자하고 비판하고 있다. 당시 어린 소년이 주인공인 최초의 작품이자, 빈민들의 비참한 삶에 대한 예리한 묘사로 화제였다고 한다. 게다가 19세기 최고의 삽화가였던 조지 크룩생크의 삽화가 24장 수록되어 당시의 배경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영국의 구빈법은 가난을 무능력하고, 게으른 개인의 죄악쯤으로 취급해 의식주를 제공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여기라는 식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실질적 혜택은 형편없었고, 시설 또한 매우 열악했지만 말이다.
찰스 디킨스는 '모든 역경에서 살아남아 결국 승리하는 선의 원리를 소년 올리버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그의 어릴 적 경험을 바탕으로 『벤틀리 미셀러니』라는 잡지에 2년 간 연재되었었는데, 신 구빈법 문제를 과감히 붙들고 그 비인간성과 통제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넘치는 유머 감각으로 대중의 심리를 꿰뚫어 ‘경악할 만한 신파극’을 잘 쓰는 작가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그만큼 이 작품은 여러 번 영화, 드라마, 연극으로 각색되고, 공연되기도 했다. 이 작품은 성장 소설이자 모험 소설이기도 하고, 다양한 등장인물이 엮이고 부딪치면서 만들어내는 온갖 사건 사고들이 신파조 풍속소설로서의 매력도 가지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권선징악의 해피엔딩을 맞이하게 되리라는 걸 알고 읽더라도, 이 이야기를 읽는 내내 비극과 희극이 번갈아 등장하며, 우리의 가슴을 졸이게 하고, 웃겨주고, 마음 아프게 하고, 감정 이입하게 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되는 것 같다. 가장 ‘디킨스다운’ 소설이자 19세기 최고의 영국문학이라는 평가처럼, 150년이 넘었어도 여전히 동시대적으로 읽히는, 그리고 매번 읽을 때마다 또 다른 재미와 감동을 안겨주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