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발견 - 나의 특별한 가족, 교육, 그리고 자유의 이야기
타라 웨스트오버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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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망상과 종교적 원리주의가 내 삶을 어떤 모습으로 규정해 가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어떻게 사랑하는 사람들을 내 삶에서 앗아 가고 그 자리를 학위와 자격증 - 점잖은 외형을 갖추는 데 필요한 것 - 등으로만 채워 가도록 할지 외할머니라면 이해했을 것이다. 지금 일어나는 일들은 예전에도 일어났던 일들이다. 이것은 엄마와 딸 사이에 일어난 두 번째 절교였다. 테이프는 무한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p.61

 

인간이 다스리는 세상이 망한다 해도,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고 계속 살아갈 만한 가족이 여기 있다. 미국 아이다호에서 태어나 자란 이들 가족의 7남매 중 네 명은 출생증명서 조차 없었다. 가정 분만으로 태어나서, 한 번도 의사나 간호사에게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의료 기록도 없고, 교실이라는 곳에도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학적부도 없었다. 세상의 종말이 임박했다고 믿는 모르몬교 광신도 아버지, 아버지의 폭력성을 방관하고 동종요법을 맹신하는 어머니, 여성에게 신체적.언어적 폭력을 서슴없이 가하는 오빠. 요즘 세상에 이런 일이 가능한 거냐고 의심이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수백 년 전에 벌어진 것이 아니라, 겨우 십여 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저자인 타라 웨스트오버가 일곱 살이던 해, 그녀는 자신의 가족이 다른 가족들과 다르다는 점을 깨닫는다. 그녀를 비롯해 형제, 자매들은 기본 적인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했고, 병원 진료조차 받지 못한 채 유년 시절을 보낸다.

 

이 책은 16년간 외부와 단절된 상태로 아버지가 구축한 세계 안에서만 세상을 바라보던 소녀가 교육의 기회를 스스로 쟁취하여 눈을 떠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열여섯 살까지 학교에 가본 적이 없었던 소녀가 케임브리지 박사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믿기 어려울 만큼 놀랍고, 당황스러울 정도로 경이로웠다. 공교육은 정부가 아이들을 세뇌하는 거라고 믿었던 아버지 밑에서 세상과 교류하지 않고, 자급자족하면서 살 수 있는 방법으로 생활하는 건 대체 어떤 걸까. 아마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상상 조차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자신이 누군지를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는 그 사람의 내부에 있어요." 그가 말했다. "스타인버그 교수는 이 상황을 <피그말리온>에 비유하더군요. 타라, 그 이야기를 생각해 보세요." 케리 박사는 잠시 망설이다가 날카로운 눈과 꿰뚫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주인공은 좋은 옷을 입은 하층 노동자였어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기기 전까지는. 일단 그 믿음이 생긴 후에는 그녀가 무슨 옷을 입고 있는지가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됐지요."     p.381

 

타라 웨스트오버의 첫 저술이자, 회고록인 이 책은 2018년 2월 출간되자마자 미국 출판계 최고의 화제작이었다. 54개국에 판권이 팔렸고, 영미권에서만 300만 부 이상 판매되었으며,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빌 게이츠, 오프라 윈프리 등 유명 인사들의 찬사 속에 거의 모든 미디어에서 올해의 책으로 꼽혔으니 말이다. 덕분에 타라 웨스트오버는 2019년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타라는 산파이자 동종 요법 치유사인 어머니를 도와 약초를 끓이며 여름을 보냈고, 겨울에는 아버지의 폐철 처리장에서 폐철을 모으고 자르는 일을 했다. 책이라고는 성경과 모르몬 경정 이외에는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없었고, 친구나 이성을 대하는 법 등 사회생활 경험도 전혀 하지 못했다. 그랬던 그녀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대학에 들어간 셋째 오빠가 집에 돌아와서 산 너머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던 열여섯 살 때였다. 그녀는 아버지의 눈을 피해 대입자격시험(ACT)에 필요한 과목들을 독학으로 공부하기 시작했고, 기적처럼 대학에 합격했다.

 

물론 기초 교유 과정을 모두 건너뛴 채로 대학에 입학했기 때문에, 대학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누구나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을 전혀 누리지 못하고 살아왔기에, 그녀에게 세상은 지붕 아래 있는 것이 전부였을 것이다. 그랬던 그녀가 아버지의 입을 통해 들었던 세상과 너무나도 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 과정은 그야말로 세계가 뒤집히는 일이 아니었을까. 원하든 원치 않든 자연스레 교육 과정을 거치며 살아왔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배움'이라는 것에 대한 의미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어 순간순간 뭉클해졌다. 그저 '정상적이고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서 고군분투해야 했던 한 여성의 삶은 마치 영화처럼 드라마틱했지만, 그것이 실제 지구상 어딘가에서 벌어졌던 일이라고 생각하면 먹먹한 기분 마저 들었다. '책에 쓰인 말들을 나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고 믿으며 읽는 것은 전율이 흐를 정도로 기뿐 일'이었다고 말하는 순간, 그녀가 쓴 에세이에 대해서 지난 30년 간 본 것들 중 가장 훌륭하다는 교수의 말에 목이 메이는 순간, 그리고 그녀가 케임브리지에 올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라는 것을 표현하는 박사의 말을 듣고 생각하는 순간 등.. 이 책에는 감동적이고, 아름답고, 뭉클해지는 장면들이 참 많았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배움이라는 것이 단순히 좋은 대학에서 학위를 따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더 깊고 더 넓게 보는 눈을 뜨고 자신을 재발견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이야기라는 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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