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
마리즈 콩데 지음, 정혜용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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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어머니를 목매달았다.
나는 붉은솜나무의 낮은 가지에 매달린 어머니의 몸뚱어리가 뱅글뱅글 도는 걸 봤다.
어머니는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다. 백인에게 칼을 휘두른 것이다. 어쨌든 그를 죽이지는 못했다. 어설픈 분노에 휩싸여 어깨를 베는 것에 그치고 말았으니까.   p.20

 

티투바는 열여섯 어린 소녀였던 아베나가 노예로 팔려가는 배의 갑판에서 영국인 선원에게 강간당한 결과로 태어났다. 증오와 멸시의 행위로부터, 끔찍한 폭행으로부터 태어난 것이다. 주인은 아베나의 임신 사실을 알고는 화가 나 그녀를 같은 출신의 노예인 야오에게 줘버렸고, 야오는 그녀를 오누이처럼, 아버지와 딸처럼 보듬어준다. 그럼에도 태어난 아기가 매 순간 고통과 수치를 떠올리게 했기에, 아베나는 티투바를 사랑할 수 없었다. 대신 야오가 두 사람 몫만큼 티투바를 사랑해줬기에, 아이는 애정결핍으로 괴로움을 겪지 않았다. 하지만 티투바는 일곱 살때 어머니가 죽는 모습을 눈앞에서 목격한다. 어머니가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백인인 주인에게 칼을 휘둘렀고, 사람들이 어머니를 목매달아 처형한 것이다. 야오는 다른 농장주에게 팔려갔고, 티투바는 농장에서 쫓겨난다. 티투바를 거둔 것은 어떤 나이 든 여인이었는데, 그녀는 보이지 않는 존재들과 교감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넌 살면서 고통을 받을 거다. 많이, 많이.... 하지만 넌 살아남을 거다!"

 

만 야야는 티투바에게 온갖 종류의 치유 식물들과 바다, 산 등에 대해 알려준다. 그리고 모든 것에 영혼이 있고 숨결이 있음을, 모든 것이 존중 받아야 한다는 것도 알려준다. 만 야야는 티투바가 열네 살이 되고 며칠 안 되어 세상을 떠났고, 망자의 존재를 느낄 수 있고 믿었기 때문에 티투바는 울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주위에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티투바는 남자들, 특히 백인 남자들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혼자 살았는데, 사람들은 그녀가 만 야야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두려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티투바에게 다가온 존 인디언이라는 젊은 남자가 있었다. 그 역시 노예의 신분이었고, 티투바는 그와 사랑에 빠져 혼자 만의 생활을 모두 정리하고, 노예 신분이 되기로 한다.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을 갈구하는 대상이 생겼고, 그와 함께 하는 대가로 스스로를 노예 상인에게 넘겨 준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삶은 그로 인해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얼마나 많이 돌로 쳐 죽여야 하나? 얼마나 불을 질러야 하나? 얼마나 피가 들끓어야 하나? 앞으로도 얼마나 더 무릎을 꿇어야 하나?
삶을 위한 다른 흐름을, 다른 의미를, 또 다른 절박성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불이 나무 꼭대기를 휩쓴다. 그가, 반역자가 연기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그가 죽음을 이겨내어 그의 정신이 남은 것이다. 겁에 질려 둥글게 모여 선 노예들이 다시 용기를 낸다. 정신이 남는다.     p.218

 

이 작품은 세상에 단 한 번 존재하고 단 한 번 수여된, 대안 노벨문학상인 '뉴 아카데미 문학상' 수상작이다. 17세기 말 미국의 작은 마을 세일럼에서 마녀로 몰렸던 흑인 여성 노예 티투바의 삶을 그리고 있다. 1962년, 세일럼의 마녀 재판은 세라 굿, 세라 오즈번, 티투바가 체포되면서 시작되었다. 열아홉 명이 교수형을 당했고, 남자 한 명은 압사형에 처해졌다. 1963년, 티투바는 감옥에서의 '체류 비용'과 쇠사슬 및 족쇄 비용을 지불하지 못해 다시 노예로 팔렸다. 티투바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딱 여기까지였다. 나머지는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재구성되고, 대안 역사 내러티브의 형식으로 다시 쓰여진 것이다. 한 흑인 여성이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노예로 끌려왔다가 세일럼 마을에서 다른 ‘백인 마녀들’과 함께 마녀 재판을 받게 되기까지의 서사는 굉장히 드라마틱하면서도 감동적이다.

 

작가인 마리즈 콩데는 은행가인 아버지와 최초의 흑인 교사인 어머니 밑에서 태어나 매우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하지만 16세에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역사적, 사회적 현실과 유리된 삶을 살아왔는지를 깨닫게 된다. 이후에 그녀는 미혼모가 되고, 가족에게서 버림받고, 가난을 겪으면서 흑인 부르주아의 삶과는 정반대 편에서 살게 되는데, 그로 인해 사회적 약자와 폭력과 차별의 희생자에 대한 남다른 공감과 이해로 작품 활동을 하게 된다. 수없이 무고한 희생자를 양산했던 마녀 사냥에서도, 똑같이 마녀로 지목되어 무고한 희생을 치렀지만, 백인의 희생과 흑인의 희생은 그 역사적 무게가 같지 않았다. 티투바 역시 흑인 여성 노예였기에 역사의 주변부로 밀려났을 것이다. 그 점에 인간적 연민과 일체감을 느낀 작가는 “티투바에 대한 특별한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여성은 역사에 의해 부당한 대우를 받았기 때문이다. 피부와 성별 때문에 거부당한 인간적 권위를 그에게 꼭 회복해주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낀 것”이라고 집필 동기를 밝히기도 했다. 이 작품 속에서 티투바는 '독립적인 정신의 소유자이자 자신의 욕망을 주장하는 데 있어서 거침없이 당당하며, 온갖 시련에도 불구하고 끝내 인간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놓지 못한 인물'로 대단히 매력적인 캐릭터로 그려지고 있다.

 

대부분의 노예들에게는 오로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살아 있기 위해서 그 모든 모욕과 수치를 견뎌내고, 참으며 하루를 버텼다. 하지만 티투바에게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녀에게 삶은 그냥 숨 쉬며 살아 있는 게 아니었다. 반드시 삶의 풍미가 바뀌어야만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떻게 거기에 도달할 것인가'에 대해 누군가 묻는다면, 답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 모든 고통을 하나 하나 감수해가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서. 그래서 그녀의 진짜 이야기는 끝이 난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되어,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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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9-12-27 1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해도 축하드립니다.
리뷰도 멋지지만 사진을 어디서 찎으셨는지 엄청 궁금해지네요^^

피오나 2019-12-27 19:19   좋아요 0 | URL
ㅎㅎ 감사합니다. 책 표지 색감이 예뻐서..지나가다 푸른 조명이 눈에 띄어서 함께 찍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