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점에서 본 우주 - 실험 천문학자들이 쓰는 새로운 우주 기록
김준한.강재환 지음 / 시공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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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블랙홀 그림자를 관측해낸다면 일반상대성이론의 예측대로 블랙홀이 존재한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된다. 또한 그림자 주위의 고리가 얼마나 밝은지, 어떤 모습인지는 여러 가지 조건에 따라 결정된다. 예를 들면 블랙홀을 둘러싼 고온의 플라스마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블랙홀 근처에서 자기장이 어떤 배열을 이루는지, 블랙홀을 어떤 방향에서 관측하는지 등이 영향을 준다. 그렇기에 블랙홀의 직접 관측은 단순한 이론의 검증을 넘어서, 블랙홀의 특성과 주변 시공간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제는 영화가 아니라 밤하늘에서 블랙홀을 찾아 나설 때다.   p.108

 

남극은 북미 대륙의 절반보다도 넓은 땅덩이인 남극 대륙 전체를 말한다. 그리고 남극점은 그 대륙의 한가운데, 지구 자전축이 지나는 남위 90도를 발한다. 남극점은 연 평균온도가 영하 50도에 이르며, 기온이 영하 40도 위로 올라가는 약 3개월 반의 하절기 동안에 운행 가능한 비행기로 대원들이 왕래하는 곳이다. 약 3킬로미터 두께의 얼음 평원 위에 자리해 기압이 낮으며, 수분을 거의 품지 못하는 극저온의 공기는 매우 건조한 사막 환경을 만든다. 그러니까 지구에서 가장 넓은 사막인 셈이다. 그러니 이곳에서는 자연에서 생명체가 살 수 없다. 그러한 극한의 환경에서 우주의 극한을 탐구하는 과학자들의 최첨단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이 책은 보이지 않는 블랙홀의 사진을 찍고, 우주가 태어나는 장면을 들여다보는 등 지금 남극점에서 진행 중인 최신 천문학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인 두 천문학자는 서로 다른 주제로 우주를 연구하기 위해 2014년부터 2019년 까지 총 일곱 차례 남극점에 발을 디뎠다고 한다. 우주를 연구하는데 어떤 도구와 방법을 쓰느 지에 따라 천문학자들도 다양하게 구분할 수 있다. 관측소에서 망원경을 하늘로 기울여 자료를 얻고 분석하는 관측 천문학자, 눈에 보이는 빛인 가시광선을 연구하는 광학 천문학자, 산꼭대기 또는 사막 한가운데의 관측소에서 자료를 얻고 분석하는 전파 천문학자, 복잡한 수식을 통해 물리법칙에 따라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지를 연구하는 이론 천문학자, 그리고 실험 천문학자가 있다. 이들은 보통 멀끔한 모습으로 사무실에 앉아있기보다는 많은 시간을 실험실과 관측소에서 때 묻은 초췌한 모습으로 보내는 경우가 많다. 이들에게는 관측소 출장이 일상인데, 애리조나 사막의 산봉우리, 하와이의 해발 사천미터가 넘는 산꼭대기, 칠레의 고원, 그린란드로 향하기도 한다. 남극점도 매우 훌륭한 관측지인데, 천문 관측을 하기 좋은 곳이라는 건, 사람이 생활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뜻도 된다. 그러니 그 견디기 어려운 곳을 몇 년 동안이나 왕복하며 생생한 우주 관측을 했던 전파 천문학자이자 실험 천문학자인 이들의 이야기가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우주에 비교하면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물과 현상의 규모는 상당히 작다.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주적 스케일에 익숙해지는 것이 도움이 된다. 천문학의 역사와 함께 우리가 인식하는 우주의 범위는 계속 커졌다. 우리도 살면서 비슷한 일을 겪는다. 어린 시절에 알던 동네와, 어른이 되어 활동하는 범위는 규모가 다르다. 우주론도 지난 100년 남짓한 사이에 폭풍 성장을 했다. BICEP팀이 풀고자 하는 문제는 우주를 이해하는 지평의 끝을 확장시키는 과정의 연장선이다.    P.195~196

 

일반인들에게는 천문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낯설 수 있지만, 남극 혹은 남극점이라는 장소 또한 평생 살면서 한번도 접하지 못하는 곳이라 머나먼 딴 세상처럼 느껴지는 곳이다. 이 책에서는 남극에 가기 위한 서류 작성부터, 신체검사와 필요한 장비들의 화물 배송, 그리고 거리상으로 너무도 멀어 여기저기를 거쳐 가야 하는 고된 방법, 남극 대륙에서 입어야 하는 의복들과 음식들, 하루 한 번 인터넷 위성이 뜨고 지는 기지 생활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이 수록되어 있다. 책을 통해서 간접 체험하는 남극대륙 여행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생경한 정보들이 많았고, 낯설지만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남극점의 풍경 사진들도 있어 시선을 사로잡았다. 1부에서 이렇게 연구자들이 남극에 가기까지의 과정과 남극점 생활에 대해 알려주고 나면, 2부에서는 EHT 프로젝트, 즉 지구 크기의 망원경으로 블랙홀을 사진에 담는 인류 최초의 도전이 그려지고, 3부의 바이셉팀은 빅뱅 직후 우주가 식으며 남겨놓은 열기, 우주배경복사를 연구해 우주 탄생의 비밀을 밝히고 있다. 

 

2019년 4월, 인류 최초로 찍은 블랙홀 그림자 사진이 공개되어 <뉴욕타임스> <가디언> 등을 비롯한 전 세계 언론의 집중을 받았다. 지구 곳곳에 흩어진 망원경을 이어 ‘지구만 한 망원경’을 만든 신개념 EHT 프로젝트는 블랙홀의 진짜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이 책은 바로 그 역사적인 사진 한 장 뒤에 숨어 있는 모든 궁금한 이야기들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우주 진화의 이론적 발견에 큰 공을 세운 제임스 피블스가 2019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는데, 3부에서 이번 노벨상에 대한 촘촘한 해설이자, 우주 진화를 설명하는 과학 이론에 현장의 연구까지 더해 풍성한 지식을 얻을 수 있어 더욱 흥미로웠다. 무한히 성실한 연구와 관측, 무수한 실패를 딛고 밝혀지는 우주 이야기는 해당 분야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일반인들에게도 감격의 순간을 느끼도록 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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