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고만 찍고, 으이? 요 올라와서 같이 커피 마시믄서 꽁알이들 밥 묵는 거 보소. 을매나 이쁘노. 쪼맨한 것들이 오도독 먹는데 증말로
이쁘제. 이게 내 요즘 사는 낙 아이가.”
정말로 그랬다. 은은히 풍겨 오는 따뜻한 밥 냄새, 선선한 아침 공기, 잠이 저만치 달아나는
진한 커피, 그리고 고양이들. 대단할 것 없는 소소한 일상의 조각들이었지만 이보다 더 확실한 행복은 없을 것 같았다.
p.16
SNS상에서 꽤나 유명한 할머니와 고양이 사진들, 바로 그 사진들을 찍은 고양이 작가 전형준의 첫 에세이집이다. 집에서 키우고 있는
고양이들을 찍으려고 산 카메라였는데, 어느 날 마당에 찾아온 길고양이 가족을 촬영하면서 그의 길고양이 사진들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그의 사진은
길고양이에 대한 애정으로 시작됐고 지금도 그렇다고 한다. 검은 봉지만 봐도 고양이인 줄 알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고양이 중증 환자, 라고 스스로를
표현할 정도이니 그가 고양이를 얼마나 좋아하는 지 짐작이 될 것이다.
저자는 지난 5년 동안 집 근처부터 재개발 지역까지 부산 구석구석을 다니며 수많은 길고양이들을 만났다. 이 책에 가득 수록된 사진 한 장
한 장은 저마다의 각별한 이야기를 품고 있고, 부산 할머니들의 투박하지만 정겨운 사투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글이 어우러져 뭉클하고, 따뜻한 한
편의 서사가 완성되었다.
사랑을 받으면 동물이든 사람이든 빛이 나는 것인지, 햇빛을 만끽하고 있는 고양이들의 얼굴에서 사랑받는 존재 특유의 반짝임이 가득하다.
아무런 조건 없이 애정을 베푸는 할머니와 고양이의 애틋한 관계에서 비롯되는 그 믿음과 사랑이 사진들 속에서 그대로 느껴졌다.
길고양이에게 가혹한 세상. 많은 길고양이들은 오늘만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고양이 사진을 찍게 된 건 내게 진흙 속에서
수많은 진주를 찾는 것 같은 행운이었다. 이 작은 털뭉치들에게 베풀어진 온정을 보며 위로를 얻기도, 또 희망을 느끼기도 했다.
p.307
고양이와 함께라면 언제나 좋고, 어디든 좋은 사람들, 때로는 이들이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될 때가 있다. 무슨 일인지
귀찮게 물어보지 않고, 왜 그러느냐고 짜증나게 몰아치지 않고,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동물들이니 말이다.
고양이를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고양이와 사람이 어울려 사는 당연한 풍경은 너무도 평화롭고, 아름답다. 고양이의 무던한 일상과 사람들의
관대한 날들이 어우러져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어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콩알만 한 게 야옹야옹 말도 많아 꽁알이로 부르는 길고양이들의 밥 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꽁알이 할머니, 한겨울에도 다섯 정거장
떨어진 시장에서 명태를 사 와 손수 살을 발라주는 찐이 할머니, 동네 길고양이 형제 여덟 마리 중 혼자 살아남은 ‘하나’를 집으로 들이신 하나
할머니, 부식 가게를 하며 동네 길고양이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는 부식 가게 할머니 등 부산 할머니들이 작은 털뭉치들에게 베푼 온정과 끈끈한
유대감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책이었다.
우리 동네에서도 거의 매일 길고양이들을 만난다. 물론 대부분의 길고양이들은 사람들을 피해 훌쩍 어디론가 달아나 버리곤 하지만 말이다.
길고양이들은 잘못된 속설 탓에 미움의 대상이 되어 왔고, 쓰레기봉투를 뜯고 시끄럽게 운다는 이유로 잡혀가 안락사를 당하거나 텃밭을 파헤쳤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기도 한다. 그러나 길고양이가 수난을 당하는 만큼 그들을 지키려는 활동이 활발한 나라도 우리나라라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람과 고양이의 공존을 모색하는 이들이 더 많아졌으면, 조금 더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이들이 더 많아졌으면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