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에게만 친절합니다 - 독일인에게 배운 까칠 퉁명 삶의 기술
구보타 유키 지음, 강수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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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회사 업무도, 집안일도, 육아도 결국은 다른 영역의 행위입니다.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는 무엇을 위해 하는지에 대한 본래 목적과, 다른 행위의 목적을 비교하여 어디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일지,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순위를 정해야 하죠. 꼭 내가 모든 것을 다 해야 할 필요는 없어요. 누군가에게 맡기거나, 돈을 내고 의뢰하거나, 아예 안 하는 선택지도 있으니까요.    p.48

 

저자는 일본의 출판사에 근무하는 편집자였다. 늘 성과가 요구되고 끝나지 않은 야근이 이어졌으며, 스트레스가 차곡 차곡 쌓여 가슴 속에 덩어리가 되고 있었다. 그러다 작은 일에도 짜증이 나고 즐거운 일이 생겨도 웃지 못할 정도로 메마른 상태가 돼버렸다. 그녀는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1년 동안 독일에 살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당시 '다들 느긋하게 사는 구나'라고 느꼈던 것을 기억한다. 그래서 1년 정도 일본을 벗어나 독일의 느긋한 템포로 살고 싶다고 베를린으로 건너갔고, 10년 째 베를린에서 살고 있다.

 

 

이 책은 세계에서 가장 친절한 나라로 손꼽히는 일본에서 마음의 여유를 잃은 상태로 불행하게 살았던 저자가 무뚝뚝하고 퉁명스러워 보이는 독일인과 까칠하지만 건전하고 건강한  독일식 라이프스타일을 겪으면서 깨달은 삶의 기술을 들려준다. 독일 생활의 이모저모를 통해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새로운 시각이 생기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어디에 살더라도 스트레스를 덜 받으며 살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처음에 저자는 독일의 창구에서, 관공서에서, 전화 통화에서 그들의 불친절함을 겪고는 무척 놀랐다고 한다. 불퉁한 얼굴로 마치 레이저를 쏘아붙이는 것 같은 독일인들의 직설적인 말투가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점차, 그들이 남에게 억지로 친절하지 않기 때문에 나 역시 남에게 대접받기를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남에게 쏟을 시간과 정성이 있다면 나 자신에게 쏟는 것이니, 한마디로 독일인은 남에게 불친절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친절한 것이라는 거다.

 

 

베를린에 와서 깨달았어요. 사람들의 걷는 속도가 느리다는 것을. 다리 길이의 차이도 있겠지만, 저처럼 서두르며 걷는 사람은 소수예요. 걷는 속도뿐 아니라 모든 동작이 느긋해요. 그러다보니 제 템포도 그들에 맞춰 점점 느려졌어요. 그러자 짜증을 내는 일이 줄어들었죠. 늘 갈 길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짜증을 냈어요. 하지만 그렇게 서두른다 한들 얼마만큼의 시간을 벌 수 있었을까요. 고작 몇 분밖에 차이가 안 나는 일에 그동안 막대한 에너지를 소비해왔고, 그것이 바로 스트레스의 큰 원인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p.105~106

 

특히 독일의 노동 방식 중에 부러운 부분들이 많았다. 할 일이 끝나면 칼같이 퇴근하고, '근로시간 계좌' 제도로 근무시간 외에 추가로 일할 시간을 모아두었다가 업무를 짧게 마치거나 휴가로 쓸 수도 있다. 그리고 '단축 근무'라는 형태로 정사원이라는 고용 형태를 유지하면서 업무 시간을 줄여서 일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취학 자녀를 키우는 여성이 출산 전까지 풀타임으로 근무하다가, 출산 후 주 20시간 근무로 계약을 바꾸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경력이 단절될 우려가 없고, 회사로서도 경험 있는 직원이 그대로 남는 다는 이점이 있다. 그리고 '플렉스 타임'이라는 제도도 있는데, 핵심 근무 시간인 '코어 시간'에만 사무실에 있으면 출퇴근 시간을 각자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제도이다.

 

 

겉으로 보기엔 독일이 굉장히 불친절한 나라처럼 보이지만, 이들의 라이프 스타일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내가 1년에 한 달 휴가를 가니까 남도 내가 쉬는 만큼 동등하게 쉬어야 한다. 내가 남에게 억지로 서비스하지 않기 때문에 나도 남에게 서비스받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서로 희생하지 않으니 눈치 볼 필요 없고 서로 기대하지 않으니 실망할 필요 없다. 너무도 단순하면서도 명쾌하지 않은가. 그리고 덴마크 휘게와 닮은 듯 다른 독일판 휘게 ‘게뮈트리히’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고 보잘것없을 만큼 사소한 일이 바로 게뮈트리히라서, 별다른 준비 없이 오늘부터 바로 따라 할 수 있는 행복의 기술이었으니 말이다.

 

이 책을 통해서 독일인의 일하기, 쉬기, 살기, 먹기, 꾸미기에 대해 알게 되니, 조금은 까칠하고 퉁명스럽게 살아가도 잘 돌아가는 사회가 있다는 것을 새롭게 배우게 되었다. 건강한 개인주의야말로 남을 위한 일상이 아니라 나를 위한 인생을 살기 위한 첫 번째 마음가짐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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