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를 믿나요? - 2019년 볼로냐 라가치 상 오페라프리마 부문 대상 수상작 웅진 모두의 그림책 25
제시카 러브 지음, 김지은 옮김 / 웅진주니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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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을 잘하고 물을 좋아하는 소년 줄리앙은 할머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에서 인어들을 직접 만나게 된다. 책 속에서만 보았던 인어를 본 소년은 인어의 화려한 아름다움에 반한다. 그리고 자신도 인어가 되어 바다 속에서 물고기들과 함께 자유롭게 헤엄치며 노는 것을 상상한다.

 

"할머니는 인어 봤어?"
"그럼, 봤지."

"할머니... 나도 인어인데."

 

집에 돌아온 할머니는 목욕을 하러 가느라 자리를 비우고, 혼자 남겨진 줄리앙은 커튼과 화분으로 인어 분장을 하며 논다.

 

 

소년이 인어의 모습이 되어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 무뚝뚝한 할머니는 화가 난 표정으로 자리를 피한다. 남자아이가 자신을 사회가 규정한 남자다운 모습에서 벗어난 모습으로 꾸미고 노는 것을 발견한다면, 누구나 마찬가지로 화를 내거나 혼을 낼 것이다. 대부분의 어른들이라면 말이다. 우리는 남자는 남자다워야 하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고 생각하며 자라왔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자다움', '남자다움' 을 강조하는 분위기는 너무도 당연했고, 사실 그러한 인식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바로 그 '답다'는 규정의 옳고 그름은 대체 누가 판단하는 걸까.

 

"와, 이게 뭐야, 할머니?"
"너한테 어울릴 것 같아서."

 

다시 돌아온 할머니는 줄리앙을 혼내는 대신 예쁜 목걸이를 건네 준다.

 

 

할머니가 준 목걸이를 목에 걸고 인어 분장을 한 차림새로 줄리앙은 할머니와 함께 길을 나선다.

 

"인어다." 줄리앙이 속삭였어요.
"그래, 우리 꼬마 인어도 같이 가 볼래?"

 

광장에는 인어 무리가 행진을 하고 있었고, 할머니와 줄리앙은 인어들과 함께 걷기 시작한다. 생물학적 성별을 근거로 만들어진 사회적 규범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소년의 이야기가 다소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수자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나 지칭 없이 평범한 일상 속에서 소년의 숨은 고민을 할머니의 사려 깊은 행동을 통해 감싸 안아주고 있어 매우 섬세하고, 따뜻하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내가 나다울 수 있는 개성과 자신의 몸을 비롯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야말로 무조건적인 사랑의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기도 하니 말이다.

 

 

웅진 모두의 그림책 25권은 세상이 만들어 둔 관습이나 규칙을 벗어난 길 위에서 자기만의 길을 찾기 위해 나서는 소년 줄리앙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제시카 러브 작가의 첫 그림책 데뷔작인 이 작품은 2019 볼로냐 라가치 상 오페라프리마 부문 대상, 2019 에즈라 잭 키츠 상 명예상, 2019 스톤월 북 어워드 대상을 받으며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이 책은 안데르센의 <인어공주>에 대한 귀여운 변주이기도 하다. 200년 전의 인어공주에 비해 21세기의 인어공주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곧 개봉될 월트 디즈니의 실사판 영화 <인어공주>에서는 주인공 역할에 흑인 배우를 캐스팅하는 파격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작품 속 소년 줄리앙은 할머니의 믿음과 응원으로 오색찬란한 인어들의 행진에 함께 나설 수 있게 된다. 인종 차별,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 등을 떠나 다양성을 존중하고, 개성을 인정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길 바라는 예쁜 그림책이었다. 아름다운 색채의 그림들을 통해 보여지는 반짝반짝 빛나는 이야기였다. 언젠가는 차별 없는 세상이 되기를, 그리고 아이들의 개성과 가능성, 그리고 꿈을 지지하는 어른들로 가득한 세상이 되기를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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