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다 가둔 거예요?"
"나는 버스에 갇혀서 오래 살 거예요. 엄청나게 오래살 거야. 심장을 기계펌프로 바꾸고, 팔다리는 그거 알죠? 나와라 만능 팔, 가제트. 다리는 무쇠다리. 아니, 다리는 무쇠바퀴. 머리도 컴퓨터로 바꿀 건데 절대로 업데이트 안
하고, 옛날 기억만 계속
재생시킬 거야. 그래서
아주아주 오래 살 거예요." p.19~20
버스에다
'나는 곧 죽는다'라고 붙여 놓고, 전 재산을 싣고 떠돌아다니는 사람이 있었다. 프리랜서 논픽션 작가인 '나'는 새로운 아이디어도 없었고 새로운 생각을 발전
시킬 배터리도 없는 상태였다. 경제인들의 인터뷰집을 출간해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던,
짧았던 그 전성기가 지나가고 나서 그는 첫 번째 삶이 끝났다는 생각을 한다. 그즈음 그의 고민은 두 번째 삶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였고, 두 번째 직업을
찾아야 했지만 걸맞은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고,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때 방송에서 버스 여행자의 모습을 보고는 그의 얼굴과 눈빛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아 그를
찾아가기로 한다.
그렇게 '나'는 개조한 버스로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여행을
다니는 주원 씨(가명)와 함께
버스 여정을 함께 하게 된다. 처음에는 주원 씨에게 버스 여행을 시작하게 된 계기라든가 여러 가지에 대해서 인터뷰를 시도했었지만, 그는 수수께끼 같은 말만
해댔고 '나'는 언젠가부터
인터뷰를 포기하고 그저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기기로 한다.
그리고 그의 과거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들에 대해 끊임없이 그와 대화를 나눈다. 그가 왜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것인지, 그가 밤에 스스로에게
폭력을 가하는 이유에 대해, 어느 순간 '나'는 '그'의 삶을
온전히 경험하게 된다. '휴가
중인 시체'라는 제목만 보고
추리 소설이나 스릴러를 예상했는데, 시체라는 단어의 의미는 상징적인 은유였다.
'나'가 첫 번째 삶을 끝내고, 주원 씨와 함께 버스 여행을 다니며 두 번째 삶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가 여태껏
한 번도 죽지 않고 계속 살아 있는 존재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죽음과 삶이 반복되는 그 어딘가에서 이 작품은 우리에게 묻는다.
"아주아주 간단한 실수를 했을 뿐인데 큰 벌을 받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얘기 들어본 적
있어요?"
"비극이 다 그렇지 않나요? 신화 속의 주인공들도 그렇고."
"신화라...
그렇네요.
신화 속 인물들이 그렇죠.
그런 사람들에게는 벌이 곧 용서일까요? 벌을 충분히 받았다면 그걸로 용서받은 것으로 생각해도 되는
걸까요?"
p.71~72
<K-픽션> 시리즈는 최근에 발표된 가장 우수하고 흥미로운 작품을 엄선해 한영대역으로
소개하는 시리즈로, 한국문학의
생생한 현장을 국내외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기획되었다고 한다.
매 계절마다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고 있으며 현재 총 25권이 출간되었다. 박민규 작가를 시작으로
손보미, 황정은, 천명관, 장강명, 김애란, 김금희, 최은영, 구병모, 조남주
등등 지금 가장 주목받는 작가들의 작품을 모두 만나볼 수 있는 시리즈이다.
무엇보다 매 페이지마다 왼쪽에는 한글로, 오른쪽에는 영어로 함께 수록하고 있어 더욱 흥미롭게 읽히는 시리즈이기도
하다.
번역은 제2의 창작물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문화적 배경이 다른 한 나라의 언어를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일은 지난한 작업의 결과물이다.
한강 작가가 맨부커상을 수상했을 때도 번역가와 함께 상을 받고, 번역가도 작가만큼이나 주목 받았던 것처럼
말이다.
작품의 내용을 고스란히 포함하면서도 다른 언어권 독자들이 읽을 때에 문장의 호흡과
여백의 분위기까지 살려주어야 하니, 번역이란 굉장히 중요한 작업이다.
<K-픽션>
시리즈의 영어 번역은 세계 각국의 한국문학 전문 번역진이 참여했으며, 번역과 감수, 그리고 원 번역자의 최종 검토에 이르는 꼼꼼한
검수 작업을 통해 영어 번역의 수준을 끌어올렸다고 한다.
분량이 짧은 단편소설인 만큼 먼저 원작을 쭉 읽고 나서, 영어 번역 페이지로만 다시 한번 읽어 보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